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북한군 러시아 파병 공식 인정… 우크라 전쟁에 휘말리는 한반도
북러, 총 1만2,000명 규모 파병 합의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 개입도 불가피해
북한에 반대급부로 각종 핵심기술 이전
한반도에 위협적…대러외교 전면 수정 불가피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로 치닫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북한이 8일 특수부대 1,500여 명을 시작으로 총 파병할 규모가 1만2,000명(사단급)에 달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무기를 넘어 병력까지 보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지원하면서,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가 북한을 도와 참전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 글로벌 신냉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한국이 점차 휘말리고 있다.
국정원, 北 특수부대 1,500명 8일 블라디로 건너가...참전 개시 확인
윤 대통령은 이날 '북한 전투병 러시아 파병'에 따른 긴급안보회의를 주재하고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더해 국가정보원은 구체적인 파병 증거를 공개했다. 북한군 특수부대원 1,500명이 우크라전 참전을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한 건 지난 8일이다. 앞서 8월에는 북한 미사일 개발의 핵심인 김정식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이 수십 명의 북한군 장교와 함께 여러 차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선 인근 북한 ‘KN-23 미사일’ 발사장을 방문해 현지 지도하는 정황을 포착했다.
국정원은 북한군 특수부대가 이달 8~13일 러시아 해군 수송함을 통해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겨갔다며 "북한군의 참전 개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러시아 태평양함대 소속 상륙함 4척과 호위함 3척이 북한 청진·함흥·무수단 인근 지역에서 특수부대 1,500여 명을 블라디보스토크로 1차 이송 완료했고 조만간 2차 수송작전이 진행될 예정이다. 우리 정보당국은 북한군의 전체 파병 규모를 1만2,000명가량으로 추산하고 있다.
러시아 해군함대가 북한 해역에 진입한 건 1990년 이후 처음이다.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군인들은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하바롭스크·블라고베셴스크 등에 분산돼 러시아 군부대에서 주둔 중이다. 적응 훈련을 마치는 대로 전선에 투입될 전망이다. 파병에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11일과 이달 2일 특수전 부대를 두 차례 현지지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은 북한군이 러시아 군복과 러시아제 무기를 지급받은 것으로 파악했다. 또한 북한 주민과 외모가 유사한 시베리아 야쿠티야·부라티야 지역 주민 위조 신분증도 발급받았다고 밝혔다. 참전 사실을 숨기기 위해 러시아군으로 위장한 것이다.
북한의 우크라이나전 참전, 신냉전 본격화…러시아, 한반도 유사시 개입 불가피
이처럼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사실이 확인되면서 대한민국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요인이 하나 더 늘었다.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이 기정사실화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북한과 러시아는 상대방이 적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 가용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지원할 수 있다는 '군사개입 조항'이 포함된 '포괄적전략동반자조약'을 체결했다. 조약에 따라 북한이 행동에 나선 만큼 러시아도 갚아야 하는 처지다.
이에 따라 한국의 대러외교 전략은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우리도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 당장 러시아는 북한에 반대급부로 △정찰·항법위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핵잠수함 건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핵심기술을 제공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의 도발위협이 그만큼 고조되는 셈이다.
다만 정부는 공격·살상무기가 아닌 방공무기 지원을 우선적으로 검토할 가능성이 크다.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9월 방한했던 우크라이나 군 당국자는 북한군 3,000여 명의 파병 동향을 알리며 한국에 방공체계 지원을 우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직 군 고위관료는 "전쟁 상황과 전후 여파를 고려해 지원방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현 단계에서 살상무기 지원은 시기상조다. 간접지원이 일단 현명한 방법"이라고 일단 선을 그었다.
김영호 국방대 부총장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는 건 최후 수단으로 고려돼야 할 카드"라면서 "공격무기보단 현 단계에서 방공시설이나 전력 등 우크라이나에 기여할 다른 방안들이 많다.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판도 바꾸진 못하지만 없는 것보단 나아…北, 데이터 축적 기회"
물론 북한이 러시아에 병력을 지원한다고 해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다. 주은식 한국전략군사연구소장은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은 갖고 있다고 하지만, 군사작전 수행능력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경제적 어려움으로 군수산업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큰 역할을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북러가 군사적으로 밀착하는 건 한반도 정세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직결되는 상황으로 비화할 수 있다. 우리의 안보상황이 급변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은 "한반도가 신냉전의 최전선에 서게 됐다는 뜻"이라며 "북한군은 특별군사작전 참전으로 실전 경험을 축적하고, 검증된 러시아의 무기체계를 습득할 수 있다. 이는 한반도에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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