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종이접기 기술, 과학자들이 열광하는 이유

김진화 기자 2024. 10.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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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제공 

종이접기로 학을 처음 만들어 본 경험을 떠올려 봅시다. 한참 동안 손바닥만 한 종이와 씨름을 해야 했을 겁니다. 그런데 색종이로도 쉽지 않은 종이접기를 눈에 보이지도 않는 DNA에서 시도하는 연구자들이 있습니다. 

"DNA를 마치 종이접기 하듯 접어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것을 DNA 종이접기 기술이라고 합니다. 이 기술 덕분에 DNA를 활용한 약물 운반체, 바이오 센서와 같은 나노 구조체를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폭발적으로 높아졌습니다."

8월 29일 아주대에서 만난 이재영 아주대 기계공학과 교수가 말했습니다. 이 교수는 DNA 종이접기 기술을 연구하는 과학자입니다.

나노 구조체는 나노미터(nm·1nm는 10억 분의 1m) 크기 수준의 아주 작은 구조체를 말합니다. 이렇게 크기가 작은 구조체는 인간의 몸속 세포로 약물을 전달하거나 바이러스를 감지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인공적으로 나노 구조체를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나노미터가 얼마나 작은지 쉽게 감이 오지 않을 겁니다. 사람의 머리카락 굵기는 100마이크로미터인데 이를 다시 10만 개로 나눠야 1nm가 됩니다. 이렇게 작은 나노 구조체는 기존의 미세 공정 기술로 만들기 어려울 뿐더러 만들더라도 원하는 기능을 부여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돌파구가 될 수 있는 게 DNA입니다. 유전물질인 DNA를 사용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DNA는 여러모로 나노 구조체를 만드는 데 적합한 소재입니다. 먼저 DNA의 반지름은 1nm이기 때문에 나노 크기의 구조체를 만들기 좋아요. 게다가 이미 인체에 수도 없이 많이 존재하는 물질이기 때문에 생체 적합성이 뛰어납니다. 심지어 DNA는 '서로 상보적으로 결합한다'는 특성도 가지고 있어요. 이 특성이 DNA 종이접기 기술의 핵심입니다.

DNA 종이접기 기술은 첨단 바이오 산업에 응용된다. DNA 종이접기 기술로 만든 암 백신 '도리백'(직육면체)이 암세포에 작용하는 모습이다. KIST 제공

● 상보적 결합 특성 활용해 복잡한 모양도 척척

색종이를 반으로 접으려면 종이의 양 끝이 서로 맞닿게 한 다음 손으로 꾹꾹 눌러줍니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DNA 가닥은 어떻게 반으로 접을까요? 손을 쓸 수 없으니 DNA가 저절로 접히게 만들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바로 또 하나의 DNA 가닥입니다.

이때 DNA의 염기 특이적인 결합 특성을 이용합니다. 염기는 DNA를 이루는 기본 단위인 뉴클레오타이드의 구성성분이에요. 뉴클레오타이드는 염기에 따라 4가지로 구분되는데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C(사이토신) 네 가지가 있습니다.

이때 A는 T와 G는 C와 수소결합에 의해 서로 쌍을 맞춰 결합하려는 특성이 있어요. 그 결과 DNA는 두 가닥이 상보적으로 결합하면서 이중나선을 형성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과학동아 제공

● DNA를 어떻게 접을까?

(왼쪽부터) 미국 MIT와 애리조나주립대 공동연구팀은 DNA로 육각형 안에 6개의 삼각형이 들어간 2차원 도형을 만들었다, MIT 연구팀은 DNA를 바이러스와 유사한 정이십면체로 접어 인체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항원(노란색)을 붙였다. Hyungmin Jun, nature nanotechnology 제공 

이제 DNA 가닥을 반으로 접어 봅시다. 접고자 하는 긴 DNA 주형 가닥과 짧은 DNA 가닥을 준비합니다. 이때 짧은 가닥의 절반은 주형 가닥의 한쪽 끝과 상보적인 염기로 나머지 절반은 다른 쪽 끝과 상보적인 염기로 구성돼 있습니다. 

