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경의중앙선과 용산삼각선이 70m 남짓의 거리를 두고 마주 보고 있는 골목에 파란 지붕의 단층짜리 라멘가게가 있다. 평일 오후임에도 대기줄이 길게 늘어선 이곳은 원래 밤노을이란 이름의 숙성 횟집으로 운영되는 곳이지만, ‘마스터 시바의 특제라멘’으로 간판을 바꿔 단 채 팝업스토어로 꾸며져 있었다.
5일 요식업계에 따르면 마스터 시바는 넥슨 모바일 게임 블루아카이브에 나오는 라멘 장인이다. 육수에 인생을 바친 인물로, 메인 스토리에서 그가 운영하는 라멘 가게는 주요 캐릭터들의 일상과 서사가 담긴 장소로 묘사된다. 이번 팝업의 핵심은 게임 속을 방불케 하는 높은 싱크로율이다. 양옆에 끼고 있는 철도 건널목부터 고즈넉한 마을 분위기, 가게의 색감까지 블루아카이브의 ‘찐팬’들로부터 성지로 소문날 정도다.
이날 경기도 안산시에서 가게를 찾은 대학생 A씨(26)는 “건널목을 건넌 순간 아비도스(게임에 등장하는 고등학교) 지역구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며 “경험한 팝업 중 최고의 싱크로율”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라멘 맛까지 기대 이상”이라고 덧붙였다.

팝업 내부로 들어가자 이미 10여명의 깔끔한 양복 복장을 한 선생님(블루아카이브 유저를 칭하는 말)들이 라멘을 시식하고 있었다. 라멘은 팝업과 함께 출시된 봉지라면을 기반으로 주문에 따라 토핑을 추가해 만들어진다. 기본 가격은 9000원, 토핑을 모두 더하면 1만1500원 수준이다. 요리는 합정·성수 소재 라멘집 라무라를 운영하는 한동근 셰프가 맡았다.
맛은 정직했다. 최근 주를 이루고 있는 맵고 자극적인 미식의 향연 속에서 감칠맛과 순한 맛으로 승부하는 게 올바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토핑으로 얹어진 두툼한 차슈는 부드러웠고 콘옥수수와 숙주는 식감을 다채롭게 꾸몄다.


특제라멘의 쫄깃한 면발과 담백한 국물은 팝업스토어를 기획한 컴퍼니합과 팔도가 반년 동안 연구개발에 매진한 결과다. 게임에서 레시피가 등장하지 않는 탓에 음식 비주얼과 맛에 대한 묘사만 참고해 메뉴를 구현했다는 후문이다. 일반적으로 IP(지식재산권) 협업 상품을 기획할 땐 시제품 포장만 바꿔 택갈이하는 사례가 더러 있지만, 특제라멘의 경우 마스터 시바의 얼굴이 새겨진 고명에서부터 정도를 걸으려는 주최 측 진심이 엿보였다.
블루아카이브 팬덤은 이러한 노력에 부응했다. 2주간(4월25일~5월9일) 열리는 팝업스토어는 예매 오픈과 동시에 입장권 매진을 기록했고, 팝업스토어 하루 매출은 평균 2000만원(봉지라면, 캐릭터 굿즈 포함)에 육박한다. 인기는 일반 소비자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컴퍼니합에 따르면 전국 GS25 편의점과 롯데마트,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통해 유통되는 특제라멘의 판매량은 100만개를 돌파했다. 지금도 하루에 20만~25만봉지씩 추가 발주를 소화하느라 분주하다는 설명이다.
컴퍼니합 관계자는 “판타지 세계를 현실에서 만날 수 있다는 짜릿함을 전하고 싶어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며 "이번 프로젝트에서 유저들의 반응이 특히 좋았던 두 가지는 팝업 장소와 라멘 맛"이라고 밝혔다. 이어 “왔던 분들이 재차 찾아와서 사진을 찍거나 시간을 보내는 등 '우리들의 성지'라는 반응이 많다"고 전했다.

박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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