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를 표현하는 언어의 한계
우리는 특정 냄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종종 그 냄새가 나는 사물이나 음식을 빌려와 표현하곤 합니다. ‘갓 구운 빵 냄새’, ‘상큼한 레몬 향’처럼 말이죠. 이는 단순히 표현의 편의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뇌과학적으로 우리의 후각은 논리와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과의 연결이 다른 감각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향기롭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냄새는 무시하고 ‘무향(無香)’의 상태를 지향하는 현대 문화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냄새를 제대로 인지하고 표현할 기회를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만약 세상의 모든 냄새가 사라진다면 어떨까요?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리는 공기의 냄새, 특정 장소나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냄새, 갓 내린 커피나 맛있는 음식의 냄새가 없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건조하고 무미건조해질 것입니다. 냄새는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강력한 방아쇠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문학 속 냄새: 최은영의 <밝은 밤>
이처럼 표현하기 어려운 냄새의 세계를 섬세한 언어로 포착하여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소설가 최은영은 그녀의 장편소설 <밝은 밤>을 인상적인 냄새에 대한 묘사로 시작합니다.
“나는 희령을 여름 냄새로 기억한다. 사찰에서 나던 향 냄새, 계곡의 이끼 냄새와 물 냄새, 숲 냄새, 항구를 걸어가며 맡았던 바다 냄새, 비가 내리던 날 공기 중에 퍼지던 먼지 냄새와 시장 골목에서 나던 과일이 썩어가는 냄새, 소나기가 지나간 뒤 한의원에서 약을 달이던 냄새…… 내게 희령은 언제나 여름으로 기억되는 도시였다.”
작가는 ‘희령’이라는 공간을 하나의 감각, 바로 ‘여름 냄새’로 기억합니다. 그중에서도 ‘비가 내리던 날 공기 중에 퍼지던 먼지 냄새’는 많은 이들이 공감할 법한, 매우 익숙하면서도 막상 설명하기는 어려운 냄새입니다. 우리는 평생 이 냄새를 맡아왔지만, 그저 ‘비 냄새’, ‘흙냄새’ 정도로만 표현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독특한 냄새에도 사실은 이름이 있습니다.
비 냄새의 진짜 이름, 페트리코(Petrichor)
비가 오기 시작할 때, 마른 땅에서 피어오르는 그 독특한 냄새의 이름은 바로 ‘페트리코(Petrichor)’입니다. ‘페트리코’라는 이름은 1964년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 소속 과학자였던 이사벨 베어(Isabel Bear)와 리처드 토머스(Richard Thomas)가 과학 저널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로 ‘돌’을 의미하는 ‘petra’와 신들의 혈관에 흐르는 피를 의미하는 ‘ichor’의 합성어로, 문자 그대로 ‘돌의 피’라는 시적인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과학자들은 오랜 건기 끝에 비가 내릴 때 식물들이 발산하는 특정 유성 액체가 점토질 토양이나 암석의 미세한 틈에 흡수되었다가, 비가 내릴 때 공기 중으로 방출되면서 독특한 향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비 냄새에 이토록 아름다운 이름과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페트리코는 어떻게 우리 코에 닿을까?
그렇다면 땅속에 갇혀 있던 이 냄새 분자들은 어떻게 우리 코까지 전달되는 걸까요? 2015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의 과학자들이 이 과정을 고속 카메라로 촬영하여 그 비밀을 밝혔습니다.
연구팀의 영상에 따르면, 빗방울이 다공성의 마른 흙 표면에 떨어지는 순간, 빗방울 안에 아주 작은 공기 방울들이 갇히게 됩니다. 이 공기 방울들은 곧바로 빗방울 표면으로 올라와 터져 나오는데, 이때 아주 미세한 입자들, 즉 ‘에어로졸(aerosol)’을 공기 중으로 분사합니다. 바로 이 에어로졸 안에 흙과 암석 틈에 존재하던 냄새 분자들이 포함되어 있고, 이것이 바람을 타고 퍼져나가 우리의 코에 닿아 ‘페트리코’라는 향기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샴페인 병을 열었을 때 탄산가스가 거품을 일으키며 향을 퍼뜨리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페트리코와 지오스민: 미묘하게 다른 흙냄새
비 오는 날의 냄새를 이야기할 때 페트리코와 함께 언급되는 또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지오스민(Geosmin)’입니다. 지오스민은 ‘흙’을 뜻하는 ‘geo’와 ‘냄새’를 뜻하는 ‘osme’가 합쳐진 단어로, 말 그대로 ‘흙냄새’를 의미합니다.
• 지오스민(Geosmin): 비가 계속 내리거나 비가 그친 후에 느껴지는, 보다 짙고 눅눅하며 곰팡내와 비슷한 흙냄새입니다.
지오스민은 방선균(Actinomycetes)이라는 토양 박테리아가 만드는 유기 화합물입니다. 이 박테리아가 죽을 때 지오스민이 방출되는데, 빗방울이 흙을 때리면서 이 분자가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인간의 코는 이 지오스민 냄새에 극도로 민감해서, 공기 중에 아주 적은 양만 있어도 감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냄새는 사막의 낙타가 오아시스를 찾도록 돕고, 민물고기에게 산란 장소를 알려주는 등 자연 생태계에서 중요한 신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흙냄새를 담은 향수, 미티 아타르(Mitti Attar)
놀랍게도, 이 비 온 뒤의 흙냄새, 즉 페트리코를 병에 담아 향수로 만드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인도의 ‘향수의 수도’라 불리는 카나우지(Kannauj)입니다. 이곳에서는 ‘미티 아타르(Mitti Attar)’라는 전통 향수를 만드는데, ‘미티’는 힌디어로 ‘흙’을 의미합니다.
제조 과정은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전통 방식을 따릅니다. 조향사들은 몬순 우기가 오기 전, 몇 달간의 건기로 바싹 마른 땅의 흙을 퍼내 원반 모양으로 빚어 가마에 굽습니다. 이 구워진 흙 원반을 ‘데그(deg)’라는 거대한 구리 증류기에 넣고 물을 부어 끓이면, 흙냄새를 머금은 증기가 발생합니다. 이 증기는 대나무 관을 통해 백단향(샌달우드) 오일이 담긴 통으로 옮겨져 응축됩니다.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 백단향 오일은 마른 땅에 처음 비가 내릴 때의 그 상쾌하고도 깊은 흙냄새를 온전히 흡수하게 됩니다. 이렇게 탄생한 미티 아타르는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첫 비의 생명력과 안정감을 담은 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냄새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
우리가 무심코 ‘비 냄새’라고 불렀던 향기 속에는 페트리코와 지오스민이라는 이름, 그리고 복잡한 과학적 원리와 문화적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어떤 현상이나 감각에 이름을 붙여준다는 것은 그것을 더 명확하게 인식하고, 더 깊이 이해하며,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페트리코’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으니, 다음에 비가 내릴 때 창문을 열고 그 냄새를 맡는 경험은 이전과는 사뭇 다를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코끝을 스치는 냄새에는 어떤 이름과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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