둘을 용액에 섞어서 적절한 조건을 맞추면 DNA 주형 가닥의 양 끝에 짧은 DNA 가닥이 달라붙으며 주형 가닥이 반으로 접힙니다. 주형 가닥을 마치 스테이플러 침으로 고정한 것 같다고 해서 짧은 DNA 가닥을 '스테이플 DNA'라고도 부릅니다.

DNA의 결합 특성을 활용해 나노 구조체를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1982년 미국 생물학자 나드리안 시먼이 처음 제안했어요. 시먼은 짧은 DNA 가닥 여러 개를 서로 결합시켜 구조체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정교함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크고 복잡한 모양을 만들기 어려웠어요. 

폴 로더먼드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교수(왼쪽)는 DNA 종이접기 기술을 이용해 복잡한 스마일 모양의 나노 구조체(오른쪽)를 만들었다. P.W.K.R. and N.P. John D. and Catherine T. MacArthur Foundation 제공

이를 발전시킨 DNA 종이접기 기술은 2006년 폴 로더먼드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교수가 처음으로 제안했습니다. (doi: 10.1038/nature04586) 

로더먼드 교수는 긴 DNA 주형 가닥을 짧은 스테이플 DNA를 이용해 접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그는 이 방법을 통해 스마일 모양 구조체를 만들었어요. 짧은 DNA 가닥을 여러 개 이용하면 이처럼 복잡한 모양도 만들 수 있죠. 이 교수는 "나노 구조체를 만들 수 있는 레고 블록이 많아진 셈"이라며 "이를 통해 인류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고차원적인 구조체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 암 백신, 나노 로봇으로 변신하는 DNA

DNA 나노 구조체는 특히 첨단 바이오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어요. 일례로 미국 MIT 연구팀은 2020년 백신 개발을 위해 바이러스 모양으로 DNA 나노 구조체를 접어 항원을 부착하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doi: 10.1038/s41565-020-0719-0 )

2024년 류주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의약소재연구센터 박사팀은 미국 다나 파버암연구소 및 하버드비스연구소와 함께 DNA 종이접기 기술을 활용한 암 백신 '도리백(DoriVac・DNA origami-based Vaccine)'을 개발했습니다. (doi: 10.1038/s41565-024-01615-3)

다양한 응용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상용화 단계에 도달한 사례는 없어요. 이 교수는 "DNA 나노 구조체가 상업화되려면 가격이 낮아져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원하는 모양을 만들기 위해 DNA를 맞춤형으로 설계해야 하기 때문에 생산 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어요. 게다가 복잡한 모양을 정확하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번의 실험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도 생산 비용이 증가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교수는 DNA 종이접기 기술로 만드는 나노 구조체의 형태를 예측하는 시뮬레이션을 개발했습니다. 재료물질로 구조를 만들 때 재료물질이 가진 특성이 물체의 모양을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재료가 되는 DNA 가닥이 얼마나 잘 구부려지는지, 전기적 반발력은 얼마나 되는지 등의 특성을 측정하면 DNA 나노 구조체의 형태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 교수는 "예측 시뮬레이션을 통해 원하는 DNA 나노 구조체를 정밀하게 디자인하고 합성하는 시행착오를 줄여 비용 또한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doi: 10.1021/acsnano.0c07717)

"DNA 나노 구조체의 형상을 예측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로봇과 같이 고차원의 동적인 움직임을 가진 나노 시스템을 설계하고 응용하는 연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르면 10년 정도 뒤에는 DNA 나노 구조체를 활용한 기술이 보편화, 상용화되고 시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관련기사
과학동아 10월호, DNA 종이접기…왜 과학자들이 열광할까

[김진화 기자 evolut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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