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불안·업무과중… 청년 3명 중 1명 ‘번아웃’
국무조정실 ‘청년 삶’ 실태조사
男 29.5·女 38.8% 1년내 경험
“선임의 인신 공격으로 퇴사 후
번아웃·우울증 동시에 찾아와
다시 사회 나가는데 3년 걸려” 下>
“첫 직장에서 퇴사한 후 번아웃(burn out·소진)을 겪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 3년 넘게 걸렸어요.”
번아웃을 경험한 후 한동안 일상을 회복하지 못했던 김모(여·31) 씨는 17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며 “퇴사 직후에 번아웃과 우울증이 동시에 찾아왔다”고 회상했다. 선임의 인신공격이 원인이 돼 퇴사했다고 밝힌 그는 1년 가까이 무기력한 생활을 하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상담 프로그램에 응했고, 자전거 등 취미 생활을 찾는 등 본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적극적인 노력에도 다시 사회에 진출하는 데 2년이 더 걸렸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전 혹은 진출한 직후 좌절을 겪고 번아웃에 빠진 청년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청년재단에 따르면 국무조정실이 지난해 만 19∼34세 청년 가구원 포함 1만50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 결과 최근 1년간 번아웃을 겪었다는 응답은 33.9%(남 29.5%, 여 38.8%)에 달했다. 세 명 중 한 명꼴이다.
번아웃 이유로는 진로 불안이 37.6%로 가장 많았고 업무 과중 21.1%, 일에 대한 회의감 14.0%, 일과 삶의 불균형 12.4% 순이었다. 번아웃 이후 6개월간 은둔 생활을 했다는 최모(여·33) 씨는 “외국에서 관광업종에 일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어느 순간 번아웃이 왔다”며 “집에 있는 시간이 하루, 이틀, 일주일씩 늘어나다가 6개월간 누구도 만나지 않는 무기력한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번아웃은 마음의 병인 만큼 가족이란 울타리가 큰 역할을 하지만 1인 가구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만큼 가족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최 씨는 “같이 있어 줄 사람이 없어 은둔 기간이 길어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미술 분야 프리랜서로 일했던 이모(여·30) 씨는 몰려드는 업무에 치여 번아웃이 왔다. 그는 “몇 개의 프로젝트가 몰릴 때는 며칠씩 잠을 자지 못하는 생활을 하다가 어느 순간 공황장애와 함께 번아웃이 왔다”고 토로했다. 우울증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다는 이 씨는 “직업 준비를 할 때도 힘들었지만 일을 하게 되면서 더 힘들었다”며 “사회에선 결과를 보고 판단하는데 이를 이겨내는 과정 또한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번아웃은 우울증과 수면 불안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조사 대상 청년 중 우울 증상 유병률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1%(남 4.9%, 여 7.5%)였다. 또한 최근 1년간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경험은 2.4%(남 1.8%, 여 3.1%)였으며, 약물 사용 경험에 대한 질문에는 수면제 3.8%, 신경안정제 4.3%, 각성제 1.0%로 나타났다. 장예찬 청년재단 이사장은 “청년 세대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마음건강 지원사업을 확대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 원인 분석
“청년 번아웃, 청소년기부터 누적된 피로가 나타나는 것”
최은정(사진) 위드유치료교육연구소 대표는 최근 청년들의 번아웃(burn out·소진)에 대해 “청소년기 때부터 누적된 피로가 나타난 것”이라고 진단했다. 청년 시기에 심리적인 지침 현상이 나타난 것일 뿐 문제의 원인은 그 이전에 생겼다는 지적이다.
최 대표는 17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교육제도가 과거와 많이 달라지면서 지금은 학기마다 주어진 과제가 많아졌고, 학생들은 중학교 때부터 대학 진학 전까지 학교의 수행과제를 따라가기 위해 피로도가 쌓여 있다”며 “대학 진학 후에도 각종 과제와 취업 준비로 숨 쉴 틈이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최근 1년간 번아웃을 겪었다는 청년이 33.9%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에 대해 최 대표는 “청소년기 때부터 피로도가 쌓인 상태에서 청년이 돼 학업·취업 등에서 몇 번의 실패를 겪게 되면 ‘스몰 트라우마’가 생긴다”며 “특히 마음의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비난 등 외부 자극까지 겹치면 모든 일에 손을 놔버리는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번아웃 문제를 조기에 잡지 못하면 우울증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처음에 번아웃이 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우울감’이 따라오고, 이런 감정이 지속하고 건설적인 성취가 없으면 우울증으로 이어진다”며 “정신적인 어려움은 신체 활동에 어려움을 줘 외부 스트레스에 더 취약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청년들이 번아웃을 겪을 경우 가족들과 유대, 공공기관을 통한 적극적 탈출 노력 의지를 강조했다. 특히 ‘작은 성취’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는 “가족이라도 정서적인 공감을 자주 하지 않았다면 부모가 자녀들의 번아웃을 이해해 주기 어려울 때도 있다”며 “청년들이 공공기관에 가서 상담하는 것은 ‘사회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청년 스스로 어렵지 않은 아르바이트나 봉사 활동으로 작지만 수고의 의미를 생각나게 하는 일을 찾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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