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반은 나만 한국인이래"…학교가 달라졌다
[편집자주] 다문화 가정이 증가하면서 학교가 달라지고 있다. 지방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70%가 이주배경학생으로 채워진 학교가 등장했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 베트남, 필리핀, 태국, 몽골, 캄보디아 등 학생들의 출신 국가도 다양하다. 준비가 덜 된 학교 현장은 식은땀을 흘린다. 이주배경학생 19만 시대, 학생과 교사가 모두 행복한 학교를 고민해본다.
'中國食品(중국식품)', '麻辣串(마라촨)'.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한 초등학교 앞 골목에는 중국어 간판이 즐비했다. 학교가 끝나자 초등학교 2학년 여학생 6명이 우르르 편의점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컵라면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중국 국적의 닝닝(8·가명)은 이렇게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중국인 부모 아래 태어났는데 5년간 한국에서 지내 한국말을 잘한다.
한국인 친구들은 닝닝을 다른 나라 사람이 아닌 친구로만 생각할 뿐이었다. 한국 국적 김모양(8)은 "학교가 끝나면 학원도 같이 가고 자주 논다"며 "닝닝이 우리랑 놀 때는 한국어만 쓰지만 엄마랑 이야기할 때는 '마마(??) 배고파요'라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한 외국인 학생들은 닝닝만큼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김양은 "우리 반 25명 중에 5명은 중국인이나 러시아 친구들"이라며 "전학을 와 말이 통하지 않으면 함께 놀지 못할 때가 많다"고 했다.
◆ 한 반에 한국인 1명인 학급도…10년새 3배 된 이주배경학생
국내 거주 외국인이 빠르게 늘면서 학교가 바뀌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초·중·고교 이주배경학생 수는 19만3814명으로 10년 전인 2014년(6만7806명)과 비교해 약 185%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초·중·고교 학생 수가 633만3617명에서 518만6141명으로 100만명 이상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전체 취학 아동은 감소하는 가운데 이주배경학생이 증가하는 것이어서 변화의 속도는 배가된다.
이주배경학생이란 학생 본인 또는 부모가 외국 국적이거나 외국 국적을 가졌던 적이 있는 학생을 뜻하는 말로 다문화학생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교육부는 다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제거하고 포용과 통합을 위해 다문화학생에서 이주배경학생으로 용어를 변경했다.
전교생 10명 중 3명이 이주배경학생인 학교도 급격히 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윤현희 연구위원 등이 작성한 '이주민 밀집지역 소재 학교 혁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이주배경학생이 전교생의 30% 이상인 초·중·고교는 전체 학교 1만1819곳의 2.96%(350곳)로 집계됐다. 5년 전 전국 250개교에서 40% 증가했다.
경기 안산의 한 초등학교는 전체 학생 455명 가운데 이주배경 학생이 444명, 97.6%에 달한다. 일반 한국인 가정 자녀는 극소수인 2.4%로, 한반에 한 두 명에 불과하다. 외국인가정의 경우 부모 출신국은 중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총 16개국에 달했다.
서울에서도 변화 양상은 뚜렷하다. 올해 서울시 초·중·고교 이주배경학생 수는 2만1282명으로 10년 전인 2014년(1만21명)보다 두배 이상으로 늘었다. 주요 초등학교 통계를 보면 학교 현장의 변화를 더욱 체감할 수 있다. 서울 영등포구 영림초와 대동초는 지난해 이주배경학생학생 비율이 70%를 넘어섰다. 이 비율이 40%를 넘는 초등학교는 두 학교를 포함해 서울에서 모두 9곳이었다.
◆ 한·중·러·베 4개 언어 가정통신문 등장
학생들의 국적과 언어, 인종이 다양해지면서 학교 현장도 변화하고 있다. 올해 초 한 초교는 신입생 예비 소집을 진행하면서 홈페이지 공지 글에 중국어를 병기했다. 한글 공지에 '日期: 2024. 1.4.(星期四) 16:00∼20:00'라는 글을 함께 적었다.
외국인이 전체 인구의 약 11%를 차지하는 경기 시흥시의 시화중학교는 한국어, 중국어, 러시아어, 베트남어 총 4가지 언어로 가정통신문을 배포한다. 이곳은 경기도교육청이 지정한 '다문화 특별학급 운영학교'다. 매년 초 다문화 특별학급을 따로 모집해 한국어와 문화 체험 교육을 진행한다.
서울시를 비롯해 경기, 강원, 광주, 제주 등 다수 지역 교육청은 학교 가정통신문 번역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교육부도 지난해 2월 발표한 '출발선 평등을 위한 2023년 다문화교육 지원계획'에서 학교 다문화 교육활동 지원책으로 '다국어 학교 가정통신문' 제작·보급안을 강조했다.
◆ 지금까지 '예고편'…이주배경 출생아 늘어난다
현재까지 나타난 변화는 '예고편'에 불과하다. 이주배경인구 증가 추세를 고려하면 향후 교실에서 이주배경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앞으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릴 전망이다. 통계청 '내·외국인 인구추계 : 2022~2042년'에 따르면 이주배경인구는 2022년 220만명에서 2042년 404만명으로 증가한다. 총인구 중 이주배경인구 비율은 20년간 4.3%에서 8.1%로 커진다. 반면 국내 총인구는 같은 기간 2022년 5167만명에서 2042년 4963만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이주배경인구 중 학령인구(6~21세)도 2022년 33만명에서 2042년 50만명으로 1.5배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주배경가정의 출생아 수 비중도 점차 커지는 추세다. 통계청 '2022년 다문화 인구동태'에 따르면 2022년 전체 혼인 중 다문화 혼인 비중은 9.1%(1만7428건)로 전년보다 1.9%포인트 증가했다.
