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숲이 마을을 감싸는 곳
겨울 의성 사촌가로숲과 사촌마을에서 만나는 고요한 시간

겨울이 되면 숲은 말을 아끼기 시작합니다. 잎을 떨군 가지 사이로 바람과 햇살이 오가고, 풍경은 더 단순해지지만 오히려 마음은 또렷해집니다. 경북 의성 사촌마을의 가로숲도 바로 그런 공간입니다.
600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이 숲은 겨울이 되면 화려함 대신 깊은 고요로, 사람을 맞이합니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심은 600년의 숲

사촌가로숲은 단순한 풍경용 숲이 아닙니다. 조선 초, 안동 김 씨 김자첨이 이곳으로 들어와 마을을 조성하면서 서쪽에서 불어오는 샛바람이 인재의 기운을 막는다고 여겨,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방풍림을 조성한 것이 시작 이었습니다. 당시 심은 나무는 10여 종, 500여 그루였고, 이 숲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지금의 사촌리 가로숲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숲은 단순한 방풍림을 넘어 마을의 상징이 되었고, 그 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 제40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숲은 지금도 마을을 감싸며 겨울에는 찬바람을 막아주고, 여름에는 깊은 그늘을 내어줍니다. 무엇보다도 이 숲은 사촌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늙어온 살아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겨울 숲길의 매력

겨울 아침, 가로숲 아래로 들어서면 밤새 내려앉은 무서리가 아직 잎과 흙 위에 남아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마른 가지 소리, 부서지는 서리의 미세한 소리까지 들리는 고요 속에서 숲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느려집니다.
이 길은 화려한 산책로가 아닙니다. 대신 오랜 시간 사람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 온 조용한 길입니다. 그래서 걷는 동안 숲과 마을, 그리고 자신의 호흡이 같은 속도로 흐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선비의 마을, 사촌마을의 품격

사촌마을은 안동 김 씨와 풍산 류 씨의 집성촌으로, 조선시대 유교 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반촌입니다. 이곳에서는 대과 13명, 소과 34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할 만큼 학문과 인품을 중시하는 전통이 이어졌습니다.
임진왜란으로 마을이 크게 훼손되었기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고택 대부분은 100여 년 남짓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마을 전체의 분위기는 여전히 조선 시대 선비촌의 품격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만취당, 16세기 선비의 집

사촌마을의 중심에는 만취당이 있습니다. 1585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보물 제1825호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집 형태의 목조건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퇴계 이황의 제자였던 김사원이 학문을 닦고 후학을 기르기 위해 세운 공간으로, 지금도 16세기 사대부 가문의 생활과 선비 문화를 고스란히 전해 줍니다.
현판은 한석봉이 썼다고 전해지는데, 그래서 만취당에 서면 글씨 하나에도 시대의 품격이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500년 향나무, 마을의 당산목

만취당 옆에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07호로 지정된 사촌리 향나무가 서 있습니다. 수령 500년이 넘는 이 나무는 조선시대 시인 송은 김광수가 심은 것으로 전해지며, ‘만년송’이라는 이름처럼 오래도록 푸르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향나무는 단순한 보호수가 아니라, 사촌마을 사람들에게는 정신적 중심이자 마을을 지켜보는 존재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겨울에도 이 나무는 유난히 단단하고 푸른 모습으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사촌마을 기본 정보

위치: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점곡길 17-1
문의:054-830-6355
홈페이지:http://sachon.co.kr
이용시간:상시 개방
휴일:연중무휴
주차:가능
지정현황:천연기념물 의성 사촌리 가로숲 (1999.04.06 지정)
체험:달빛산책, 달빛투어

사촌가로숲과 사촌마을은 볼거리 보다 머무는 감각이 더 중요한 여행지입니다. 겨울의 고요한 숲길을 걷고, 선비의 마을 담장 너머로 흘러나오는 생활의 온기를 느끼며, 한 해를 천천히 정리하기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공간은 드물 것입니다.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조용한 숲과 마을 속으로 들어가고 싶으시다면, 이번 겨울 의성 사촌마을에서 오래된 시간의 품에 잠시 몸을 맡겨보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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