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 프로듀싱, 연주, 디자인까지. 다재다능한 뮤지션 구마 본인(Guma Bonin)

뮤지션 구마 본인

:: Guma? Bonin! ::

고등학교 밴드 시절 별명이 고구마였습니다. 이후로 부모님 빼고는 모든 사람이 줄여서 저를 구마라고 부르지요. 활동명을 고민하다가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름은 내 것이지만 결국 상대방이 나를 지칭하는 말이니까, 온전히 내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구마’에 본인(本人)을 붙여서 남들이 나를 부르지만, 나 자신도 그렇게 부르도록 했다는 의미를 넣어 봤어요. 그랬더니 너를 지칭하기도 하고, 제3자를 지칭하기도 하는 오묘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런 모호함이 창작자의 입장과도 닿아 있다고 생각해서 구마에 본인, Guma Bonin이 되었습니다.

너바나, 홍대, 그리고 송라이팅

어렸을 때부터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때 댄스팀을 하기도 했고요. 본격적으로 음악에 빠진 건 중학교 때 너바나Nirvana 테이프를 듣고 나서예요. 중학교 3학년 때 기타를 사서 혼자 치다가, 고등학교 때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했어요. 그리고 대학 때 서울로 올라와 처음 살게 된 곳이 홍대 앞인데, 그때가 본격적인 음악 여정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펑크락 클럽 바로 앞에 살았는데, 펑크에 완전히 심취했죠.

구마 본인

군대 제대 후 처음 산 샘플러가 MPC 2000XL이었어요. 그걸로 샘플링 작업을 해 보다가 한계를 느끼고, 직접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때부터 컴퓨터로 곡을 쓰기 시작했어요. 베이스는 고등학교 밴드에서 담당했던 포지션이라 오래 사랑한 악기인데, 솔직히 말하면 배운 적이 없어서 ‘전형적인’ 느낌만 알고 손은 바보인 상태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어요. 음악 이론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만들어 낼 수 있는 특별함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 서툰 감정이 오히려 제 음악의 특색이 되는 것 같거든요.

앨범 커버에서 엔지니어링까지, 본인 제작

제 공연 포스터는 제가 만들어 왔어요. 고등학교 밴드 시절부터 그래픽 아트와 아트워크에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대학에서 광고홍보학을 전공했던 거고요. 앨범 커버아트를 통해서도 제가 음악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뮤직비디오까지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채워지면 제 음악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되겠지요.

<Ultra Blue> 앨범 커버

믹스와 마스터링은 작곡과는 또 다른 표현 방법이라 이 부분도 꽤 신경 쓰고 있어요. 아직 잘하지는 못하지만, 이 모든 걸 해 내는 것이 인디펜던트 정신 아닐까 합니다. 솔직히 지금은 돈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요.

작업 과정의 두 가지 키워드: 루틴과 대화

곡 작업은 뭘 표현해야겠다는 거창한 생각으로 시작하지 않아요. 단순하게, 루틴으로 시작합니다. 아침에 집안일을 하고 전날 작업을 정리해요. 작업물이 없다면 새로 시작하고, 몇 마디를 짜보고 늘리고 지지고 볶는 과정을 반복하지요.

이런 과정에서 멜로디 중심의 음악이 나오기도 하고, 서사가 두드러진 음악이 나오기도 하고, 리듬 중심의 음악으로 흘러가기도 해요. 어느 정도 형태가 갖춰지면 시간적 거리를 두고 다시 들어봅니다. 내가 왜 이렇게 했나?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곡과 마주하며 대화해 보면, 평소에 생각했던 혹은 생각지도 않았던 감정이나 이미지가 드러나요. 그걸 중심으로 다시 곡을 풀어나가고요.

의외의 충격에서 비롯되는 농담 같은 음악

장르를 탐험하고 의외의 요소를 넣는 것을 즐겨요. 은은한 충격과 농담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적 요소예요. 주성치, 우디 앨런, 키타노 타케시 같은 코미디 영화를 정말 좋아해서 음악에도 그런 요소가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유도해요.