국내 전체 출생아 중 이주배경 출생아 비중은 2020년 6.0%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COVID-19) 영향으로 2022년 5.0%까지 감소했지만 대유행 여파가 닿지 않은 시점 통계를 살펴보면 이 비율은 △2015년 4.5% △2016년 4.8% △2017년 5.2% △2018년 5.5% △2019년 5.9%로 5년 연속 상승했다.
정지윤 명지대 산업대학원 이민·다문화학과 교수는 "이주배경학생이 앞으로 더 늘어나면서 현재는 중국 동포(중국 국적), 고려인(러시아·중앙아시아 국적) 위주지만 태국, 베트남 등 국적도 다양해질 것"이라며 "이주배경학생 숫자가 많아진 지역의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감당을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교육청과 지자체가 협업해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은 대전 한밭여중 '요리보고 세계보고' 날이다. 지난해 9월의 다문화 음식은 태국의 팟타이. 아이들은 급식실에 들어가기 전 팟(볶음), 양(구이), 똠(끓임) 등의 태국어 퀴즈를 맞췄다. 급식실 입구에는 1940년대 쌀을 비롯한 태국내 식재료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팟타이 레시피가 보급됐고 그 결과 태국 국민 음식이 탄생했다는 설명이 적혔다.
김찬형 한밭여중 교사가 진행하는 다문화 체험활동이다. 체험활동을 통해 다른 나라 출신 친구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간다.
김씨는 "타 문화에 대한 아이들의 지식수준은 이미 상당하다"면서도 "문제는 실천과 존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책 속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배움의 완성"이라며 "다문화 지식에 대해 배운 것을 실천하고 느낄 기회를 아이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급식 시간 다문화 음식 체험과 퀴즈를 통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시간을 줬다. 아이들이 여권(활동지)을 갖고 가상의 국가(교실)들을 여행하는 체험 교육도 실시했다. △1반 러시아 △2반 필리핀 △3반 일본 등으로 정해 각 나라에 가서 러시아 전통 인형인 마트료시카를 만들어보고 필리핀 전통놀이를 체험해보는 식이다.
김씨는 다문화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지난해 교육부가 주최한 '다문화교육 우수 사례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김씨 외에 우수사례로 선정된 다른 교사들도 모두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고 느끼는' 다문화 교육이 시급함을 강조했다. 현재 다문화 교육은 대체로 당위성을 강조하는 수준의 한방향 교육에 그친다는 것이다.
우수상 수상자 정진용 인천 갑룡초 교사는 지난해 '다문화 박람회'를 열었다. 반 아이들은 옆반 친구들에게 다른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려고 '스스로 공부'했다. 체험 부스 주제는 아이들이 모두 선정했다. 자연스레 주제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졌다. 학교생활을 주제로 특정 국가의 급식과 교복을 소개하는 아이들부터 전통음식과 디저트를 주제로 삼은 아이도 있었다. 캐나다를 소개하는 한 아이는 메이플 시럽을 준비했다.
정씨는 "현재 교육은 책을 보면서 '차별하면 안 된다', '공존해야 한다'는 식의 지극히 당위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면서 "하지만 교육 효과는 체험과 참여가 훨씬 크다"고 밝혔다. 그는 "아이들이 각자의 시선에서 다문화를 보고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정씨는 이번 학기 '전학 온 이주배경학생들과 벌어지는 일'을 주제로 연극을 준비하는 중이다. 그는 "학생들이 다같이 극본을 만들고 직접 연기도 하게 될 것"이라며 "확실히 참여수업을 할 때 아이들의 흥미가 높아지는 걸 느낀다"고 밝혔다.
◆ 교대·사범대 체계적 교육, 미디어 윤리도 가르칠 필요…개선점 많아
교사들은 교대와 사범대에서 다문화 교육을 체계적으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귀염 시화초 교사는 "교사 부임 첫해가 너무 힘들었다. 진짜 다문화 교실이 뭔지, 실제 어떤 다문화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지 예비 교사들이 알 필요가 있다"며 "예비 교사들부터 다문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갑룡초 교사 정씨도 "다문화 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야 한다"며 "(예비 교사들이) 실제 다문화 교육 현장을 본다면 교단에 섰을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미디어를 통해 희화화된 다문화 혐오 표현을 뜻도 모른 채 학습한다고 우려했다.
정씨는 "아이들이 눈을 찢는 행동이나 '칭챙총' 같은 인종차별적 표현을 인터넷상에서 알고 따라할 때가 많다"며 "인종차별적 행동의 맥락과 역사를 모른 채 '밈'처럼 여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선생님도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아이들이 인종차별적인 말을 학습해 학교로 온다"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어 한 학생이 친구한테 '니그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며 "말을 한 아이는 뜻도 모르고 (들은 얘기를) 따라한 것"이라고 했다.
한밭여중 교사 김씨는 "아이들은 차별 언어를 경험하면 자존감을 잃게 된다"며 "미디어와 연계한 종합적인 다문화 교육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김미루 기자 miroo@mt.co.kr 오석진 기자 5ston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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