정규시즌 내내 삼성 앞에 붙은 수식어는 간단했다. 방망이의 팀. 그런데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그 방망이가 잠시 식어 걱정을 샀다. 2경기 4득점, ‘홈런 군단’의 간판에 비해 조용했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은 그래서 더 중요했다. 압박을 털어내고 본모습을 되찾느냐, 아니면 침묵이 길어지느냐의 갈림길. 결론은 명확했다. 이재현의 초구 리드오프포로 문을 연 삼성 타선이 활활 달궜고, 최원태의 무실점 역투가 불을 지켰다. 5-2, 적지 인천에서 잡아낸 선취 승리는 단순한 1승이 아니라 ‘업셋 열차’의 힘찬 출발 신호였다.

삼성의 변화는 선발 라인업에서부터 읽혔다. 박진만 감독은 와카 때 경직된 스윙을 보인 일부 타자 대신, 상대성·컨디션을 반영해 김태훈과 양도근, 김헌곤을 과감히 투입했다. 이 선택은 초반부터 효과를 냈다. 무엇보다 선두 이재현이 화이트의 초구 152km 직구를 그대로 밀어 담장 밖으로 보낸 한 방은 경기의 공기를 바꿨다. 포스트시즌 역사상 ‘1회초 선두타자 초구 홈런’이라는 새로운 장면이 인천 하늘을 가르자, 삼성 더그아웃의 표정도 확 풀렸다. 긴장과 주저가 사라진 자리엔, ‘우리는 원래 이렇게 친다’는 자신감이 들어섰다.

SSG에겐 악재가 겹쳤다. 원래 1차전 선발이어야 할 에이스 드류 앤더슨이 장염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니, 1·2차전 모두 불발. 대신 올라온 미치 화이트는 올 시즌 내내 보여줬던 ‘삼성 상대 후반기 난조’ 그대로였다. 1회 견제 악송구, 잦은 볼넷, 코스로 몰리는 변화구. 포스트시즌 첫 등판의 부담이었는지, 손끝이 둔했다. 삼성 타선은 조심스럽되 집요했다. 볼을 잘 골라 출루했고, 실투는 놓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화이트는 2이닝 59구 6피안타 3실점, 삼진 0개. 1차전뿐 아니라 시리즈 전체 불펜 운용까지 꼬아버린 조기 강판이었다.

삼성의 ‘빅 이닝’은 3회에 나왔다. 선두 디아즈가 중전 안타로 물꼬를 트자, 김영웅이 한가운데 몰린 커브를 잡아당겨 우월 투런포를 쏘았다. 단숨에 3-0. 이어진 김태훈의 안타로 화이트를 내린 SSG는 김민을 올려 화재 진압을 시도했지만,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4회엔 구자욱의 볼넷과 디아즈의 우중간 장타로 1점, 김지찬의 중전 적시타로 또 1점. 4회까지만 5점을 쌓으며 게임의 흐름을 확 끌어당겼다. 디아즈는 이날 3안타로 시리즈 침묵을 빠르게 끊었다. 중심 타선이 살아나면, 삼성의 야구는 단순해진다. ‘많이 치고, 잘 막는다.’

이날의 진짜 키워드는 그래도 마운드였다. 와카 1차전에서 아웃카운트 하나 못 잡고 내려왔던 최원태가 완전히 달라졌다. 초구 스트라이크, 코너 승부, 높낮이 변화. 말 그대로 보더라인을 칼처럼 긋는 제구가 SSG 타선을 속수무책으로 만들었다. 3회엔 삼자삼진으로 혀를 내두르게 했다. 패스트볼을 존 모서리에 콕콕 찍고, 커브와 체인지업으로 타이밍을 무너뜨렸다. 6이닝 93구, 2피안타 1볼넷 8K 무실점. 포스트시즌 통산 평균자책 11점대의 불명예를 스스로 찢어버린 밤, ‘가을 잔혹사’ 대신 ‘가을 각성’이 쓰였다.

