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집중] 동북아역사재단 "강제동원 연구, 日시민활동가에 의존.. 예산 지원 필요"

MBC라디오 2024. 11. 2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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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욱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아시오 동산과 구로베3댐, 제2의 사도광산 우려
- 日정부, 패전 후 아시오동산 '강제동원' 기록 담긴 책자 발간
- 日, 2006년부터 세계유산 등재 가능성에 대해 국내 조사 시작
- 구로베3댐, 강제동원 자료 발굴 안 돼.. 日 시민활동가 연구에 의존
- 강제동원 피해자 750만 명.. 강제동원위원회 한 번 더 만들면 좋을 듯
- 사도광산 추도식, 우리가 유족 참석비 부담? 日이 오히려 모셔가야

■ 방송 : MBC 라디오 표준FM 95.9MHz <김종배의 시선집중>(07:05~08:30)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전영욱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진행자 > 조금 전에 전해드렸죠. 오는 24일 사도광산 추도식이 열린다고 하는데요. 사도광산과 거의 유사한 유네스코 등재 움직임이 있다고 어제 전해드린 바가 있습니다. 오늘 이 문제를 점검하기 위해서 이분을 스튜디오로 모셨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 한일연구소 소속의 전영욱 연구위원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전영욱 > 안녕하세요.

◎ 진행자 > 지금 사도광산과 유사한 사례라고 지금 지목된 게 도야마현의 구로베댐 그리고 도치기현의 아시오 동산, 동산이라는 게 동을 캐내는 광산이라는 뜻이죠.

◎ 전영욱 > 네, 구리를 캐는 동산입니다.

◎ 진행자 > 이 두 가지가 지금 유사 사례다, 이렇게 지금 보고 있는 건가요?

◎ 전영욱 > 일단 재단뿐만 아니라 다른 관련된 연구를 하시는 선생님들도 대체로 그 두 건이 조금 유력하다고 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 진행자 > 아시오 동산 같은 경우는 조선인이 끌려가서 강제노동 당했다라는 연구나 자료 발굴이 많이 이루어졌습니까?

◎ 전영욱 > 다른 강제동원 현장과 비교하면 부족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데 그래도 상대적으로 기록들이 남아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런 걸 토대로 연구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진행자 > 기록상 그러면 조선인이 어느 정도나 끌려가서 노동을 했다고 지금 나오고 있어요?

◎ 전영욱 > 일본 패전 이후에 1946년쯤인가 일본 정부가 간행한 공식 기록이 있어요. 정부가 간행한 공식기록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있는 그런 기록인데 조선인 노무자에 관한 조사, 이런 제목의 책자입니다.

◎ 진행자 > 제목이 그렇게 돼 있어요?

◎ 전영욱 > 네, 거기에 나와 있는 아시오 동산에 강제동원된 조선인의 숫자가 2,416명 정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 진행자 > 16명까지 끝자리까지 나와 있습니까?

◎ 전영욱 > 네, 이름까지 다 나와 있는 겁니다.

◎ 진행자 > 그래요. 임금도 제대로 안 줬다고요?

◎ 전영욱 > 임금을 보통 그때 당시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특징인 건데 임금이 사실 체불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고.

◎ 진행자 > 그렇죠.

◎ 전영욱 > 그리고 그런 부분을 어쨌든 해결하겠다라고 하는 명분으로 그런 기록들도 남기고 막 그랬던 거죠.

◎ 진행자 > 혹시 아시오 동산에 끌려가서 노동했다가 현재도 살아계신 분 혹시 있을까요?

◎ 전영욱 > 아니요. 살아계신 분은 안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진행자 > 아직은 없는 걸로. 근데 지금 이것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라는 겁니까?

◎ 전영욱 > 넓게 얘기한다면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본이 세계유산 등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게, 중앙정부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게 2000년대 초중반이라고 알려져 있잖아요. 그 이전에는 관심을 안 가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때보다는 좀 덜했다고 맥락이 달랐다라고 얘기를 할 수 있는데, 그게 어쨌든 표면적으로 가시화가 된 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그쪽하고 군함도 포함한 거고요. 그때 2006년 2007년, 2008년에 걸쳐서 일본 정부하고 일본의 지방정부 차원에서 계속적으로 어떤 문화자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조사를 하기 시작해요.

◎ 진행자 > 그때부터?

◎ 전영욱 > 네, 그때부터 조사하기 시작하는 거죠. 그때 당시에 경제산업성이 근대화 산업유산이라고 하는 책자 같은 것들을 막 만들어내기 시작한 거죠. 한 66건 정도가 만들어지거든요. 그리고 문화청 같은 데에서 지방 정부에 제안서를 제출하라는 공모 같은 것들을 내고 그러거든요. 그때 꽤 많은 숫자의 제안서가 문화청으로 올라오게 된 것 같아요. 그때 잠정 목록으로 결정된 게 한 5건 정도가 되는데 사도섬은 그때 잠정 목록이 되는 겁니다.

◎ 진행자 > 사도광산 같은 경우도.

◎ 전영욱 > 네, 2008년에 잠정 목록이 되고 그리고 아시다시피 최근에 계속해서 등재 운동과 그런 걸 추진하다가 올해 등재가 된 것이고요.

◎ 진행자 > 아시오 동산도 그런 일련의 과정을 같이 하고 왔다.

◎ 전영욱 > 아시오 동산이랑 구로베3댐, 구로베3댐인데요. 구로베3댐도 도치기현이랑 도야마현에서 자기 지역에 속해 있는 문화자산이 세계 유산에 등재되면 좋잖아요. 지방 정부 차원에서 그런 맥락에서 이게 굉장히 가치가 있다라고 하는 제안서를 굉장히 상세하게 만들어가지고 2007, 2008년도에 제출하고 문화청에서 심의하고. 그래서 이거는 이 두 건은 잠정 목록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잠정 목록 후보에까지 올라가는 겁니다. 후보에까지 올라간 게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 진행자 > 구로베댐 같은 경우는 조선인 강제노동은 확인이 됐습니까?