예를 들어 첫 싱글 <Ultra Blue>에서는 일렉트로닉한 사운드 한가운데 밴드 사운드를 뜬금없이 집어넣어서, 저 자신을 디지털로 남기는 것에 대한 과정을 표현해 봤어요. <Viridian Mood>에서는 블레이드 러너적인 사운드 가운데 편안한 듯 불안한 불협화음을 넣어 봤고요.

<Coing>부터는 본 트랙과 함께 거꾸로 재생한 트랙을 꼭 넣습니다. 같은 트랙이지만 전혀 생경한 느낌을 줄 수 있거든요. Coing은 프랑스어로 모과라는 뜻인데, 어릴 때 차를 타면 방향제 대신 모과를 올려놓던 어른들이 계셨어요. 못생겼지만 향은 좋고, 향은 좋지만 맛은 없고, 맛은 없지만 건강에 좋은, 뭔가, 농담 같은 과일이라 생각해요. 커버 하단의 영어와 뮤비에 삽입한 프랑스어들은 모두 모과의 효능입니다.

구마 본인의 새 EP 로 초대합니다

음반 커버

이번 EP는 마루오 스에히로의 만화 『소녀춘』(少女椿)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사회부적응자, 소수자들이 모여 있는 기괴한 상황이 오히려 정상인 세상에서 정상과 이상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소수자 커뮤니티에서 비소수자가 받을 수 있는 핍박이나 편견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런 질문으로 앨범 전반을 구성했습니다. 전체적인 무드는 기괴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익숙하고 아련한 노스탤지어가 있는 느낌으로 전달하려 했고요.

구마 본인, 여덟 개의 트랙, 여덟 개의 시도

<Persian Indigo>는 전체의 서막이고, <They sell a kind of forever>는 제가 어릴 때 서커스를 보고 충격 받았던 개인적인 기억을 담았어요. <Midori, Taeju>에서는 『소녀춘』의 주인공 미도리와 영화 『박쥐』의 여주인공 태주의 차이점과 공명점을 탐구했습니다.

<Joohee>는 무거운 트랙인데, 90년대 한국에서 실제 발생했던 소녀를 납치하여 서커스단에서 자라게 한 사건을 다뤘어요. 원작 『소녀춘』의 주인공, 영화의 주인공, 실제 사건의 피해자, 그리고 제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이 혼재한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이전 싱글들과 달리 다른 창작물을 바탕으로 제 안의 감정과 감상을 끄집어 내 구성했고, 목소리 자체를 악기적인 요소로 남게 하고 싶어서 가사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어요. 싱글이 아니라 EP 분량의 앨범을 구성하다 보니 제 머릿속을 떠돌던 단상들이 한 데 묶여 더 큰 힘이 실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눈, 광대, 그리고 동백꽃

커버아트는 마루오 스에히로 작품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눈’에 대한 집착을 중심 이미지로 잡았어요. 손으로 눈꺼풀을 벌리는 듯한 모습을 마름모로 표현했는데, 이게 광대의 눈 화장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이미지 주변으로 작품 제목이기도 한 ‘소녀춘(동백소녀)’의 동백꽃을 일본 판화 속 동백꽃을 따와 넣었습니다. 50~70년대 일본 잡지와 책 커버들을 참조해서 톤과 콘셉트를 잡았고, 책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질감 구성, 저자 사진을 넣는 방식, 제목을 목차로 대신하는 등의 표현으로 비틀어 봤어요.

프릭쇼, 나 자신을 탐구하는 여정

계속해서 장르적으로 다양한 접근을 하고, 장르 사이 어딘가를 찾아보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요. 다음 작업물도 싱글보다는 EP로 작업해 보려고 합니다. 듣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양해지는 미묘한 감정선을 추구하는데, 들으시는 분들이 미묘한 어딘가에서, 낯선 어딘가에서 본인도 모르게 지나쳤던 감정이나 기억을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구마 본인

음악이 저 자신을 탐구하는 여정이 되길 바라고, 그 여정이 어떤 하나의 세계가 되길 희망합니다. 그래서 들으시는 분들도 저와 함께 미묘하고 복합적인 감정 세계를 탐험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 어딘가의 프릭쇼에 완전히 속하지도, 완전히 배제되지도 않은 채 살아가고 있잖아요. 그 애매한 경계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 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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