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숨진 중국 조선족 노동자의 이야기
“시신 신원 확인을 위해 병원에 갔습니다. 모두가 제게 시신을 보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전 마지막으로 딸을 보고 싶었습니다…그렇게 시신을 확인했는데 차마 제 딸이라는 걸 믿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예뻤던 제 딸은 이제 죽고 없습니다. 그 모습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중국 지린성 옌볜 출신 조선족으로, 한국에서 수년째 일하고 있는 주하이위는 경기도 화성시에서 이뤄진 BBC 중국어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주 씨의 딸이 숨진 곳이기도 하다.
한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오전, 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중국인 17명, 라오스인 1명, 한국인 5명 등 총 23명이 숨졌다. 중국 언론은 중국인 희생자 대부분이 조선족 여성이라고 확인했다.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벌어진 최악의 화재 사건 중 하나로 손꼽히는 참사다.
주 씨의 딸 비에리메(37)는 해당 공장에서 일한 지 고작 한 달 만에 이 같은 참변을 당했다. 다른 유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주 씨 또한 사건 당일, 공장 폭발 사고와 연이어 발생한 화재로 가족이 숨졌다는 비보를 접했다.
눈물을 닦은 주 씨는 취재진에게 딸 리메가 보낸 마지막 문자를 보여줬다. 화재 당일 오전 7시51분, 리메는 언제나 그렇듯 일을 시작하기 전 ‘출근했어’라는 문자를 보냈다.
퇴근 후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 끝났어’라는 문자를 보내오던 딸이었지만, 해당 문자는 주 씨 딸과 주고받은 마지막 문자가 됐다.
이번 사건의 엄청난 인명피해는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화재 당일 현장을 방문해 여러 활동을 지시했다.
주한 중국 대사관 측은 깊은 우려를 표하는 한편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약속했다.
여러 외신과 현지 언론 또한 현장에 나와 사건을 보도했는데, 한국에서 자주 발생하는 배터리 관련 공공 안전 재해 및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근무 환경 등에 대한 비판이 대부분이었다.
- '한국인 꺼리면 중국인 쓰면 그만?'...아리셀 참사 희생자 대부분이 중국동포인 이유
- 유가족 지원부터 유독 물질 2차 피해 우려… '화성 화재' 그 다음은?
- 첨단 기술 발달한 한국인데 왜 '대형 사고'가 끊이지 않을까
더디기만 한 배상 절차
비가 세차게 내렸던 지난 2일, BBC 중국어 취재진은 서울에서 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화성으로 향했다.
북동부 접경 도시 등에서 온 희생자의 유족들은 이곳 화성에서 휴식을 취하며 사고 조사 및 배상 절차 진행 상황을 전달받는다.
이곳엔 추모의 글귀와 당국을 비난하는 문구가 가득했다.
인명 피해가 컸던 이번 참사에 대한 답을 촉구하는 크고 작은 기자회견도 연이어 열렸다.
회의에 참석한 지역 노조 대표들과 정치인들은 적극적으로 공장 측과 정부에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BBC 취재진에게 더욱더 깊은 인상을 남긴 건 바로 유가족들의 지치고 불안한 표정이었다. 이들 대다수가 사고 조사 및 배상 절차 진행 상황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일부 유가족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어서 정당한 배상을 받은 뒤 사랑하는 이를 위한 장례 절차를 서두르고 싶을 뿐이라고 호소했다.
여기 모인 유가족 중 다수가 화성에 오고자 잠시 하던 일을 멈춘 상태다. 이들은 깊은 슬픔에만 빠져있을 수 없다. 이들 앞엔 현지의 복잡한 법적 절차와 서류 작업 등이 기다리고 있다.
몇몇 유가족들은 이미 너무 힘든 상태라고 호소했다.
이번 사건으로 전처가 사망해 16살 난 아들과 함께 중국 옌볜에서 왔다는 쑤 씨는 “저들이 말하길 배상은 자식이 아닌 배우자에게만 주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미 아이 엄마와 이혼한 지 오래다. 어떻게 해야 하냐”며 허탈감을 드러냈다.
한편 다른 많은 유족과 마찬가지로 주하이위 또한 중국 동북부 옌볜 조선족 자치주 출신으로, 현재는 조선족들이 모여 사는 안산에 살고 있다.
