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언론, 지금도 집단학살이 없는 듯 말하고 있다"

김예리 기자 2024. 10. 8. 23: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자 집단학살 1년 인터뷰 ①] '헤드라인 픽서' 미국 중동역사가 아쌀 라드
살상 주체 이스라엘 지우는 서구언론 제목에 '빨간펜'
보도는 어떻게 가자지구 집단학살에 동조하고 있나
"현실 감추려 언어 기교…대등한 양측의 전쟁 아닌 점령"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아쌀 라드가 미국 현지시간으로 7일 미디어오늘과 화상으로 인터뷰하고 있다. 역사학자인 그는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 보도 제목을 고치는 작업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오늘은 하마스의 공격 이후 1년이 되는 날이다. 서구 정부 책임자들과 언론이 말하는 것을 보면, 마치 집단학살은 일어나지 않은 것만 같다. 10월7일의 공격 외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압도적인 죽음과 파괴 행위는 여전히 오늘날 이야기의 일부가 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동 문제 전문가이자 역사학자인 아쌀 라드(Assal Rad)가 현지시간으로 7일 미디어오늘과 화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UN 인권 전문가와 역사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내 살상 행위를 '교과서적 집단학살'이라고 규정해왔다. 이를 보도한 서구 주류 언론에 대한 비판은 연일 높아지고 있다. 언론인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전에 없는 규모로 살해당하는 현실은 비추지 않는 한편, 이스라엘과 미국의 허위 주장을 그대로 보도하면서 전쟁범죄와 집단학살 언급은 피했다는 지적이다.

알자지라와 대안언론들은 아쌀 라드를 '헤드라인 픽서(fixer)'라 부른다. 그가 이스라엘의 살상을 가리거나 감싸는 보도를 날마다 SNS에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로이터와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CNN, BBC 등의 보도 표제에 빨간펜을 들었다. 일례로 '습격이 라파를 강타하자, 큰 사원이 납작해지다'라는 뉴욕타임스 기사 제목에 '이스라엘이 가자의 마지막 난민촌 내 사원을 공습했다'는 정보를 추가했다. 이런 게시글이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에게 재인용돼 퍼졌다.

미국 전국이란계미국인협의회(NIAC) 연구소장 출신이기도 한 아쌀 라드는 서구 주류 언론이 이스라엘 정부가 하는 말을 반복하거나 따라가면서 “집단학살에 대한 동의를 조작(manufacturing consent)하고 있다”고 규정한다. 라드가 짚은 지난 1년과 서구 주류 언론의 보도 실태, 이를 고발하는 작업을 일문일답으로 축약했다.

▲아쌀 라드가 이스라엘 편향을 비판한 보도들 예시. 알자지라 보도영상 캡쳐

- 역사가로서 왜 언론의 헤드라인을 고치나.

“역사학자로서 내러티브(서사)와 그 구성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역사에서 우리가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은 권력의 렌즈를 통해 걸러진다. 나는 중동 역사학자이고, 서구 언론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보도 프레임을 비판한 것이 처음도 아니다.

그러나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집단학살은 사안을 잘 모르는 전 세계인들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우리는 생중계 피드로, 어린이와 사람들이 전례 없는 규모로 학살당하는 장면을 봐야 했다. 지난해 10월 온갖 전문가들이 나와 이스라엘의 행위는 '교과서적인 집단학살'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스라엘 총리를 포함한 관리들도 집단학살의 언어를 썼다.

그럼에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정부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집단학살' 표현을 피했다. 오늘은 10월7일, 하마스의 공격 이후 1년이 되는 날이다. 서방 관리들과 언론이 이 사건을 이야기하는 걸 보면, 마치 집단학살이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가자지구의 압도적인 죽음과 파괴는 여전히 오늘날 이야기의 일부가 되지 못하고 있다.”

- 현실을 가리거나 뒤집은 '헤드라인' 사례를 들어달라.

“너무나 많다. 눈에 띄는 점 하나는 '원인 설명(attribution·귀인) 부족'이다. 우리는 '폭발이 들렸다' '공습이 들렸다' 같은 헤드라인을 보게 된다. 이스라엘의 폭격이라 밝히지 않고 수동태를 쓰는 이상한 방식이다. 또 특정 단어를 절대 쓰지 않는다. 집단학살, 난민촌, 아파르트헤이트, 점령, 심지어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도 쓰지 않는다.

▲알자지라의 주간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보도영상 '아쌀 라드, 헤드라인 픽서' 썸네일 갈무리.

뉴욕타임스의 끔찍한 예시를 보자. 지난 3월 가자지구 사망 통계가 3만 명을 넘어선 날 헤드라인은 '가자에서 끝난 목숨들(Lives Ended in Gaza)'이였다. 3만 명이라 하지도, 팔레스타인인이라 하지도 않았다. 이스라엘이 죽였다고 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그들이 죽었다고도 쓰지 않았다. 그저 목숨이 끝났다는 것이다. 비정상적인 표현 방법이다. 기본 영어로는 누구도 이렇게 말하거나 쓰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 3만 명을 죽였다'는 건 정말 큰 문제고 끔찍한 헤드라인이기에 이런 '언어 기교(language gymnastics, 의역)'가 벌어진다. 이런 보도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서구 언론 헤드라인에서 특히 언급되지 않는 건 고의적 기아다. (민간인 필수 생존 물품을 빼앗거나 공급을 막아 기아를 전투수단으로 쓰는 것은 전쟁범죄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고의로 굶기고 있다는 사실, 이스라엘이 원조를 차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NYT, WP, AP 등이 '기근이 가자를 뒤덮다' '가자지구에 기근 확산'이라고 하지만 누구에 의한 건지 밝히지 않는다. 마치 자연재해처럼 다뤄진다. 실제로는 이스라엘이 벌이는 행위인데 말이다.”

