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세일러는 <승자의 저주>라는 책을 집필했다.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했지만, 과도한 비용 부담으로 위기에 빠지는 경우를 의미한다. 승자가 모든 것을 다 가지는 '승자 독식'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메이저리그에도 '승자의 저주'는 존재한다. 당장 작년에도 있었다. 개막전 팀 연봉 1위 뉴욕 메츠와 2위 뉴욕 양키스, 3위 샌디에이고가 나란히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세 팀은 공격적으로 전력 보강을 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시즌을 보냈다. 이에 '돈으로 승리를 살 수 없다(money can't buy wins)'는 말이 유행처럼 퍼졌다.
지난 겨울의 주인공은 단연 다저스였다. 오타니 쇼헤이와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동시에 영입. 1선발 타일러 글래스나우도 트레이드 후 연장 계약을 체결하면서 12억 달러가 넘는 돈을 썼다. 한화로 무려 1조원이 넘는 금액이다.
당연히 기대치는 높아졌다. 3년 연속 100승 시즌을 이어온 다저스가 2001년 시애틀의 116승을 넘어 단일 시즌 최다승 기록을 경신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MLB닷컴>이 선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올해 월드시리즈 우승 팀으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여러 매체에서 2024년 다저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이 아니면 실패'라고 정의했다.
출발은 좋았다. 4월10일 10승에 선착, 7연승으로 시작한 5월도 시즌 첫 50경기 구간에서 33승을 따냈다. 100승을 거둔 작년보다 페이스가 빨랐다(31승19패). 지구 2위 샌디에이고에게 8경기 앞선 압도적인 1위였다. 지구 선두들 중에서도 가장 여유로웠다.

그렇다고 일이 뜻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다저스는 5월말 5연패에 빠지면서 주춤했다. 6월에는 피츠버그와 텍사스, 샌프란시스코와의 시리즈에서 열세였다. 상대 팀들의 성적을 고려하면 더 치고 나갔어야 했는데, 생각보다 제동이 자주 걸리면서 그러질 못했다. 지난 애리조나와 시리즈도 우위를 결정짓는 러버게임(rubber game)을 패배했다.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시즌 초반 주요 불펜 투수들이 쓰러지더니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투수 타자 할 것 없이 부상에 신음하고 있다. 부상자 명단에 등록된 13명은 메이저리그 최다 인원으로, 도합 연봉 총액이 8664만8500달러에 달한다.
사실 다저스에게 부상은 매년 마주하는 장애물이었다. 부상 관리를 잘하기보단, 부상자가 나왔을 때 후속 대처를 잘하는 팀이었다. 이 대신 잇몸으로 버티는 힘이 남달랐다. 다저스가 매년 선수층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부상자가 나와도 대체 선수가 공백을 잘 메우는 자생력을 보여줬는데, 올해는 그 대책이 무색할 정도로 주축 선수들이 다치고 있다.
치명적인 곳은 선발진이다. 그동안 다저스는 선발 야구를 해온 팀이다. 정규시즌 다저스의 시대가 시작된 2013년 이후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를 필두로 항상 뛰어난 선발진을 구축해왔다. 2013년 이후 10년간 선발진 승리기여도 전체 1위 팀이 다저스였다.
2013-22년 선발진 fWAR 순위
159.4 - 다저스
148.5 - 클리블랜드
138.4 - 메츠
134.4 - 휴스턴
132.9 - 워싱턴
이 아성이 무너진 시즌이 지난해였다. 워커 뷸러가 토미존 수술로 자리를 비웠고, 다저스 좌완 계보를 이어갈 것으로 믿었던 훌리오 우리아스가 발등을 찍었다(11승8패 4.60 117.1이닝). 노아 신더가드 영입도 실패했으며(1승4패 7.16 55.1이닝) 상위 선발로 도약하길 바랐던 토니 곤솔린와 더스틴 메이, 에밋 시핸은 부상과 싸웠다. 누구보다 안정된 선발투수가 커쇼(13승5패 2.46 131.2이닝)였다는 점이 다저스 선발진의 현주소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겨울 선발진을 전면 개조했다. 글래스나우와 야마모토가 원투펀치를 결성하면 다른 투수들이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뷸러의 복귀와 바비 밀러의 성장, 투수 유망주들의 안착이 더해지면 선발진은 화룡점정이 될 수 있었다.
반면, 변수도 명확했다. 규정이닝을 한 번도 채운 적이 없는 글래스나우와 제임스 팩스턴, 일본리그와 메이저리그의 차이를 좁혀야 하는 야마모토를 바라보고 가는 건 모험이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다저스 선발진은 내구성에서 아쉬운 모습이다. 선발진 이닝 소화가 453.1이닝으로 전체 19위 수준이다(1위 시애틀 525이닝). 글래스나우와 팩스턴이 건강하지만 선발진이 이닝을 채우지 못하는 건 안심할 수 없다.
