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지만 그 딜은 하이리스크로 보이지 않았다.”
2022년 말은 코로나19 이후 금리 인상으로 시장이 크게 위축된 시기였다.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서 구조가 복잡한 딜들은 투자자들에게 외면 당했다. 당시 한 해운회사 인수금융건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박 소유구조가 일반적이지 않고 지분이 여러 주체로 나뉘어 있어 투자자들에게는 낯설고 불안정한 딜로 보였다.
그러나 강성진 BNK캐피탈 매니저의 판단은 달랐다. 그는 구조보다 현금흐름에 주목했다. 안정적인 운송 계약을 기반으로 수익이 확보돼 있었고, 감가상각이나 선박 유지·보수 비용도 상당 부분 보전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복잡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현금회수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 결과적으로 이 딜은 연 15%의 수익률을 거뒀다.
강 매니저는 17일 서울 여의도 BNK금융타워에서 <블로터>와 인터뷰하며 당시를 “배 위에서의 경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라고 느꼈다”고 회상했다.
항해사 출신 CFA...차별적 실무 갖춘 LP
강 매니저는 2등항해사 출신 국제재무분석사(CFA)다. 한국해양대를 졸업한 뒤 2016년부터 배를 탔다. 어릴 때부터 글로벌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고, 대부분의 무역이 해상운송으로 이뤄진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항해사의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한진해운 파산과 현대상선(HMM) 구조조정 등 업계 전반이 흔들리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진로를 고민하게 됐다. 강 매니저는 “화물운송이나 항로관리 같은 실무는 잘 알고 있었지만 산업이 왜 무너지는지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경험으로 테크니컬한 역량만으로는 산업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느꼈다. 수요와 공급, 자본구조 등 금융 논리를 이해해야 산업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계기로 금융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항해사 일 역시 단순한 운항을 넘어 어떤 화물이 왜 특정 항로로 이동하는지 등 배후의 밸류체인을 이해해야 비로소 보인다는 점에서 금융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CFA로서 금융업에 발을 들인 뒤에도 항해사 경험은 자산으로 남았다. 그는 “배에서는 초 단위의 순간 판단력이 중요하고 사소한 실수 하나가 생명 문제와 직결된다”고 말했다. 선박은 바다 위에서 움직이는 만큼 자연환경과 기항지 상황 등 다양한 변수가 있고, 때로는 급박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에 대응해온 경험이 금융업에 진입한 후에도 낯선 구조나 처음 보는 딜을 마주했을 때 빠르게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는 “업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도 불확실성을 다루는 방식은 같다”고 말했다.
해운 업계에서 쌓은 네트워크도 그의 강점이다. 해운·조선·물류산업은 조선소에서 시작해 해운사, 물류사, 화주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곳곳에 항해사 출신들이 포진해 있다. 이에 투자건을 맡았을 때 업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현장에서 회자되는 이슈들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산업보다는 사업에 대한 시각”
강 매니저는 투자할 때 산업보다 ‘사업’을 보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산업은 사이클에 따라 흥망이 반복되지만 그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어떤 경쟁력을 가졌는지에 따라 기업의 성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는 “산업이 좋다고 해서 모든 기업이 잘되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산업이 어려워도 경쟁력이 있는 기업은 충분히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예컨대 반도체 산업은 사이클에 따라 부침이 크게 갈리는 대표 업종이지만, 네덜란드 ASML처럼 특정 분야에서 대체불가한 경쟁력을 가진 기업은 흐름과 무관하게 독자적인 지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강 매니저는 “숫자나 지표도 중요하지만 그 숫자를 만들어내는 비즈니스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사업구조와 현금흐름, 시장 내 위치를 함께 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항해사 출신인 만큼 관심 섹터는 해운·조선 분야와 관련돼 있다. 다만 이들 산업은 사이클 변동성이 커 투자기관들의 선호도가 높은 영역은 아니다. 강 매니저는 “최근 조선업이 호황을 보이면서 투자 대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지만 여전히 선호하는 섹터는 아니다”라며 “그만큼 투자기회를 발굴하는 것이 개인적인 목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전력·에너지 분야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그는 “에너지 산업은 정부 정책에 따라 방향이 많이 바뀌는 편”이라며 “신재생에너지나 원전처럼 정책에 따라 흐름이 달라지는 부분들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선박도 결국 원유나 액화천연가스(LNG) 같은 에너지를 기반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이어진 것 같다”며 “전력을 만들어내는 산업 전반을 함께 보려고 한다”고 부연했다.

강 매니저는 최근의 투자환경과 관련해 유동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민성장펀드, 생산적 금융 등이 확대되면서 자금이 부동산에서 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IMA) 등을 통한 증권사의 자금조달까지 더해지며 시장 전반의 유동성이 확대되고, 기업 성장에 우호적인 투자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실제로 시장의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것이 느껴진다”면서도 “이러한 환경에서는 기업가치가 전반적으로 높아질 수 있지만 밸류에이션 대비 이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버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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