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사 당하는 줄"…우후죽순 마라톤 대회, 안전장치는 '실종'
폭염에 급수대 없고, 안전요원은 턱없이 부족
현행법상 처벌 규정 無…"매뉴얼 '권고'에 불과"
전문가 "안전관리계획 제출 의무화해야"
[이데일리 박동현 기자] “부딪히고 넘어지고 난리였어요.” 이달 초 여의도에서 진행된 한 마라톤 행사에 10㎞ 참가자로 참여한 오모(33) 씨는 대회 도중 겪었던 위험한 순간을 떠올리며 “많은 사람들이 좁은 구간으로 한번에 들어가니 압사당할 것 같았다. 사람들을 피하다 두 번이나 걸려서 넘어질 뻔했다”고 말했다.
선선한 가을철이 되고 국내 달리기 취미 생활 인구가 크게 늘면서 마라톤 행사가 전국에서 연달아 열리고 있지만 미흡한 안전장치에 참가자들의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안전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는데 현행법상으론 안전관리계획 제출이 권고에 그쳐 강제성이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수만 명이 모이는 마라톤 대회는 압사 등의 안전사고에 취약한 만큼 대회 안전관리계획을 의무적으로 제출할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마라톤 ‘열풍’이지만…전국 곳곳선 안전사고
9일 마라톤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마라톤 온라인’에 등록된 전국 마라톤 대회는 올해 380건(연말까지)으로 지난해(354건)보다 26건 늘었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21년 248건이던 전국 마라톤 대회는 2022년 346건, 지난해 354건으로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마라톤 대회에 자주 참가한다는 직장인 김모(29) 씨는 “요즘 마라톤 대회 티켓팅도 치열해 참가 티켓을 거래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마라톤 대회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비례해 안전사고도 늘어나는 모습이다. 실제 지난 8월 경기도 하남시에서 열린 한 마라톤 대회에서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폭염에도 급수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집단 탈진 사고가 벌어졌다. 당시 119에는 30건이 넘는 신고가 접수되는 등 큰 혼란이 이어졌다. 2020년에는 경기 이천에서 열린 한 마라톤 대회에서 참가자 3명이 갑자기 나타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고 당시 이천시 관내 55명이 뛰고 있었지만 주최 측은 안전요원을 한 명도 배치하지 않았다.
마라톤 대회에서 안전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부실한 제도 탓이다. 현행법상 안전관리계획 제출은 선택사항이고 안전관리 조치를 명시한 국민체육진흥법엔 처벌 규정이 따로 없다. 즉 주최 측이 대회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안전 관리를 소홀하게 하더라도 손해를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육상 대회를 주관하는 대한육상연맹 관계자는 “전문 대회와 달리 일반 민간 대회는 주최 측에서 안전 대책을 개별적으로 계획하지만 정해진 의무 규정은 따로 없다”면서 “행사 진행에 있어 급수대 설치나 안전요원 배치 등은 비용이 많이 드니까 비용 절감 목적으로 잘 안 지켜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밝혔다. 실제 1만여 명이 참가했던 하남시 마라톤 대회에서는 6000명의 기준에 맞춰 안전요원을 배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전사고를 대비하기 위한 매뉴얼이 있지만 권고에 그치는 것도 원인으로 꼽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발간한 ‘스포츠행사 안전점검 매뉴얼’에서는 “위험성이 높은 행사의 경우에는 무리하게 운영하기보다는 행사 수용 인원을 축소하고 참가자의 동선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을 권고한다”고 기재돼 있다. 대한육상연맹은 이에 대해 “마라톤 주최에 앞서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선 매뉴얼을 따라야 하지만 매뉴얼은 의무가 아닌 ‘권고’에 그친다”며 “실제 행사 등을 진행함에 있어 안 따르더라도 큰 상관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마라톤이 대규모 인원이 한곳에 몰리는 만큼 안전관리계획 의무화해 하루빨리 안전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마라톤을 뛰다 보면 앞 사람이 넘어져도 안 보이기 때문에 연쇄적인 압사 사고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며 “재난안전법에서도 마라톤과 같은 행사에 대한 규정은 빠져 있는데 안전관리계획 제출 의무화 등으로 관리·감독해 사각지대를 줄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동현 (parkdd@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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