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바이러스> 배두나가 자화자찬한 현장에서 칭찬받는 노하우는?

배두나

6년 전 촬영을 마친 영화 <바이러스>는 한동안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치사율 100% 바이러스라는 설정을 내세운 이 영화는 하필이면 진짜 팬데믹이 세상을 덮친 2020년을 기점으로 개봉이 멈춰 섰다. 다른 계절을 여러 번 돌아 마침내 영화 <바이러스>가 개봉했다. “오랜만에 나를 보니까 너무 귀엽더라”는 말로 인터뷰를 연 그는, 배우로서의 단단한 신념은 그대로 간직한 채, 오랜만에 환하게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도희야> <터널> <킹덤> 같은 무거운 작품들로 채워지던 필모 사이에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작품이 하고 싶었다”는 마음에 마치 숨구멍처럼 다가온 작품이 바로 <바이러스>였다. 감염되듯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다는 배두나를 만나 영화에 관해 묻고 들었다.


오랜만에 화면 속 밝고 발랄한 자신의 모습을 봤는데, 어떤 기분이 들었나.

진짜 오랜만에 봤다. 영화를 찍은 지 꽤 됐지만 그동안 코로나도 있었고 해서 개봉이 미뤄졌었다. 얼마 전에 기술 시사를 했는데, 다시 보니까 너무 풋풋하더라. 보통은 찍고 나서 1년 안에 결과물을 보게 되는데 이번엔 좀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내가 나를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원래는 연기했던 생생한 기억이 있어서 ‘저 장면은 저렇게 나왔네’ 하고 기술적인 것만 체크하게 되는데, 이번엔 그냥 관객 입장에서 제3자의 눈으로 보게 됐는데 나를 보면서 '귀엽다'는 생각까지 들더라. 기분 좋게 봤다.

특히 어떤 점이 귀엽게 느껴졌나.

일단 밝고 되게 잘 웃더라. 영화 속에서 그렇게 밝게 웃어본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예전엔 20대 시절 드라마나 영화에서 천진난만한 캐릭터들을 많이 연기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형사물 아니면 쫓고 쫓기는 역할, 그것도 아니면 파이터. 이런 연기를 많이 하면서 무표정한 얼굴을 많이 보셨을 건데 이번엔 역할 특성상 감염 이후 기분이 좋아지니까 웃음이 많아졌고, 그걸 관객 입장에서 보니까 아주 맘에 들더라. (웃음)

근래 어두운 작품들을 주로 해오다가 결이 전혀 다른 이 작품을 선택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이 작품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가 내 머리 기장을 보면 넷플릭스 <킹덤>(2019)을 찍고 있었을 때였던 것 같다. <킹덤> 찍을 때만 머리를 길렀었으니까. 계속 조선 시대 좀비물이나, <터널>(2016) <도희야>(2014) <센스8>(2015)처럼 어둡고 쫓고 쫓기는 작품을 하던 와중에 문득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작품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였는데, 그 타이밍에 <바이러스>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김윤석 선배와 함께 연기할 수 있다는 거였다. 어떤 작품이든 같이 한번 해보고 싶었던 선배였고 그게 이 작품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그동안 사회 고발적인 작품들이 많았는데 의도한 선택이었나.

선호라기 보다는 내 취향이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작품을 고를 때는 전략 같은 건 없다. 나는 ‘이런 배우니까 이런 장르 해야지’ 같은 생각도 안 한다. 여러 가지를 해보고 싶은 와중에 ‘이런 이야기 좋다’ ‘’이런 이야기 재미있겠다’, ‘이거 내가 보고 싶은 이야기다’는 직관으로 고른다. <바이러스>라는 작품을 선택할 당시에 이런 부분이 좋아 보였다.

김윤석 배우와 로코(로맨틱코미디)에서 만난다는 설정은 정말 신선했다.

