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위페이의 발이 느려지고 있다.
중국 스포츠 매체 '시나 스포츠'가 정확히 그 표현을 썼다. "수비할 때 코트 구석구석을 훑지 못하고 있다." 경기 결과만 보면 천위페이는 이겼다. 그러나 세계 4위가 48위 상대로 1시간 10분의 혈투 끝에 2-1 역전승을 거뒀다는 사실은, 숫자 하나만으로도 설명이 된다.

문제는 이게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3일 덴마크 호르센스. 우버컵 결승에서 천위페이는 김가은(삼성생명·세계 16위)과 붙었다. 상대 전적 8승 1패. 절대 우위였다. 그러나 결과는 0-2(19-21 15-21) 완패였다. 특히 2게임 15-15 동점 상황에서 6연속 실점을 내준 장면은 단순한 역전패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경기 막판 자멸에 가까운 흐름이었다.
그로부터 열흘. 무대를 태국 방콕 님부트르 스타디움으로 옮긴 천위페이는 또 흔들렸다. 상대는 안몰 카르브(인도·세계 48위), 19세의 신예다. 지난해 싱가포르 오픈에서 2-0으로 가볍게 제압했던 선수다. 이날 1게임에서 천위페이는 12차례 동점을 반복하다 결국 19-21로 내줬다. 3게임에선 2-2에서 9연속 실점을 헌납해 한때 4-13까지 끌려갔다.
수치가 말하는 건 하나다. 지금 천위페이는 정상 컨디션이 아니다.

천위페이는 2020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커리어 통산 439승. 2026년에만 19승을 거뒀다. 경험과 기량 면에서 카르브와는 차원이 다른 선수다. 그럼에도 3게임 초반 4-13이라는 스코어가 만들어진 건, 기술의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배드민턴에서 발의 속도는 단순한 체력 지표가 아니다. 코트 커버리지가 무너지면 수비 위치 선정이 늦어지고, 이것이 상대방의 탄력으로 이어진다. 천위페이의 특기인 헤어핀 위주 전방 플레이는 발이 받쳐줘야 완성된다. 시나 스포츠가 "발이 무뎌졌다"고 진단한 건 스타일 자체의 위기를 지적한 것이다.
우버컵은 단체전이다. 결승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주축 선수에게 부하가 집중된다. 천위페이가 결승에서 무너진 건 그 누적의 끝이었을 수 있다. 문제는 이후 회복 기간이 채 2주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태국오픈 출전 자체가 물리적 회복보다 대회 일정을 우선한 결과다.
이번 태국오픈에는 세계 1위 안세영(삼성생명)과 2위 왕즈이(중국)가 결장했다. 천위페이는 자동으로 1번 시드의 야마구치 아카네(일본·3위) 다음으로 우승 후보 반열에 오른 구도다. 하지만 이 '반사이익'이 오히려 부담이 된다.

야마구치와의 통산 전적은 14승 22패. 리그 전체를 통틀어 천위페이가 확실하게 열세인 상대 중 하나다. 개최국 태국의 랏차녹 인타논(7위·통산 전적 19승 3패 우위)과 폰파위 초추웡(8위·16승 1패 우위)은 상대 전적 자체는 천위페이가 앞서지만, 홈 코트에서의 이 두 선수는 전적 이상의 변수다.
결국 천위페이가 이번 대회에서 깊이 올라가려면, 지금의 컨디션을 라운드가 진행될수록 끌어올려야 한다. 우버컵 직후의 피로 누적이 대회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선수도 있다. 반대로 경기를 더 할수록 체력 적자가 쌓이는 경우도 있다. 카르브전에서 드러난 3게임 초반 붕괴는 어느 쪽인지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이날 경기가 그나마 긍정적인 신호를 한 가지 남긴 건 사실이다. 4-13에서 시작해 역전까지 완성한 건 기량보다 정신력의 산물이다. 5연속 득점으로 스코어를 뒤집고 이후 리드를 끝까지 지킨 건, 흔들리면서도 버티는 능력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16강에서의 경기 내용이 이번 대회 천위페이의 실질적인 가늠자가 된다. 1회전처럼 초반 흔들림이 반복된다면, 야마구치 또는 인타논·초추웡과의 대결에서 같은 패턴이 나왔을 때 수습이 어려워진다. 세계 상위권 선수들은 리드를 잡으면 놓지 않는다.
반대로 16강에서 발의 속도가 살아나고 코트 커버리지가 회복된다면, 이번 대회 우버컵 충격을 털어내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
기록은 439승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숫자보다 발이 먼저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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