◎ 전영욱 > 구로베3댐은 아시오 동산하고는 조금 다르게 더 난항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더 난항일 것 같은데 이게 아시오 동산은 아까 말씀드렸던 일본 정부 차원에서 만든 기록 차원에서 다 나와 있고 한데, 구로베3댐 같은 경우에는 그런 기록이 현재로서는 남아있지 않아요.

◎ 진행자 > 자료 발굴이 아직 안 됐습니까?

◎ 전영욱 > 네, 그래서 사실은 구로베댐은 연구도 거의 안 돼 있고 일본에서 연구가 조금 된 게 있습니다. 구로베 저편의 목소리라고 하는 책자를 쓴 일본 시민단체 활동가 분께서 굉장히 정말 좋은 연구를 하나 제출하신 게 있는데 그 연구에 현재로서는 저도 의지하고 있는 편인데 그 연구에 따르면 구로베3댐에 끌려갔었던 조선인들을 찾아가지고 직접 증언도 듣고 직접 필드 조사하면서 주변에 있는 절 같은 데 남아 있는 공양탑 같은 거 찍어보고 주변 증언 같은 거 듣고 다 하셨더라고요. 그때 그분의 결론이 구로베3댐 같은 경우 구로베3댐 건설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어떤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이 댐은 조선인 노동자가 없었으면 건설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하는 증언을 직접 들었다는 거죠. 그리고 그때 당시 발간된 지역신문 같은 데 보면 반도 노동자 반도 출신 노동자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기사들이 굉장히 많이 있고 그런 부분들을 종합하면 분명히 조선인 노동자가 존재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건 앞으로 연구해서 밝혀내야 되는 거긴 하겠지만 어찌된 일인지 조선인 노동자는 거의 소거된 채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 진행자 > 아무튼 이 두 건 같은 경우 그래도 등재를 추진하는데 여기서 제안서나 이런 데 쭉 기술돼 있는 내용이 있을 거 아닙니까? 거기서 조선인, 조선인 강제노동, 이런 기술은 없다라는 건가요?

◎ 전영욱 > 전혀,

◎ 진행자 > 전혀 없었나요?

◎ 전영욱 > 한 줄도 없습니다.

◎ 진행자 > 사도광산하고 똑같네요.

◎ 전영욱 > 네.

◎ 진행자 > 그래요. 그러면 좀 더 확실한 사료 발굴이 필요한 거잖아요. 그럼 이건 정부가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 되는 거 아닌가요, 어떻게 보십니까?

◎ 전영욱 > 역사학자로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근데 예전에 노무현 정부 시절 때 만들어졌었던 강제동원위원회라고 있었잖아요. 대일항쟁, 굉장히 긴 제목의 위원회 그 위원회에서 한 10년 정도 조사를 진행을 했었는데 피해 신고가 접수가 되고 접수된 피해 신고를 토대로 조사해서 피해자라고 밝혀진 건수가 15만 건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 진행자 > 피해라는 게 주로 끌려가서 노동에 시달렸다.

◎ 전영욱 > 네, 노무 동원에 한정해서.

◎ 진행자 > 노무 동원에 한정한 게 15만 건.

◎ 전영욱 > 근데 보통 연구자들이 노무 동원의 현황이라고 했었을 때 일반적으로 750만 명 정도를 얘기를 하거든요.

◎ 진행자 > 일제강점기에서 끌려간.

◎ 전영욱 > 네, 근데 피해 신고 자체가 그렇게 10년 동안 조사를 했는데도 15만 명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까 차라리 제 개인적으로는 제가 지금 속해 있는 연구재단에서도 그런 작업들을 꾸준히 하고 있고 예산의 지원 여부에 따라서 더 더욱더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차라리 위원회 같은 걸 한 번 더 만들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있습니다.

◎ 진행자 > 전담해서 이것만 발굴하는.

◎ 전영욱 > 네.

◎ 진행자 > 그렇죠. 그런 게 필요할 수도 있겠죠. 그나저나 지금 사도광산 추도식이 3일 뒤에 열린다라는 거잖아요.

◎ 전영욱 > 24일에.

◎ 진행자 > 아무것도 안 정해졌고 경비 지원도 안 한다는데 어떻게 받아들이셨어요? 위원님은.

◎ 전영욱 > 참 이게 상식적이지 않다는 생각은 했어요. 정무적인 감각으로 봤을 때도 제가 만약에 일본 정부의 관계자라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서 한국 측 의사를 조금 타진한다든가 아니면 현재 사도광산의 피해와 연관되어 있는 유가족들을 직접적으로 컨택을 해가지고 모신다든가 말 그대로.

◎ 진행자 > 모셔가야 되는 거 아닙니까?

◎ 전영욱 > 그런 식으로 하면 오히려 일본 쪽에 정무적으로 더 좋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죠.

◎ 진행자 > 그러니까 모셔가도 부족한 판인데 오시려면 오세요, 경비는 저희 못 대 줘요, 이거 아닙니까? 지금 모드가.

◎ 전영욱 > 왜 그럴까 왜 그럴까 고민을 해보면 잘 모르겠습니다. 결국에는 역사수정주의의 큰 줄기 속에서 해석을 할 수밖에 없는 건데

◎ 진행자 > 그럴 수밖에 없겠죠.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들어야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 전영욱 > 고맙습니다.

◎ 진행자 > 동북아역사재단의 전영욱 연구위원이었습니다.

[내용 인용 시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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