거기서부터 이미 웃기지 않나? (일동 웃음) 근데 진짜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첫 작품을 적대적 관계로 만나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이제는 많이 친해졌으니까 대립되는 관계로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처음부터 그랬으면 더 어려웠을 거다. 이 작품을 로코라고 단정 짓긴 어렵지만,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작품이고, 무엇보다 호흡이 중요한 이야기였다. 김윤석 선배가 연기한 이균이라는 캐릭터는 내가 연기하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택선의 보호자 같은 느낌도 있어서, 호흡이 중요했기 때문에 함께한 첫 작품으로는 아주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토록 원했던 김윤석 배우와 연기하게 되었는데 연기하며 짜릿한 순간들이 많았을 것 같다.

그냥 저분이 ‘이균’으로 존재하고 있으면, 나는 헷갈릴 필요 없이 그냥 자동으로 ‘택선’이 됐다. 그런 몰입이 너무 신기했다. 작품 들어가기 전에 김윤석 선배 영화들을 쭉 다시 봤다. <거북이 달린다>(2009) <완득이>(2011) <쎄시봉>(2015) 등 좋아하는 작품이 많다. ‘왜 이렇게 재밌지? 분명 이분만의 에너지가 있구나’ 싶었고, 현장에서 그걸 열심히 관찰했다. 김윤석 선배님은 현장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할 때 서성거리신다. 그 모습만 봐도 ‘이제 뭔가 기발한 대사가 나오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감탄하곤 했다.

김윤석 배우의 팬이라고 했는데, 어떤 작품을 보고 그렇게 느꼈나.

처음으로 저분과 함께 연기하고 싶다는 팬심이 생긴 작품은 <암수살인>(2018)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주지훈 배우의 연기를 주목했지만, 배우로서 보니까 김윤석 선배가 그 앞에서 뭘 해주고 있는지가 보이더라. 그게 너무 궁금해졌고, 그 순간 팬심이 생겼다. 주지훈 배우가 정말 자기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 저렇게 연기해 주는 선배라니. 그 뒤로 김윤석 선배와 함께한 주지훈 배우에게도 물어봤다. ‘그때 어땠냐고, 진짜 놀랐다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분이랑 연기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다.

손석구 배우와의 로코 케미가 재미있었는데 두 분의 호흡은 어땠나.

<센스8> 때 처음 만났고, 그게 2016년쯤이었을 거다. 그 뒤로 드라마 <최고의 이혼>(2018)에서도 같이 했고, 이미 호흡을 많이 맞춰봤기 때문에 이번에도 정말 편안했다. 재미있게 찍었고 손석구 배우도 더 편안하게 작품 속에서 마음껏 논 것 같더라.

배우 장기하의 연기도 인상 깊었다. 최근에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2023)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바이러스> 촬영 전엔 시트콤에 한 번 출연한 경험이 전부였다. 장기하와의 연기는 어땠나.

사실 가수도 무대에서 퍼포밍한다고 하지 않나. 이걸 영화 안에서 보여주는 건지 무대에서 보여주는 건지의 차이일 뿐이다. 감성이 정말 배우 같다고 느꼈다.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그냥 정말 오래전 내 초등학교 동창인 것처럼 편하게 있었다. 긴장을 아예 안 하더라. 그리고 노래할 때 특유의 말투. 그걸 억지로 바꾸지 않고 영화에서도 그대로 가져왔더라. 그 자연스러움이 너무 좋았다. “아. 너 아니구나” 이런 대사도 있었는데, 타이밍이 기가 막혀서 웃겼다. 연기를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이균(김윤석)과의 키스 신이 꽤 화제가 될 듯하다.

