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 갇힌 21명의 사람들 [박성철의 ‘새 법 다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영화 〈터미널〉에는 공항 터미널에 사는 사람이 나온다. 주인공인 빅터 나보스키(톰 행크스)가 입국하는 사이, 고국 크로코지아 공화국에 쿠데타가 일어났다. 미국에 들어올 수도,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되어 터미널에 산다.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인천공항 어느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기사 15편을 연재했다. 기자는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앙골라에서 온 루렌도 씨 가족을 만났다. 부부와 네 아이까지 여섯이었다. 첫째는 열 살이 채 되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에겐 더욱 버거운 생활이었다. 공항 바닥에서 사는 삶은 처참했다.
루렌도 씨 가족의 사연이 보도되자 이들을 돕겠다는 손길이 이어졌다. 출국하는 사람들이 공항에서 그들을 찾아 갖가지 생필품, 음식을 나눴다. 생활비를 전달하는 이도 있었다.
공익사단법인 두루의 이상현 변호사는 법적 조력을 이어갔다. 난민 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제1심에서 패소했으나 난민인정 요건에 대한 끈질긴 주장과 증명 끝에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루렌도 씨 가족은 288일 만에 공항을 빠져나왔다. 대법원에서 승소가 확정됐다. 난민 심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공항에 갇힌 뒤 3년 만에 마침내 난민인정을 받았다.
루렌도 씨 가족은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행운도 있었다. 어느 프랑스 여행객의 제보로 공익변호사를 일찍 만나 전문적인 조력을 받았다. 정보공개청구 소송부터 난민 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소송, 난민 불인정 처분 이의신청까지 공익변호사들의 헌신적 노력이 있었다. 셜록의 보도가 계속되며 관심이 이어졌다. 뉴스를 접한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루렌도 가족을 도왔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공항 난민’ 개선 권고
사실 대부분의 난민은 이처럼 주목받지 못한다. 공항에 갇히고 방치된 채 잊힌다. 2023년 상반기에만 4개월 이상 공항에 갇힌 사람이 21명이다. 공항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난민 문제를 더 근본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선 난민 신청을 한다고 모두 심사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난민 신청자 중 절반 가까이는 심사에 회부되지도 못한다. 난민 심사 불회부 결정을 받는다.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세계에서 최하위권이다. 만일 난민 심사를 받을 자격조차 얻지 못하는, 심사 불회부 결정을 받은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인정률은 더 낮아질 것이다. 통계에도 잡히지 못하는, 난민 심사를 받을 자격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방치되는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루렌도 씨 가족의 사례처럼 선의를 지닌 사람들의 부조에만 기댈 수는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법무부 장관에게 개선사항을 권고했다. 난민 심사도 하지 않는 불회부 사유는 형식적 요건으로 최소화하도록 했다. 유엔난민기구 역시 불회부 기준 대부분은 난민인정 심사 절차에 다루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명백히 난민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단 심사에 회부해야 한다는 것이 유엔난민기구와 인권위의 의견이다.
난민 심사 불회부 결정에 대한 안내도 구체적으로 문서로 하도록 했다. 처분 일자와 근거 법령, 처분 사유를 포함해야 한다. 난민의 언어 장벽도 감안해 가능한 다양한 언어를 병기하도록 권고했다. 아울러 난민 심사 불회부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 절차도 마련하도록 했다.
특히 난민 심사 불회부 결정을 받고 불복해 소송으로 다투는 사람들에 대해 기본적인 처우가 보장될 수 있도록 법령 개정을 권고했다. 현행법상 난민 심사 불회부 결정을 받은 사람은 난민법상 난민 신청자에 해당하지 않아 난민 신청자 처우를 적용받지 못한다.
난민 심사 불회부 결정을 받아 머물 수 있는 출국대기실의 개선 방향도 인권위 결정문에 담겨 있다. 루렌도 씨 가족과 같은 문제가 불거지면서 공항 내 출국대기실에 갈 수 있게 되었지만,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여전히 공항 안에 가두는 시설이다. 단기간 대기 목적으로 설치된 장소다. 장소가 비좁고 편의시설이 부족해 대기자들의 위생과 건강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식사, 위생, 의료 등에서 유엔의 ‘피구금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에 따른 기본적 처우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인권위의 개선 권고를 반영한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2022년 12월15일 박주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출국대기소 설치법안’이다. 장기간 대기할 우려가 있는 사람, 노약자,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등 취약한 이들의 대기 장소와 환경에 대한 인도적 고려를 담고 있다. ‘출국대기소’ 설치에 관한 키워드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인도적 처우’이고, 두 번째는 ‘출입국항 밖’이다. 현재 난민이 머무는 환경이 비인도적이라는 인식, 공항 안에 가두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법무부 역시 지난 5월12일 인천공항 국정과제 현장 점검에서 공항 밖 장기 출국대기소 신설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위 법안과 지향점이 다르지 않다.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어 법무부의 출국대기소 신설 추진이 더 힘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국격이란 무엇일까. 불청객인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그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박성철 (변호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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