다저스 주요 선발 투수 이닝
109.0 - 타일러 글래스나우
92.0 - 개빈 스톤
75.2 - 제임스 팩스턴
74.0 - 야마모토 요시노부
37.0 - 워커 뷸러
야마모토의 부상이 뼈아프다. 야마모토는 6월8일 양키스전에서 메이저리그 진출 후 가장 빼어난 피칭을 했다(7이닝 7K 무실점). 본격적인 활약을 예고하는 듯 했는데, 곧바로 오른쪽 어깨 회전근 손상으로 제외됐다.
로버츠 감독은 야마모토가 "다음 주말 캐치볼 훈련을 시작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복귀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불펜 피칭과 라이브 피칭, 시뮬레이션 게임, 재활 등판에서 아무 이슈가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어깨는 조심히 다뤄야 할 부위인데, 지금까지 야마모토는 다저스가 추가 휴식일을 챙겨주는 등 이미 관리를 해줬다.
팀이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투타 박자가 맞아야 한다. 투타 균형이 잘 맞는 것과 개념이 조금 다르다. 투타 균형은 두 곳 다 자기 역할을 잘해주는 경우다. 타선은 점수를 많이 뽑고, 마운드는 점수를 적게 내준다.
투타 박자가 맞는 건 한쪽이 조금 부족해도 다른 한쪽이 보완해주는 상황이다. 그래서 타선이 점수를 많이 뽑았는데, 마운드가 더 실점하는 현상을 '엇박자'라고 표현한다. 긴 시즌을 치르다 보면 타격은 사이클이 있고, 마운드는 지치는 순간이 온다. 이때 서로가 떨어지는 부분을 지탱해줘야 슬럼프가 와도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최근 다저스는 이 투타 박자가 살짝 어긋난다. 여전히 경기 당 평균 득점이 평균 실점보다 많지만, 첫 68경기 평균 득/실점과 최근 21경기 평균 득/실점을 비교하면 격차가 줄었다.
경기 당 평균 득/실점 변화
첫 68G [득점] 5.1점 [실점] 3.5점
후 21G [득점] 4.9점 [실점] 4.8점
타선도 부상 여파가 감지된다. 맥스 먼시의 오른쪽 사근 부상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스윙 과정에서 통증이 재발했다. 먼시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여러 선수를 3루수로 세웠지만, 그 누구도 신통치 않았다. '혹시나' 하고 데려온 캐반 비지오도 '역시나'였다.
3루수 대체 선발 선수 성적
키 케 - 30G [타율] .198 [OPS] .574
비지오 - 10G [타율] .167 [OPS] .431
로하스 - 8G [타율] .231 [OPS] .618
테일러 - 8G [타율] .185 [OPS] .704
설상가상 무키 베츠도 6월 중순에 왼손 골절상을 입었다. 수술은 피했지만, 최소 6주 진단을 받았다. 베츠의 리드오프 자리는 오타니가 대신하고 있는데, 다저스가 자랑하는 베츠와 오타니, 프리먼 트리오가 와해된 것 자체가 큰 타격이다.
다저스는 베츠가 있을 때도 하위 타선이 고민이었다. 상위 타선과 온도 차이가 너무 심했다. 상대 투수 유형에 따라 구성은 달라지지만, 7번 앤디 파헤스(20경기) 8번 개빈 럭스(17경기) 9번 오스틴 반스(24경기)가 주로 선발 출장했다. 여기에 키케 에르난데스와 크리스 테일러가 하위 타선에 들어섰는데, 이들이 거둔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7∼9번 타순 도합 성적 (ML 순위)
타율 : 0.219 (20위)
출루율 : 0.287 (19위)
장타율 : 0.335 (23위)
OPS : 0.623 (22위)
wRC+ : 81 (17위)
중심타자 두 명의 이탈은 타선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위 타자들의 타순이 상향 조정됐다. 상대 투수 입장에서는 한 숨 돌리는 구간이 길어졌다. 일례로 파헤스는 최근 4,5번으로 나온 16경기에서 타율 0.238, OPS 0.695다. 중심타선에 어울리지 않는 성적이다.
물론, 이 약점들이 정규시즌에서 다저스를 가로막진 않을 것이다. 다저스는 어제도 내셔널리그 중부 1위 밀워키를 꺾고 3연패를 피했다. 이 과정에서 부진했던 윌 스미스가 홈런 세 방으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하위 타선에서도 미겔 바르가스가 홈런 포함 2안타 2타점 1볼넷을 기록했다. 불펜도 필승조 세 명(트라이넨 허드슨 필립슨)이 3이닝 무실점을 합작했다. 다저스는 정규시즌만큼은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저스의 지상 과제는 월드시리즈 우승이다. 다저스에게 정규시즌은 통과의례일 뿐이다. 또한 다저스는 선수들에게 훗날 연봉을 지급하는 지불유예 계약이 쌓여 있다. 재정 상태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면, 그들이 전성기에 있을 때 가급적 빨리 우승을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다저스의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다저스는 주어진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트레이드 마감시한에 어떻게 움직일지 지켜봐야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내부 전력을 다듬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포스트시즌에서 지금까지와 '다른 다저스'를 선보이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승자로 기억될 수 있다.
-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