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올수 없는 초호화 캐스팅에 시청률 60% 기록한 국민 드라마

90년대 국민 드라마 '아들과 딸': 잔혹한 편애의 서사, 82년생 김지영의 '어머니'를 읽다

2026년의 시점에서 돌아본 1992년 MBC 드라마 ‘아들과 딸’은 단순히 과거의 흥행작을 넘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사상의 민낯을 처음으로 정면 응시한 기념비적인 텍스트다. 당시 61.1%라는 경이로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전국을 ‘귀남이와 후남이’ 열풍으로 몰아넣었던 이 작품은, 3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지는가. 영화적 시각에서 분석한 ‘아들과 딸’의 성취와 비하인드를 정리했다.

1. 시대의 자화상: '귀한 아들'과 '뒤에 온 딸'

드라마의 시작은 이름부터 상징적이다. 귀하게 자라야 할 아들 **이귀남(최수종 분)**과 아들을 바랐으나 뒤에 태어난 딸 이후남(김희애 분).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는 남아선호사상이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 놓인 이란성 쌍둥이의 삶을 조명한다.

작품의 가장 파괴적인 지점은 '악역'의 설정이다. 전형적인 가부장적 폭군 아버지 대신, 아들에게 집착하며 딸을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어머니(정혜선 분)를 갈등의 핵심으로 세웠다. 이는 가부장제가 어떻게 여성의 손을 빌려 다음 세대 여성에게 대물림되는지를 보여주는 서늘한 통찰이었다.

2. 시청률 61.1%, 대한민국을 멈추게 한 기록

‘아들과 딸’은 방영 당시 그야말로 신드롬이었다. 이 드라마의 최고 시청률은 61.1%로 역대 한국 드라마 시청률 상위권에 랭크 되었다. '아들과 딸'의 흥행 요인으로는 단순히 차별받는 여성의 고통에만 집중하지 않았고 부모의 과도한 기대에 짓눌려 무기력해지는 아들 귀남의 모습을 통해, 가부장제가 남성에게도 얼마나 큰 짐인지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남녀 노소 모두의 공감을 샀다는 점에 있다.

여기에 극 중 아버지(백일섭 분)의 “아 글씨~”라는 대사는 전국적인 유행어가 되었고, 삽입곡인 팝송 ‘Evergreen’과 ‘홍도야 우지마라’는 레트로 열풍의 시초가 되었다.

제작 비화와 비하인드 스토리: 우리가 몰랐던 사실들

1. 한석규를 스타로 만든 '석호' 역할의 반전

냉철하면서도 후남을 지지하는 엘리트 검사 한석호 역은 당초 배우 문성근에게 먼저 제안되었다. 그러나 문성근이 영화 촬영 스케줄 등의 이유로 고사하면서, 당시 신인이었던 한석규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이 작품으로 한석규는 ‘부드러운 지성미’의 대명사가 되며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2. 연장 방영이 낳은 '결말의 아쉬움'

당초 50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64부작으로 연장되었다. 이 과정에서 극의 긴장감이 다소 떨어졌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특히 후반부, 후남이가 소설가로 대성공을 거두고 나서야 가족들과 화해하는 설정은 "성공해야만 가족으로 인정받는가"라는 씁쓸한 질문을 남기기도 했다.

3. 최수종의 고등학생 연기

당시 30대였던 최수종은 극 초반 고등학생 귀남이를 직접 연기했다. 워낙 동안이었기에 큰 위화감은 없었으나, 훗날 사극의 왕으로 거듭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유약하고 고뇌하는 청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귀한 자료이기도 하다.

2026년의 시각: '후남이'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가?

현시점에서 ‘아들과 딸’을 다시 평가한다면, 이 드라마는 '여성 서사의 선구자'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김희애가 연기한 후남은 구박 속에서도 독학으로 대입을 준비하고, 자신의 글을 써 내려가며 주체적인 삶을 개척한다. 이는 최근의 페미니즘 서사나 'K-장녀' 담론의 원형과도 같다.

물론 90년대 초반의 한계로 인해 '어머니와의 작위적인 화해'나 '희생적 여성상'이 강조된 측면은 있다. 하지만 남아선호사상을 '관습'이 아닌 '문제'로 치환하여 안방극장에 던진 그 용기는 여전히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아들과 딸’은 단순한 복고풍 드라마가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아픔을 기록한 사회적 다큐멘터리이자, 차별의 벽을 넘으려 했던 모든 '후남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였다. 34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의 귀남이와 후남이들은 과연 평등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지, 이 드라마는 여전히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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