지난 2014년, 주 씨는 당시 20대였던 딸 리메와 함께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엔 자신들을 돌봐줄 친지나 지인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었다.
리메는 중국에 16살 난 아들을 두고 있었다. 아들은 아빠와 살고 있다.
그리고 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금, 리메의 아들을 포함한 일가친척들은 화성으로 와 서로 돕고 있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지 1주가 넘어가도 여전히 수사와 배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주 씨는 불만이 크다.
주 씨는 BBC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딸 리메는 이 공장에 다닌 지 고작 한 달째였다며, “이곳 공장은 대우도 좋고, 덜 피곤하기에”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이전에도 소규모 화재 사건이 발생해 주 씨는 딸에게 여전히 안전한지 물었고, 딸은 다 괜찮다며 안심시켰다.
“그러나 다른 조선족 근로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후에도 다른 화재 사건이 있었으나, 딸이 제게 말하지 않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딸을 다시는 그곳에 가게 놔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편 주 씨는 해당 공장의 안전 교육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주 씨는 휴대전화를 꺼내 현재 인터넷에도 널리 유포된 영상을 보여줬다. 폭발 당일 공장 내부를 담은 CCTV 장면이다.
주 씨는 눈물을 흘리며 화면을 가리켰다. 처음 폭발이 일어났을 때 현장에서 연기가 났으며, 영상 속 사람들은 불을 끄느라 바빴다고 한다. 당시 딸은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었으나, 서둘러 대피해야 한다는 걸 몰랐다. 그러나 불길은 빠른 속도로 걷잡을 수 없게 퍼졌고, 딸과 다른 동료들은 공포에 질려 안전문이 없는 막다른 방향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결국 화염에 휩싸였다.
주 씨는 BBC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직원들에게 개인적으로 안전 교육을 실시했으나, (중국에서 온) 조선족들은 한국어를 잘 알아듣지 못했던 것 같다”는 게 공장 측의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주 씨는 “어떻게 조선족이 한국어를 못 알아듣겠냐? 교육만 있었다면 이토록 젊고 건강한 청년들이 막다른 방향으로 달려갔겠냐. 어떻게 바깥으로 뛰쳐나가거나, 심지어 아래로 뛰어내리는 걸 모를 수가 있었겠냐”며 분노를 표했다.
‘코리아타임스’에 따르면 사고 공장인 ‘아리셀’의 박순관 대표이사는 지난주 비극적인 사고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공장 직원들은 비상 상황 대응 훈련을 받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미 ‘뉴욕 타임스’는 한국 경찰이 박 대표이사와 다른 경영진들의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에 대해 조사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한국에선 최근 몇 년간 이주 노동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며 노동 시장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그런데 이주 노동자의 산재 사망률이 한국인 근로자에 비해 거의 3배나 높다는 보도도 있다.
지난 며칠간 주 씨는 유품 정리를 위해 딸이 살던 곳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이틀 밤을 지냈지만, 너무 마음이 아파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다.
주 씨는 딸을 잃은 이후로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모든 게 끝나지 않은 악몽같이 느껴진다고 호소했다.
주 씨는 딸의 물건을 정리하러 방문했을 때 “이 문 앞에 딸이 나를 기다리며 ‘엄마예요?’라고 말하진 않을지 생각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제 전 배상금 규모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제 딸이 죽은 이유를, 제 딸을 위한 정의가 실현되길 바랄 뿐입니다. 그저 딸을 제대로 묻어주고 싶을 뿐입니다. 이러한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전 세계 어디에서도요.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워선 안 됩니다.”
한국의 조선족
한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은 약 80만 명으로, 중국과 북한 국경 지역인 옌볜 조선족 자치주 출신이 대부분이다.
일제 강점기 및 태평양 전쟁 기간, 일부 조선족들은 중국 북동부로 이주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항복하면서 이들 중 절반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1992년, 한국이 대만과의 외교적 관계를 단절하고 중국과 수교하면서 조선족들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치적 요인 외에도 경제적인 이유가 컸다. 중국 북동부 지역의 국영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일자리를 잃은 조선족 노동자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대거 한국으로 이주하면서 한국 내 중국 조선족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던 2004년,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들을 ‘재외동포’로 분류하며 입국 2~4년간 유효한 ‘재외동포 비자’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책으로 더 많은 이들이 한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었다. 고향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최저 월급은 1만500위엔(약 200만원)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