- 지적 받은 기자나 언론사가 반응한 적이 있나.

“기사를 쓴 기자가 응답해 온 기억은 없다. (같은 사안을 취재하는 기자들 중) '제목을 고치는 작업을 해 줘 고맙다'고 연락해 오는 기자들이 있다.”

-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을 '대등한 전쟁'이라고 보는 것의 문제가 뭔가.

“서구 주류 미디어에선 이 모든 것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레바논의 경우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이라고 불린다. 양쪽이 싸우는데 한 쪽만 민족국가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스라엘은 핵무장 국가이고, 세계에서 가장 앞선 군대 중 하나를 보유했으며 세계 최강 군대인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다. 해마다 40억 달러(약 5조원)을 받아왔는데 지난해엔 180억 달러(약 24조3400억원)의 군사 지원을 받았다. 하마스는 군사 부대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조직화된 군대는 아니다. 첨단 무기가 없고, 세계적으로 강한 군대의 지원도 받지 못하며, 국경과 영공, 항구도 통제할 수 없고 국민국가도 없다.

이스라엘인들은 마치 지난해 10월 이전엔 가자지구에 점령이 없었던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가자는 지난해 10월7일 이전에도 불법 점령돼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한쪽이 점령자, 다른 한쪽은 피점령자다. '대등한 양측'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묘사되는 방식을 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러시아의 침략과 점령에 저항하도록 권장되는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아무런 저항할 권리도 없다. 이스라엘만이 자위권을 가진다. 이 서사를 따르면 이스라엘만 자위권을 가지고 있기에, 이스라엘은 영원한 피해자라는 입장에 이른다. 이 프레임은 이스라엘이 침략자가 될 수 있고, 다른 민족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없애버린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 학살 숨진 이들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이들의 명단을 나이 0세부터 보여주는 알자지라 영상 갈무리. 지난 1년 동안 4만 18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가자 보건부는 이들 중 3만 4000명 이상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알자지라는 밝혔다.

-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자위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하마스에 대한 악마화와도 연관 있을까.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겐 항거할 권리가 없다는 생각을 접하게 된다. 하마스가 모든 일에 대한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점령이 있었던 수십 년간 존재하지 않았다. 하마스는 사실 네타냐후 총리와 같은 이들의 지원을 받고 부상했다. (하마스 지원이) 현재 팔레스타인 당국인 파타와 하마스 사이 분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식민주의의 가장 오래된 규칙, '분열과 정복'에 따라서다.

테러리스트란 말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은 레바논에 폭격을 가하기 전 먼저 테러 공격을 했다. 레바논 민간인들 사이에 삐삐와 워키토키(무전기) 같은 전자기기를 폭발시켜 민간인과 어린이들을 살상했다. 그건 테러의 정의이다. 전직 CIA 국장 리온 파네타도 그것이 테러라고 말했다. 그러나 언론 어디에도 그 단어를 볼 수 없다. 테러리즘이란 단어가 무의미해졌다. 그저 테러리즘이라 부르려면 아랍인, 또는 무슬림이어야 한다는 뜻이 됐다.”

- 한국 언론은 현지에 취재진이 없으며 서구 주류 언론에 기대는 경향이 있다.

“흥미롭게도, 서구 언론도 현지에 없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외국 언론의 출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서방 언론이 이스라엘을 그리는 방식 중 하나가 중동 유일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는 민주주의라 부를 수 없는 데다, 어떤 민주주의 국가에서 외신이 잘못도 없이 출입이 불허되나? 서구 언론은 IDF(이스라엘군)를 통해 걸러진 정보에만 접근한다. 이스라엘이 서구 언론이 받는 정보를 통제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그곳의 정보를얻을 수 있다면 그건 현장에 있는 팔레스타인인 기자들 때문이다. 그들이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들이다.”

- '작년 10월 이전에는 상황이 평화로웠다'는 관점은 어떻게 보나.

“터무니없다. 이는 미국 정부가 말하는 프레임이기도 하다. '10월6일까진 휴전이 있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10월7일 이전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점령 하에 있었다. 지난해 10월6일 나온 아랍 매체의 기사 제목은 '올해는 서안지구 어린이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해'였다. 서안지구에선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공격하고 있었고,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봉쇄와 포위 상태였다. 이 프레임은 마치 우크라이나가 공격을 멈추고, 러시아가 점령한 상태라면 휴전이 성립되고 평화롭다는 것과 같은 논리다.”

- 서구 주류 언론의 보도가 나아질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나아질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역사적으로 정치 담론이나 언론보도가 지금만큼 나쁘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예컨대 1982년 공화당 대통령 레이건이 이스라엘 베긴 총리에 전화를 걸어 레바논 폭격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졌기에 20분 만에 폭격이 멈췄다. 바이든을 보라. 그도 똑같이 할 수 있었지만 거부했다. 그는 이 학살을 맹목적으로 허용하고, 조장했다. 모든 기준과 정의에 비춰 전범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과거 보도들을 보면 보도는 시간이 갈수록 나빠졌다.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다는 게 슬프지만, 동시에 변화 가능성이 있다. 정부와 언론 내부에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젊은 세대의 미디어 소비 양상도 달라졌다. 독립 언론이 성장했고 다양한 온라인 출판물도 나오고 있다. 그 점에서 희망을 본다.”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