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규 경북대 국어교육과 교수]
최인훈의 소설 『광장』이 1960년 4.19혁명이 낳은 자유의 공간에서 쓰인 작품이라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1960년 11월 <새벽>에 처음 발표되었는데, 그 서문에 작가는 ‘저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낀다고 썼다. 4.19혁명은 『광장』의 입구에 비석처럼 서 있다.
최인훈이 1962년에 발표한 소설 『구운몽』이 5.16군사정변 이후의 공포를 악몽의 형식으로 쓴 작품이라는 건 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꿈을 그리고 있는 만큼 그 이야기가 단절적이고 환상적이다.

이 꿈 이야기에서 주인공 '독고민'은 선생님, 사장님, 각하 등으로 호명되고 그에 맞는 역할을 요구받지만, 독고민으로서는 이 호명을 자신과 전혀 연관지을 수 없기에 당혹스럽다. 독고민이 이 호명을 피해 달아나고 시인들과 회사의 중역, 댄서 등이 독고민을 추격하는 이상한 상황이 반복되고, 이 과정에서 그가 혁명의 수괴가 되어 쫓기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혁명을 진압하려는 정부군에 쫓기다가 광장에서 처형당하지만, 또 다른 장면에서 겨우 목숨을 건져 망명길에 오른다.
이 이야기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상상력은 신체가 분리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독고민이 강을 헤엄쳐 달아나는 장면에서 그의 팔과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왼팔은 다시 두 조각으로 나뉘어 두 개의 왼팔이 되고, 오른팔 오른 다리, 그리고 가운데 토막도 모조리 쪼개지고, 쪼개진 조각들이 또 쪼개져 삽시간에 강은 수없이 많은 몸의 조각들로 덮인다. 이 쪼개진 몸의 조각들을 본다. 강 저쪽을 보니 또 이런 신체들이 자신의 부족한 신체를 맞추기 위해 달려오고 있다. 이 괴물들이 자신에게 없는 신체를 찾아 맞추기 위해 달려오는 장면은 괴기스럽다.

최인훈이 이 기괴한 이야기에서 그려 보인 것은 4.19혁명으로 얻게 된 자유가 5.16군사정변의 총칼 앞에서 무참히 살해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달콤한 자유가 한갓 허망한 꿈이 되어 흩어지고 말았다는 차갑고 절망적인 인식이었다. ‘저 빛나는 4월이 가져다준 새로운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광장을 통해 한껏 드러내 보였던 이에게 있어 그 뒤에 일어난 상황은 악몽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024년 겨울부터 2025년 여름 사이 우리는 또 한 번 악몽의 계절을 살았다. 그동안 우리는 초현실적인 사건을 여러 차례 겪었고 그때마다 우리 사회가, 우리 신체가, 우리의 정체가 분리되는 경험을 해야 했다. 내란의 우두머리와 그 잔당들이 버젓이 활개 치는 세상을 보고 몸서리친 밤은 얼마였으며, 악몽을 꾸다 깨어나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 뉴스를 찾아 읽은 새벽은 또 얼마였던가.

이 계절을 겪은 눈으로 『구운몽』을 다시 읽어 보니 이 작품이 그리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는 그 시대 시민의 심층심리를 가장 충실하게 그린 이야기라는 걸 알겠다. 『구운몽』의 독고민은 사랑을 기약하는 것으로 망명길에 오르며 암구호를 주고받는다. ‘피닉스는 또다시 날까요?’, ‘사랑이 있는 한 날 것입니다.’
2025년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 1962년 최인훈이 당한 현실과 다르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그 겨울 거리에서 우리가 함께 불렀던 노래, 함께 써 내려간 이야기는 1962년 독고민이 기약했던 사랑 그것이었으리라.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지금, 해야 할 일이 많고 또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삶이 늘 그렇고 역사가 그렇듯이 어려움이야 있겠으나 그건 그것대로 힘껏 해나가되, 그 겨울 우리가 나눈 사랑을 생각하고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있는 한 우리는 또다시 날아오를 것이다.
※ 류동규는 현재 경북대 국어교육과에서 한국 근현대소설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 전후 작가와 작품에 대해 연구하여 관련 연구서로 <전후 월남작가와 자아정체성 서사>, <식민지의 기억과 서사> 등을 출간했다. 소설 읽기가 시민성을 기르는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으로, 글쓰기와 강의를 통해 이를 공유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식민지 시대의 교육자이자 무교회주의 사상가였던 김교신 선생의 사상과 실천에 대해 공부하고 알리는 데 진심이다.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 운영위원을 맡고 있으며, 곧 김교신 선생에 관한 저서를 출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