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10반' 루키 김동현의 한마디가 바꾼 것.
“3학년 10반 친구들에게 고맙다.”
조금은 느린 템포로 진행됐던 지난 9월 12일의 2025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9순위에 KT의 지명을 받은 KT 김동현의 이 한마디에 저는 두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지금까지 드래프트를 포함한 공식적인 인터뷰에서 루키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어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야구부를 포함해 여러 운동부가 있는 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매 학년, 저와 같은 반에 야구부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야구부 친구와 제가 같은 반이었음에 저는 그 친구들과 공유하고 있는 추억이 별로 없습니다. 제 학창 시절 만해도 그 야구부 학생들은 수업에 자주 빠졌고, 수업에 들어올 때는 주로 잠을 잤습니다. 새 학년을 맞이하고 학기 초에 소풍이나 현장 학습을 갈 때 잠깐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멀어지고 서먹서먹해졌습니다. 이게 제 학창 시절이니 벌써 30년이 넘은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이런 운동부의 모습이 최근까지도 대부분의 ‘일반 학생들’이 기억하고 있는 야구부 뿐 아닌 우리나라 ‘운동부 학생’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3학년 10반 친구들에게 고맙다.”
여기에 대해서 김동현 선수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기 전, 먼저 김동현 선수의 모교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김동수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도 어제 생방송으로 지켜봤는데 안 그래도 동현이가 그 이야기를 해서 살짝 웃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동현이가 속한 반이 운동부랑 예체능 학생을 모아둔 반인가 보다 생각을 했었는데 확인을 해보니 아니라고 하네요.”
저는 선수로서의 김동현 선수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제가 올 초에 부임을 해서 선수들을 쭉 보는데 동현이를 처음 보고 좀 놀랐어요. 키가 190CM가 넘는데도 밸런스가 참 좋았거든요. 장신 중에는 그런 밸런스를 갖춘 선수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동현이는 장신에도 좋은 밸런스를 가지고 있는 선수입니다. 3학년 초만 해도 힘이 본격적으로 붙지 않아서 1,2회를 던지면 3회부터 구속이 급격하게 떨어졌는데 워낙 성실하게 운동을 하는 선수라서 점점 힘이 붙었어요. 성실하다는 게 어린 선수가 운동을 찾아서 할 줄 알아요. 프로 가면 금방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동수 감독은 재능에 성실함까지 갖춘 선수라고 제자 김동현 선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반 친구들을 공식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에 대해서 김동수 감독도 기특함에 직접 물어봤다고 합니다.
“친구들한테 약속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같은 반 애들이랑 지명 받으면 그렇게 말을 하기로 약속을요.”
자! 이제 김동현 선수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입니다. 김동현 선수와는 드래프트가 진행된 후 이틀이 지난 9월 13일 전화통화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먼저 제가 가장 궁금했던 점은 김동현 선수는 어떤 학창시절을 보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에 코로나 시기여서 친구들을 사귈 기회가 없었어요. 친구들 얼굴을 줌을 통해서만 봤었죠. 그래서 고등학교 가면 친구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1학년 때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친구들도 저를 어려워했고 저도 다가가기 어려웠고요. 그러다가 고2가 됐는데 좋은 친구들이랑 좋은 선생님 만났고요. 참, 그 때 친구들도 3학년 10반 친구들 못지않게 응원을 해주고 또 제가 지명을 받은 것을 축하해줬습니다.”
김동수 감독이 말한 친구들과의 ‘약속’은 3월에 했던 공약이었다고 하네요.
“고3 이 됐는데 친구들 중에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경기 나가고 그러면 응원도 많이 해주고요. 그렇게 응원을 해주니까 학기 초인 3월에 저도 공약을 걸었습니다. ‘내가 만약에 1라운드에 지명이 되면 인터뷰에서 3학년 10반 친구들 고맙다는 이야기를 꼭 할게!’ 이렇게요.”
3학년 10반 친구들은 위 영상에서 보듯이 김동현 선수의 이름이 호명되자마자 학교가 떠나갈 듯이 환호성을 내질렀습니다. (영상 제공 : 김동현 선수 본인)
그런데 지명을 받고서 단상에 올라서 했던 인터뷰에서는 너무 떨려서 정작 본인이 그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을 못했다고 합니다.
“1라운드 지명을 받고는 공약을 꼭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단상에 정작 올라갔을 때는 머리 하얗게 돼서 우리 반을 이야기했는지 잘 몰랐습니다. 친구들이 제가 지명을 받을 때와 제가 3학년 10반 이야기를 할 때 영상을 보내줘서 ‘내가 말을 했구나’ 생각했는데, 다들 환호하고 선생님께서 우시는 모습을 보니까 저도 찡했습니다.”
위 영상처럼 '3학년 10반' 언급에 환호해준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사실 제가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에요. 친구를 사귀고 싶어도 먼저 잘 다가가지도 못하고요. 그런 제게 3학년 10반의 친구들은 먼저 다가와줬고요. 절 응원해줬습니다. 또 제 말 한마디에 친구들이 이렇게 좋아하고 감동하는 모습에도 많이 놀랐습니다. 저도 감동했고요. 사실 친구들과 매일 연락하면서 지낸 것은 아니지만 같은 반이라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 기뻐해주고 좋아해주는데 제가 프로에 가서 더 잘해서 더 기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아. 고맙다.”
사실 이 말은 고교야구 선수들의 입에서 '공식적으로' 가장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습니다. 고교 야구 선수들은 선수이기 이전에 학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김동현 선수를 통해서 직접 듣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준 서울 고등학교의 김동현 선수에게 정말 고맙고, KT위즈 입단 이후에도 서울 고등학교 3학년 10반 친구들과의 우정 오래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학생 선수들을 야구(혹은 운동)하는 기계가 아닌 선수이자 학생으로 만들기 위해서 2010년대부터 대대적인 정책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스포츠 계에서는 기량 저하의 우려로 반발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기존의 엘리트 스포츠의 접근 방법으로 보면 당연히 우려가 되겠죠. 엘리트 스포츠는 위기가 맞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입을 모아서 엘리트 체육의 위기라고 하는데 파리 올림픽에서 우리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은 역대 최고의 성적에 버금가는 성적을 올렸습니다. 이건 왜 일까요? 이 길이 옳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3학년 10반 친구들에게 고맙다.
저는 말의 힘을 믿습니다. 비록 길지않은 단 한 문장이었지만 김동현 선수의 이 한마디가 우리나라 학생 야구계가 아니 더 나아가 학생 체육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마디임을 저는 믿고 싶습니다.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