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득점 461개, 황연주가 22년 동안 V리그에 남긴 기

V리그 역사는 두 개의 시간으로 나눌 수 있다. 황연주가 있었던 22년,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 극단적인 구분처럼 들릴 수 있지만, 숫자를 보면 그렇게 부르는 것이 오히려 정확하다.

2005년 리그 원년부터 2025-2026시즌까지, 황연주는 단 한 시즌도 빠지지 않았다. 그 22시즌 동안 쌓인 기록은 통산 510경기 5,868득점, 후위득점 1,269개, 서브득점 461개다. 득점은 역대 3위, 후위득점은 2위, 서브득점은 1위다. 남녀부를 통틀어 최초로 서브 300득점을 돌파한 선수도 황연주였고, 남녀부 최초 통산 5,000득점도 황연주가 먼저 달성했다.

은퇴 이후 이런 숫자들은 주로 "레전드의 발자취"라는 맥락으로 소비된다. 하지만 이 기록들을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깝다. 숫자 안에는 황연주가 V리그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했는지가 담겨 있다.

아포짓 스파이커는 배구에서 가장 득점 생산에 특화된 포지션이다. 팀의 공격 전술이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설계될 때 국내 아포짓의 역할은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후반 커리어로 갈수록 이 구조적 압박은 커진다.

황연주는 그 압박을 서브로 뚫었다. 역대 서브득점 1위라는 기록은 단순히 서브를 많이 넣었다는 뜻이 아니다. V리그에서 22시즌 동안 공격 외의 방식으로도 득점원이 될 수 있었다는 증거다. 국내 선수 한 경기 최다인 서브득점 7개를 기록한 2011년 1월의 GS칼텍스전은 그 정점이었다.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황연주의 전성기를 한 시즌으로 특정하라면, 2010-2011시즌이 가장 선명하다. 흥국생명을 떠나 현대건설로 이적한 첫해, 그는 팀을 통합우승으로 이끌었고, 정규리그 MVP, 챔피언결정전 MVP, 올스타전 MVP를 모두 가져갔다. 여자배구에서 한 선수가 이 세 개 MVP를 한 시즌에 독식한 건 당시까지 전례가 없었다. 챔피언결정전에서는 6경기 116득점, 서브에이스 9개, 블로킹 11개를 기록했다. 팀 최다 득점이었다.

이 시즌이 특별한 이유는 맥락 때문이다. 이적 첫해는 아무리 기량이 뛰어난 선수에게도 불안정한 환경이다. 황연주도 당시 인터뷰에서 "새 팀에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심했다"고 직접 말했다. 그 부담을 MVP 3관왕으로 소화한 시즌이 2010-2011이었다.

2024-2025시즌 종료 후, 황연주는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 섰다. 현대건설이 재계약 불가 방침을 전했다. 은퇴 대신 그는 한국도로공사 유니폼을 선택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새 팀을 찾는 결정이었다.

2025-2026시즌 도로공사에서 황연주는 20경기 21득점을 기록했다. 주전이 아니었다. 외국인 선수 모마의 백업으로 출전 시간은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팀은 정규리그 1위와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차지했다. 황연주는 그 안에서 작은 기여를 했고, 구단은 이번 시즌에도 동행을 원했다. 황연주가 먼저 은퇴를 결정했다.

그가 구단에 전한 말은 짧지만 분명했다. "선수로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을 때 아름답게 은퇴하고 싶다." 주전이 아닌 상태에서도 코트에 남을 수 있었지만,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기록을 더 쌓기보다 마무리의 타이밍을 직접 선택했다.

황연주의 은퇴가 V리그에 남기는 질문은 두 가지다.

첫째, 아포짓 포지션의 계보다. 황연주가 22시즌 동안 채워온 국내 아포짓 자리는 V리그에서 항상 외국인 선수에 밀려 있었다. 황연주는 서브와 후위공격이라는 보조 도구로 그 격차를 메워왔다. 그 방정식을 다음 세대 국내 아포짓들이 얼마나 빨리 찾아낼 수 있을지는 앞으로 몇 시즌이 판가름할 것이다.

둘째, 서브득점 역대 1위 기록이 가진 무게다. 461개는 단기간에 깨지기 어려운 숫자다. 서브득점은 한 경기에서 기복이 크고, 리그 전체에서 이 기록에 근접한 선수가 현재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숫자는 많지만, 황연주를 설명하는 숫자를 하나만 고르라면 461이 적당하다. 서브득점 역대 1위. 득점도 후위득점도 아닌, 가장 직접적인 의지로 만들어내는 기록. 22년이라는 시간이 그 숫자 하나에 응축돼 있다.

기록은 이미 닫혔다. 평가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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