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65살 넘어 갑자기 혼자 여행을 가겠다길래.." 돌아와 꺼낸 한마디에 멈춰섰다

평생 집안일과 자식 농사에만 매달리던 아내가 예순다섯이 넘은 나이에 돌연 홀로 남도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선언했다.

젊은 시절 그 흔한 계모임 여행조차 제대로 가본 적이 없던 사람이었기에 나는 고집을 부리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작은 배낭 하나를 메고 집을 나선 아내는 사흘 동안 안부 전화 한 통 없이 조용히 기차에 몸을 실었다.

집에 홀로 남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나는 서운함과 함께 아내가 나 몰래 딴마음을 품은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수십 년 동안 남편 봉양에 자식들 뒷바라지만 하느라 자신의 이름 석 자조차 잊고 살던 아내였기에 배신감은 더욱 컸다.

어둠이 짙게 깔린 사흘째 밤이 되어서야 아내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거실 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왔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 도대체 혼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왔길래 연락조차 없었느냐고 따갑게 추궁했다.

아내는 식탁 위에 때 묻은 작은 수첩 하나를 내밀더니 자신이 다녀온 곳은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시골 보육원이라고 했다.

그곳은 수십 년 전 아내가 가난 때문에 어린 딸을 가슴에 묻기 전 잠시 맡겨두어야만 했던 마음의 고향이었다.

평생 나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던 첫아이의 흔적을 혼자 찾아가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왔다는 말에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아내는 이제야 가슴속 응어리를 털어냈다며 고생시켜서 미안하다는 한마디와 함께 내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

늘 씩씩한 줄만 알았던 아내의 여린 어깨 너머로 지나온 세월의 묵직한 상처가 한눈에 들어와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식탁 위에 놓인 아내의 낡은 수첩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가 혼자 짊어지고 살았을 아픈 세월을 까맣게 모른 채 화부터 냈던 내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죄스러웠다.

나는 식어버린 차 한 잔을 아내에게 건네며 평생 가슴에 묻어둔 아내의 슬픔을 함께 안아주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