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경력도 제일 많았던 장군이'' 고작 1평짜리 좁은 무덤에 묻힌 이유

‘전투 제일 많이 한 장군이’ 1평짜리 무덤을 택한 이유

한국전쟁과 월남전을 통틀어 가장 많은 전투에 참여하고, 역대 최다 무공훈장(28개)을 받은 육군 쓰리스타 채명신 장군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단 1평짜리 묘역에 누워 있다.

장군은 평소 “나를 장군 묘역이 아니라, 함께 싸우다 먼저 간 사병들 곁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 뜻 그대로 사병 묘역에 안장된 현충원 최초의 장군이 됐다.

가장 많은 전투·최다 무공훈장 장군

채명신 장군은 공비 토벌, 6·25전쟁, 월남전에 모두 참전해 광복 이후 한국군 중 가장 오랜 전투 경험을 쌓은 인물로 평가된다.

한국전에서 그는 특수부대 ‘백골병단’을 이끌며 북한 유격대장 길원팔을 포로로 잡는 등 게릴라전에 탁월한 실적을 올렸다.

전투에서 한 번도 크게 패한 적이 없는 상승(常勝) 지휘관으로, 무공훈장만 28개를 받아 ‘훈장 최다 수훈 장군’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월남전 초대 주월사령관으로 승승장구

1960년대 중반 채명신은 초대 주월 한국군 사령관으로 파병 전력을 지휘했다.

4년 동안 베트남전 전선에서 한국군과 미군, 베트남군을 아우르며 작전을 수행해 ‘월남전의 영웅’으로 불렸다.

이 공로로 장군 계급까지 승진하며 군 내부에서도 가장 유능한 야전 사령관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수천 전우가 전사했다는 죄책감

하지만 화려한 전과 뒤에는 무거운 죄책감이 자리했다.

백골병단 시절과 월남전 기간, 그의 지휘 아래에서 전사한 장교·사병이 수천 명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살아서 돌아왔지만, 나와 함께 싸우던 전우들은 그곳에 묻혀 있다”는 말을 자주 남기며 마음의 빚을 드러냈다.

“장군 묘역 말고, 사병 곁에 묻어 달라”

2013년 별세를 앞두고 채명신 장군은 가족과 주변에 분명한 부탁을 남겼다.

“내가 죽으면 국립묘지 장군 묘역이 아니라, 월남에서 전사한 사병들이 있는 묘역에 묻어 달라.”

국방부는 “장군이 사병 묘역에 들어간 전례가 없다”며 난색을 보였지만, 부인 문정인 여사가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내면서 유언이 받아들여졌다.

현충원 최초, ‘사병 묘역에 잠든 장군’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장군 신분으로서 넓은 장군 묘역을 포기하고 사병 묘역을 택한 그의 뜻을 “숭고하다”며 예외를 허용했다.

결국 채명신 장군은 서울현충원 2번 파월(베트남 파병) 사병 묘역, 3.3㎡(1평) 크기의 자리 한 칸에 묻혔다.

이는 현충원 설립 이후 장군이 스스로 계급을 낮춰 사병 묘역에 안장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원래 장군 묘역은 사병의 8배였다

그동안 국립현충원에서 장군 묘역은 1기당 8평(26.4㎡), 장병 묘역은 1평(3.3㎡)로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2005년 국립묘지법 개정 후 신규 군인 묘역은 계급 구분 없이 모두 1평으로 규정됐다.

다만 2005년 이전에 조성된 장군 묘역은 예외적으로 계속 사용돼, 고위 장교는 여전히 넓은 묘역에 안장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구조에서 쓰리스타였던 채명신이 자발적으로 1평 사병 묘역을 선택했다는 점이 더 큰 상징성을 가진다.

“나는 끝까지 내 부하들의 지휘관이고 싶다”

채명신 장군이 안치된 2번 사병 묘역은 그가 생전에 파월참전자회 회장을 맡으며 가장 자주 찾던 곳이다.

그는 살아서는 부하들을 이끄는 지휘관이었고, 죽어서는 그들 곁에 눕는 전우가 되기를 원했다.

전투 경력도, 훈장 개수도 누구보다 많았던 장군이 가장 좁은 무덤을 선택한 이유는 “끝까지 사병과 함께 있겠다”는 책임감과 연대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