SSG도 손 놓고 있진 않았다. 불펜 릴레이가 중반 이후 삼성 타선을 묶었다. 문승원·이로운·전영준·노경은·조병현으로 이어지는 무실점 릴레이는 홈 관중의 한숨을 잠시 환호로 바꿔줬다. 타선은 7회 고명준의 투런포로 반격을 알렸고, 8회엔 2사 만루까지 몰아붙였다. 하지만 그 한 끗을 넘지 못했다. 이호성이 고명준을 3루 땅볼로 막아 세웠을 때, 인천의 바람은 확 꺾였다. SSG가 끈질긴 팀인 건 분명하지만, 1차전에서 확인된 건 ‘최원태의 벽’이었다. 좋은 공을 던지는 투수 앞에선 맞춤 라인업도, 전력분석도 무색해진다.

데이터가 말하는 건 더 냉정하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 승리팀의 PO 진출 확률은 대략 70~85%로 집계된다. 표본과 기준에 따라 수치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 메시지는 같다. 1차전이 ‘결정적’이라는 사실. 삼성은 이 확률을 손에 넣었을 뿐 아니라, 더 소중한 걸 챙겼다. 선발 로테이션의 숨통, 불펜의 부담 경감, 타선의 자신감 회복. 와카에서 애를 먹였던 ‘답답함’의 원인을 리드오프 한 방과 중심타선의 멀티히트로 단칼에 잘라냈다.

전략적 관점에서 보면 포인트는 세 가지다. 첫째, 초구 승부. 이재현의 초구 홈런이象徴(상징)이었지만, 삼성은 전반적으로 초구부터 스트라이크존에 적극 반응해 화이트의 템포를 무너뜨렸다. 둘째, 주루·세밀함. 김성윤의 출루·도루 압박, 김지찬의 컨택은 점수와 별개로 투수의 집중력을 갉아먹는 장치가 됐다. 셋째, 불펜 매칭. 7회 고명준에게 한 방을 맞은 뒤 즉시 카드 교체로 흐름을 잘 끊었다. 8회 만루 위기에서 이호성을 고집한 선택도 주효했다. 강속구로 카운트를 앞세운 뒤, 결정구로 루트 절단. 단기전의 한 수가 제대로 통했다.

SSG 입장에선 ‘앤더슨 결장’이 승부처였다. 에이스 한 명의 공백은 단기전에서 곧 운용의 격차로 번진다. 화이트가 2이닝 만에 무너지자, 불펜을 조기 투입할 수밖에 없었고 그 반작용으로 2차전 이후 계획도 뒤틀렸다. 게다가 타선은 최원태에게 단 2안타. ‘맞춤 라인업’으로 전면에 세운 상위 타선이 힘을 쓰지 못했다. 위안은 있다. 뒤늦게나마 타구 속도가 살아났고, 7·8회에 만든 기회는 다음 경기로 이어질 실마리다. 하지만 그 희망을 현실로 바꾸려면 초반부터 존을 공략하는 결단과 초구 대응이 필요하다. 최원태가 만든 ‘선제 권위’를 초장에 깨지 않으면, 다시 끌려가는 전개를 피하기 어렵다.

삼성은 ‘방망이의 팀’이라는 정체성을 되찾았다. 이재현이 스위치를 켰고, 디아즈와 김영웅이 엔진을 달았다. 구자욱은 출루로 리듬을 만들었고, 김지찬은 연결의 고리가 됐다. 마운드는 최원태가 버티고 불펜이 덮었다. 단순하지만 가장 강력한 공식이다. 업셋을 꿈꾸는 팀이 1차전에서 보여줘야 할 모든 요소—빠른 선취점, 파괴적인 중반 득점, 선발의 길고 굵은 이닝, 위기 시 불펜의 한 방 대응—를 체크리스트처럼 채웠다. 그 결과는 인천에서의 기선 제압, 그리고 대전행 티켓에 성큼 다가선 1승이다.
이제 남은 건 리듬을 잃지 않는 일이다. 1차전 승리는 큰 발판이지만, 단기전은 언제든 흔들린다. 삼성은 초구 적극성, 스트라이크 관리, 주루 압박이라는 세 축을 유지해야 한다. SSG는 반대로 초반부터 카운트를 잡고, 직구 타이밍에 대한 확신을 되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보더라인 제구에 말릴 공산이 크다. 결국 1차전이 준 메시지는 간단하다. “삼성은 방망이의 팀이고, 그 방망이가 달궈지면 상대는 어렵다.” 그리고 하나 더. “각성한 최원태는 다른 투수다.” 업셋 열차는 그렇게, 엔진 소리를 한층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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