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대구(8) 대구정신의 산실, 북후정은 왜 복원되지 못할까

최미화 기자 2026. 3. 1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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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집회 열린 북후정 복원하지 않고
오토바이골목 옛터엔 동판마저 날아가
전문가 제기 이슈 무시 행정체계 비정상
대구유일 세계유산 돋보이는 복원해주길
이정호 경북대 명예교수(건축학)가 책임을 맡은 '대구 북후정 복원을 위한 연구보고서'에 나온 북후정 모델링 . 이정호 교수 제공.
한국 근대사의 주요 장면에는 항상 대구가 중심에 있었다. 을미의병(1895)을 일으켜 반세기 이상 지속된 독립운동(1895~1945)의 기폭제를 터트린 주인공도, 국채보상운동의 전국화도, 자유를 향한 민주화운동도 대구사람들이 불붙였다.
서문시장과 아주 인접한 곳에 위치해 있어 '북후정이 곧 서문시장'이라고도 기록된 1900년대 서문 밖 북후정. 고(故) 정성길 소장,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제공.
명성왕후가 시해되고 불태워져도 다들 한탄만 할 때 현풍현에서 태어난 문석봉(문익점의 20세손)은 유성에서 을미의병을 일으켜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불을 지핀 뒤 대구감옥에서 순국했고, 1907년 2월21일에 서문밖 북후정에서 열린 대구군민대회에서는 국채보상운동취지서가 낭독은 물론 민중속으로 이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는 계기를 만들며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은 구 시립중앙도서관을 활용해서 만들어졌다. 최미화 기자
사실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한 대구광문사, 대구민의소(현 대구상의의 전신)가 국채지원금 수합사무소를 마련했던 수창사(서문 밖, 현 대아하이츠 자리) 그리고 두차례나 군중집회가 열렸던 북후정은 국채보상운동으로 표출된 대구정신의 산실이다.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 로비 좌측 상단에 이 운동을 이끈 서상돈 김광제 등 선각자들을 기리고 있다. 최미화 기자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현장 오류, 왜 계속되나

그러나 이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사적 현장은 국채보상운동을 지식인과 상인유지들로부터 시민들품으로 안겨준, 대구군민대회가 열린 북후정이다. 대구의 역사와 정신을 풍부하게 만들고, 대구에 사는 프라이드를 느끼게하는 현장인 북후정은 복원은 커녕, 약 30년전 위치를 잘못 고증하는 바람에 엉뚱한 곳에 국채보상운동기념비가 들어서 있다.
지난 1997년 대구상의의 지원으로 250만 대구시민의 염원을 담아 대구시민회관(현 대구콘서트하우스) 앞에 설치한 국채보상운동기념비. 계속 위치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최미화 기자
이 북후정의 위치는 대구시 중구 서문북로(구 시장북통) 22번지, 오토바이 골목 도로 한가운데이다. 그러나 대구시사편찬위원회가 1995년에 펴낸 『대구시사』 제1권 통사에서 북후정의 위치를 '대구시민회관 부근'으로 잘못 기술한 탓에 국채보상운동기념비가 서문시장과 가까웠던 북후정 옛터가 아닌 엉뚱한 곳에서 약 30년을 버티며 왜곡된 정보를 생산하고 있다.
국가보훈부도 고증이 잘못된 대구콘서트하우스 앞에 국채보상운동기념비를 세웠다. 최미화 기자

최근에는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국가보훈부 마저 대구콘서트하우스 앞 북후정 자리에 기념비를 세우는 오류를 더하고 있다. 대구콘서트하우스 앞에 들어선 국채보상운동기념비를 찾는 이들은 이곳이 시민집회가 열렸던 북후정 자리인양 잘못 받아들이고 있다.

◆국가보훈부도 잘못 고증된 북후정 자리에 기념비 세워

대구시사에서 북후정의 위치고증이 잘못되었음은 학계와 재야학계에서 『해동지도』, 『대구부읍지』(1832년), 『자인총쇄록』(1888, 오횡묵) 『지승』 등과 비교분석하여 충분히 제시되었고, 최근에는 서문북로 북후정 옛터에 동판까지 설치했었다.

그러나 북후정 옛터임을 알려주는 동판은 지난달 21일을 포함, 이달 초 두번이나 더 찾아갔으나 사라지고 없었다. 차량 통행이 많은 도로 한복판에 깊이 매립하지 않고, 지면에 살짝 내려 박은 동판은 벌써 2년여 전에 떠들고 일어났다. 인근 주민이 이를 신고했고, 다시 시공했으나 또다시 동판이 쳐들고 일어났다. 통행하는 차량과 보행자 모두에게 위험해보였다. 동판을 수습해 다시 신고를 했다고 인근 상인은 증언했으나 3월10일 현재까지도 사라진 동판은 보이지 않았다. 취재가 시작되자 보수업체는 "담당자가 바뀌면서 깜빡했다"며 동판 재시공을 언급했다.
지난달 궂은 날씨에도 수십명의 대구시민이 북후정 옛터를 찾아 대구정신을 느끼려했으나 현장에는 동판이 사라지고 없었다. 최미화 기자

