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화재: 왜 피해가 컸나?... 오래된 건물 안전 기준 어떻길래
경기도 부천의 한 숙박업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사망했다. 화재 규모나 진압 속도에 비해 인명 피해가 컸던 것으로 파악되면서 오래된 건물의 화재 안전 기준이 논란이 됐다.
23일 부천시 재난안전대책본부는 전날 오후 7시39분쯤 경기도 부천 원미구 중동 소재 숙박업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오후 10시26분쯤 진압됐다. 이날 오전 9시30분을 기준으로 사고 사망자는 7명, 부상자 12명(중상 3명·경상 9명)이 발생했다.
지상 9층·지하 2층짜리 숙박업소 7층에 위치한 810호에서 맨 처음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투숙객은 23명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사망자 대부분은 7층과 8층에서 발견됐다. 사인은 모두 연기로 인한 질식사였다.
피해자 중 두 명은 7층에서 소방서가 마련한 에어매트 위로 뛰어내렸지만, 매트가 뒤집히면서 사망했다. 해당 영상은 SNS에도 공유되며 큰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먼저 뛰어내린 여성이 매트의 모서리 부분으로 떨어졌고, 이후 남성이 뒤따라 뛰어내리면서 매트가 뒤집혔다. 바닥 경사 등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다른 부분에 대해서 전문가 자문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프링클러 없는 건물
7층에서 시작된 불길은 다른 층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오래된 카페트와 가구, 침구류 등이 불에 타면서 다량의 유독가스를 뿜어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방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해당 숙박업소는 2003년 지어져 스프링클러를 의무화한 법 적용을 받지 않았다.
스프링클러는 천장에 설치돼 화재가 발생한 공간의 열기를 감지해 물을 뿌려주는 기능을 하는 소화설비다. 대부분 연기를 직접 제거하는 기능은 없지만, 화재를 조기 진압해 더 이상의 연기 발생을 막는 역할을 한다.
2017년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하 소방시설법 시행령) 개정으로 이때부터 6층 이상 모든 신축 건물 내 층마다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다. 개정 전에는 11층 이상 건물만이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일부 의료기관 등을 제외하고 개정된 법안이 소급 적용되지 않아 아직도 노후건물을 중심으로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 많다.
2022년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 때도 7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는데, 불이 20여 분 만에 꺼졌음에도 건물의 밀폐된 구조와 스프링클러 미설치가 피해 규모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해당 사무실이 위치한 곳은 1995년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내가 있는 곳은 안전할까?
그렇다면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건물의 안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장은 BBC 코리아에 “일반인이 노후건물의 안전 상태를 진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도 스프링클러 설치 여부와 비상구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협회장은 “비상계단으로 나가는 문은 꽉 닫혀 있어야 한다”며 “간혹 (환기나 이동 등의 이유로) 문을 열어놓거나 아예 스토퍼로 고정해 놓은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화재 시 연기 통로가 되면서 감옥이 되어버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닫힌 문을 열기 전 문 뒤에 불길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손등으로 문 손잡이 온도를 확인하고 열어야 한다.
행정안전부는 화재 발생 장소에 연기가 많을 때 한 손으로 코와 입을 젖은 수건 등으로 막고 기어서 이동하되 배를 바닥에 대고 가지 않도록 안내하고 있다.
이 협회장은 “에어매트는 마지막 카드라고 생각해야 한다”라며 창문이 “밖으로 대피하는 유일한 통로”일 때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숙박업소를 기준으로 △창문이 열고 닫기 힘들지 않은지 △전기사업법·가스관련 법령 등에 의한 법적 정기검사를 받았는지 △구비된 소화기의 압력눈금이 녹색 부분에 위치해 있는지 △유도등 등 비상조명등 불이 켜져 있는지 등의 안전 기준을 참고할 수 있다.
정부는 ‘안전정보 통합공개 시스템’을 통해 학교·공연장·숙박업소 등 다중이용시설의 안전점검 및 진단 결과를 한곳에 모아 공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