그 장면은 블랙 코미디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피 섞는 장면이 아마 키스 신일 거고, 중간 장면은 약간 고백 같으면서도 공격과 수비가 엇갈리는 장면이다. 김윤석 선배가 맡은 이균은 그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흔들리거나 로맨틱하게 접근하는 상태가 아니라, 그저 ‘어떻게 하면 이 여자한테서 나를 방어할 수 있을까’ 하는 심정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거의 액션 신처럼 찍었고, 웃기면서도 처연한, ‘웃픈’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이균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서 과감하게 임했다. (일동 웃음)

액션 신이라고 했지만 배두나 배우의 섹시하고 나른한 표정 연기가 너무 진심이더라. 이런 러블리한 장면을 너무 잘하는 배우인데 왜 이런 연기를 많이 안 했을까 궁금하고 왜 하필 이런 장면들은 멋진 남자들하고는 안 할까도 궁금하다.

어머! 우리 남자 배우들 얼마나 멋있는데. (일동 웃음) 그러면 안 된다. 이 외모 지상주의를 어쩔 건가. (일동 웃음) 내가 얼마 전에 유튜브 예능 <비밀보장>에 나가서 김숙 씨한테도 되게 화를 냈지만, ‘배우가 어떤 마음인지를 봐야지 배우가 어떻게 보이는지 보면 안 된다’ 잔소리 하고 왔다. 정말 멋있는 사람들이다. 김윤석, 장기하, 손석구. 내가 남자 배우 복이 많다고 생각하고 찍었다. 내가 사랑스러워 보였다면 그건 맞은 편에서 그렇게 만들어주고 있는 거다.

감염 전후 택선의 변화가 극적이다. 그 변화는 어떻게 접근했나.

감염 전 택선은 현대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땐 꿈도 많고 희망도 있었지만, 점점 현실에 부딪히면서 마음이 무뎌지고, 시니컬해지고, 웃음도 사라지지 않나.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감염 후 택선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따뜻하게 다가오고,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며 변화하는 인물이다. ‘이 사람들이 날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해야지’ 하는 식의 상호작용을 일부러 세뇌시키듯 연기했다. 치사율만 아니면 진짜 좋은 바이러스다. (일동 웃음)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마음을 열게 만드는 바이러스. 그런 생각 하면서 찍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택선에게 기억이 희미하게라도 남아 있다는 설정으로 연기했다. 관객에게 열린 결말로 남기고 싶었지만, 내 안에서는 ‘그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는 감정이 있었다. 택선이 마지막에 주사 맞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나. ‘나 사실은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고.

영화 후반, 죽음을 앞두고 동생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감정 연기는 어떻게 준비했나.

특별히 어떻게 하려고 준비한 건 없다. 그냥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감염 전 택선이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말이었지만, 감염 후 택선이니까 용기 있게 할 수 있었던 거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영영 못 할 수도 있으니까’ 하는 생각으로 동생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사실 그 장면 찍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그래서 오히려 진정하고 다시 찍기도 했다.

실제 성격은 감염 전 택선과 감염 후 택선 중 어디에 더 가깝나.

둘 다 있다. 근데 기억력이 안 좋아서 자꾸 희망을 갖는다. (웃음) 인간에 대해서든, 사회에 대해서든, 영화에 대해서든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거야’하고 자꾸 꿈꾸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감염 후 느낌이 더 많은 사람인 것 같다.

한국, 일본,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작업해 왔는데, 각국의 촬영 현장 차이가 있다면.

시스템이 다르고, 예산이 다르다. 미국은 예산이 크니까 역할이 세분화돼 있고, 스태프 수도 많다. 현장에서 매니저가 없어도 될 정도로 지원을 다 해준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마음가짐은 똑같다. 현장을 굳이 비교할 필요는 없다. 한국 오면 한국 스타일, 일본 가면 일본 스타일, 미국 가면 미국 스타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얼마 전 내한해 한국 배우들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하셨다. 배두나 배우도 감독님과 작품을 함께 했었는데 그와의 작업은 어땠나.