◆대구시민임을 부끄럽게 만들지 말라

대구 북후정에 대한 대구시사에서의 언급이 잘못됐음은 진작에(2014년) 밝혀졌다. 당시 이를 밝혀낸 임경희 박사(정치학, 대구경북소비자연맹회장)는 "북후정이 대구읍성과 달성 사이 서문밖, 현 오토바이골목에 있었다는 연구결과를 냈더니 그걸(북후정 위치 서술) 바꾸려면 논문을 써서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야한다고 해서, 팩트를 바로잡는데 2년이 걸렸다"고 회고하면서 "대구시가 모든 것을 이벤트식으로 간주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행정의 전달체계는 전문가나 언론에서 제기한 이슈가 타당하면 정책으로 받아들여서 변화를 보여주는게 기본이다. 그런 전달체계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행정에 대한 신뢰는 떨어진다. 현장의 목소리나 전문가의 지적을 더 가치있는 콘텐츠로 키워나가야 도시의 미래가 보장된다.
대구 북후정 옛터를 찾은 시민들에게 대구근대역사관 관계자가 태블릿에 담은 1900년대 북후정(왼쪽 위 정자) 사진을 보여주며 '대구정신의 산실'이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최미화 기자

◆북후정 복원을 직접 건의까지 했었다

국채보상 관련 최초 대중집회인 북후정 군민대회에는 어른 아이 포함 2천명이나 몰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899년 『대구부읍지』상 대구인구는 6만6천962명인 점을 감안하면 당시 군민대회에 참석한 규모는 전체 성인 대구군민의 약 10%를 넘지 않을까 추정된다. 첫번째 군민대회보다 2번째 군민대회는 서문시장 장날에 열려 더 많은 사람이 몰렸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18세기 『지승』에 보이는 북후정(읍북정). 최미화 기자

『대구부읍지』(1831년) 공해(공공건축물)란에 「읍북루」(挹北樓, 일명 북후정)를 설명하고, 대구부의 서쪽 삼리 (1.2km) 에 위치하고 있다고 설명하는데다 다른 『대구부읍지』(1769년)에도 동일하게 기재되어 있어 적어도 북후정은 1769년 이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사진작가 고(故) 정성길씨가 대구국채보상기념사업회에 활용하라고 생전 허락한 것으로 알려진 사진을 보면 북후정은 2층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 팔작지붕의 목조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2층은 벽체가 없는 누마루의 형태로서 사람이 오를수 있는 구조로서 서문시장을 향해 정면으로 배치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기기 전 서문시장을 관리하고 시민과 상인들이 이용 가능한 커뮤니티 센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구시 중구 시장북로 22, 이곳이 옛 북후정 터임을 알리는 동판이 설치돼 있었으나 최근에는 사라지고 없다.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제공.
"김영호 전 산자부장관과 같이 전직 대구시장을 찾아가서 서문북로 일대를 개발할 때 북후정을 복원하자고 제안했었다"는 엄창옥 대구국채보상기념사업회 상임대표는 "당시 그 시장이 완전한 복원보다는 아파트 단지내 소공원에 일부 복원이 어떻겠느냐고 큰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곧 시장이 바뀌면서 흐지부지 됐다"고 들려준다. 정책결정권자들이 대구의 정신적 자산인 북후정 복원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경기도나 부산시처럼 독립운동기념관을 대구시비로 추진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북후정 옛 터를 알리는 동판이 떨어져 나간채 방치되고 있다. 최미화 기자
"대구시장 후보 9명 중 어느정도 윤곽이 잡히면 질의서를 보내서 대구 북후정 복원을 포함한 대구정신 계승의 현장에 대한 입장과 실천의지를 파악할 것"이라는 엄 대표는 "임기내 북후정 복원과 오류 바로잡기에 업무 우선순위를 두겠다"고 밝혔다.
대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엄창옥 상임대표와 김영균 사무처장 등이 북후정 옛터에 동판이 사라진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최미화 기자

북후정 복원을 위한 연구보고서를 냈던 건축가 이정호 경북대 명예교수는 "대구의 유일한 세계기록유산의 위상을 감안해서라도 복원이 필요하다"며 "북후정이 들어서는 곳은 남대문처럼 적당한 넓이의 로터리(교통섬 역할)로 만들고 주변에는 교통량에 적합한 도로와 인도를 건설해야한다"고 그 필요성을 언급한다.
북후정이 군중대집회가 개최된 역사성을 상징 할 수 있도록 그 공간을 공공디자인 기법으로 조성할 것을 제안한 이 교수는 "여러 어려움이 예상되나 세계유산 위상을 위해 반드시 실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보고서에서 강조했다.

최미화 기자 cklala@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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