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 신고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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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로 시민 150여 명이 우리 곁을 떠났다.
법과 제도의 정비와 함께 우리가 이번 참사를 통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건 공익 신고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다.
그러나 공익신고자의 호루라기 소리에 귀를 닫아버릴 때 우리는 참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태원 참사 직전 공익 신고가 묵살된 것이 그저 '일개 경찰 담당자'의 일탈이 아니라 공익 신고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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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로 시민 150여 명이 우리 곁을 떠났다.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번에도 철저히 무능했다. 인파가 몰려들 것을 예상하고도 행사 주최자가 없어서 제대로 된 안전대책을 사전에 마련하지 못했다는 변명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4시간 전부터 시민들의 신고가 이어졌음에도 참사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우리 마음을 참담하게 한다.
행사 주최자가 없는 집단 행사의 안전관리를 강화할 수 있도록 재난관리법 등 관련 법 개정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법과 제도가 아무리 정비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움직이는 공익 신고가 이번처럼 묵살된다면 그 어떤 법과 제도도 무용지물일 것이다. 법과 제도의 정비와 함께 우리가 이번 참사를 통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건 공익 신고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다.
오늘도 시민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참사를 막아내기 위해 열심히 호루라기를 불고 있다. 그러나 참사 전 신고가 뭉개지고 덮인 것처럼 한국 사회는 호루라기 소리에 귀를 닫고 있다. 지난달에도 두 명의 공익신고자가 또 한 번 호루라기를 세게 불었다. 제약회사 리베이트 문제와 병원 비리를 세상에 알린 호루라기였다.
제약회사 리베이트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잊을 만하면 또다시 등장하는 제약회사 리베이트는 시민의 건강권과 직결된 문제다. 제약업계에서 리베이트가 사라지면 시민들은 저렴한 가격에 약을 구입할 수 있고, 매번 적자를 메우기 위한 건강보험료 인상도 막을 수 있다. 경보제약 직원 강 아무개씨는 지난해 5월 400억원 규모의 불법 리베이트가 있다고 호루라기를 불었다.
공익 신고를 접수한 국민권익위원회는 4개월이 지난 9월에서야 대검찰청에 사건을 이첩했다. 식품의약안전 중점청인 서울서부지검이 사건을 맡았다. 서부지검은 사건을 넘겨받은 지 6개월이 지난 올해 3월에서야 신고자인 강씨를 불러 조사했다. 하지만 아직 수사 개시를 하지 않고 있다. 호루라기를 분 뒤 1년6개월이 지났지만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공익신고자는 지난달 검찰수사심의회 소집을 요청했지만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다.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들추는 호루라기 소리
대리 진료를 보던 의사의 과실로 환자가 사망한 사건 등 충남 논산 백제병원의 비리를 지속적으로 공익 신고하는 김인규씨도 지난달 또 한 번 경찰청 앞에서 호루라기를 세게 불었다. 그 이유는 논산경찰서 수사 담당자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는 시골 논산경찰서잖아요. 일개 경찰서 담당자가 이 사건을 진행하기에는 조금 적절하지 않은 측면도 없지 않아요. 제가 아무리 정의감을 가지고 한다 하더라도 외압을 받다 보면 수사가 올바르게 진행될 수가 없어요.”
건강하다는 착각 속에 빠져 살고 있다가 가끔 듣게 되는 의사의 경고가 귀에 거슬리는 것처럼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살고 있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들추며 불어대는 호루라기 소리 또한 듣기 좋은 아름다운 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공익신고자의 호루라기 소리에 귀를 닫아버릴 때 우리는 참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태원 참사 직전 공익 신고가 묵살된 것이 그저 ‘일개 경찰 담당자’의 일탈이 아니라 공익 신고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최정규 (변호사·<얼굴 없는 검사들> 저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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