내가 가장 존경하는 감독이다. 영화를 만드는데도 정석이다. 예전에 아이를 안고 있는 뒷모습을 찍는데 현장에서 스태프가 울지도 않고 수월하니까 인형 안고 찍자고 하니까, 감독님이 ‘배우는 등으로도 연기한다. 진짜 아기여야 한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진짜 감동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깊은 분이라 생각한다.

배두나 배우도 함께한 배우들이 늘 칭찬하는 배우다. 현장에서 상대 배우와 호흡을 위한 나름의 노하우가 있나.

왜 영업 비밀을 묻나. (일동 웃음) 나랑 같이 작업해 보면 나를 싫어할 수 없을 것 같다. (웃음) 나는 진짜 성실하다. 지각 한 번도 안 하고, 내가 더 예쁘게 나오고 싶다고 메이크업 더 하고 그러지도 않는다. (일동 웃음) 정말 감독 말 잘 듣고 영화에만 충실하게 임하는 편이다. ‘내가 돋보이겠다’ 이런 생각도 없다. 그 신, 그 장면, 그 이야기를 잘 만들어보자는 생각만 한다. 그리고 주연이라고 좀 더 대접받고, 조・단역은 뒷전으로 밀리는 그런 현장을 만들지 않는다. 분량이 많고 적은 건 있을 수 있어도, 큰 배우, 작은 배우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가치관을 다른 배우들이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내 입으로 자화자찬을 한다. (일동 웃음)

대형 할리우드 영화도 출연하지만, <도희야> <다음 소희> 같은 저예산 영화도 참여한다. 그런 작은 영화에도 흔쾌히 출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냥 내가 좋아서다. 경력이 쌓였으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위치가 된 거고, 그 선택은 전적으로 내 마음이다. <도희야>는 시나리오 읽자마자 ‘이건 해야겠다’ 싶었고, 5분도 안 걸렸다. <다음 소희>(2023)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에겐 작은 영화일 수 있지만, 나한텐 연인 같은 존재다. 그 작품이 나에겐 의미가 있으니, 예산이 적어도 하고 싶었다.

분량이 작은 작품에도 출연하곤 했다. <브로커>(2022)가 그랬다. 작품성 외에 인연도 작품 선택의 기준으로 중요한 요인인가.

정곡을 찔린 느낌이다. (일동 웃음) 하지만 둘 다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나의 한 신이 필요하다’ 그러면 할 수 있다. <공기인형>(2009)에 오다기리 조가 나온다. 다른 데 가면 주연하는 배우지 않나. 그런데 진짜 영화에 3분밖에 안 나오는 역할이지만 엄청난 임팩트를 준다. 그걸 보면서 역할의 크기를 재지 않고 나와서 연기하는 게 되게 멋있게 보였다. 그래서 나도 그때부터 실천하려고 하는 게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게 한 장면이어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고레에다 감독이 “한국에는 좋은 작품은 많은데 신선한 창작자나 감독은 잘 안 보인다”고 말했다. 배우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히 나도 해법은 모르겠다. 팬데믹 때 한국 콘텐츠가 워낙 많이 쏟아졌잖나. OTT도 급격히 늘고, 현장도 바빠지다 보니까 수련이 덜 된 상태에서 갑자기 감독이 되거나, 촬영감독이 되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더 다듬고 나와도 됐을 텐데, 급하게 데뷔한 케이스도 있는 것 같다. 그런 구조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한국 영화가 최근에 영화제에 많이 없다고 해서 우리 영화계가 퇴보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꼭 영화제에 나가야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바이러스> 개봉 시기 경쟁작들이 상당히 많다. 부담은 없나.

<바이러스>는 고민 없이 그냥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영화다. 12세 관람가라 가족끼리도 볼 수 있고, 자극적인 장면도 없다. 다른 작품들을 경쟁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극장에 사람이 많은 게 좋으니까 심각한 것도 보고 기분 전환으로 <바이러스>도 같이 보고 이러면 너무 좋을 것 같다.


글 · 나우무비 심규한
사진 · 바이포엠스튜디오, 더램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