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세계 첫 하이브리드 골프장, 골프존 ‘시티골프’ | 스크린과 실제 그린 한 번에 즐긴다… 타이거 우즈도 푹 빠져
‘쇼트게임 구역 진입 성공’, 401야드(약 367m) 파4 홀에서 세 번째 샷으로 그린에 공을 올리니 이러한 메시지가 스크린에 나타났다. 동반자들까지 모두 그린 위 또는 주변으로 공을 보내니 스크린이 천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타난 그린으로 걸어 나가니 새로운 세계로 이동하는 느낌이었다. 공을 어디에 두고 쳐야 하는지 고민하는 찰나, 천장에 달린 레이저가 각 플레이어의 공 위치를 저마다 다른 색깔과 기호를 이용해 가리켰다. 그린 경사가 심하고 공이 굴러가는 속도까지 굉장히 빨랐다. 동반자로부터 컨시드(컵에 공을 넣기 전 퍼트 성공을 인정하는 것)를 받아 겨우 더블보기로 끝낼 수 있었다.
9월 28일, 중국 톈진에서 골프존이 선보인 ‘시티골프’를 직접 다녀왔다. 시티골프는 롱게임은 스크린 부스에서, 쇼트게임은 실제 그린에서 하는 세계 최초 하이브리드형 골프장이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미국프로골프(PGA) 최고 흥행 스타인 로리 매킬로이가 시티골프와 같은 개념의 ‘TGL’ 리그를 내년부터 시작하는 만큼, 시티골프에 대한 주목도는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골프존은 일반인도 도심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시티골프를 통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계획이다.
18홀 옮겨 다니며 가상+실제 게임⋯ 비싼 가격은 아쉬워
톈진 메이장 컨벤션센터에서 9월 13일 공식 영업을 시작한 골프존 시티골프는 한눈에 다 담기 어려울 만큼 방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1만6500㎡(약 5000평) 면적의 큰 홀에 18개 스크린 부스와 18개 그린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다. 18m 높이의 천장은 통창으로 이뤄져 있어 자연광을 즐길 수 있었다. 모두 조화이긴 하지만, 겉보기엔 진짜 같은 초록색의 나무와 식물로 가득해 흡사 실내 식물원에 온 기분이었다.
방에 들어가 18홀 내내 치는 일반 스크린 골프와 달리, 시티골프는 홀마다 다른 부스로 옮겨가면서 쳐야 한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작은 카트에 골프채를 실었다. 카트를 끌어주고, 그린 경사(라이)를 봐주는 캐디도 170위안(약 3만2000원)을 내면 이용할 수 있었다. 자신이 쓸 공을 직접 가져와야 한다는 점까지 실제 골프장과 흡사했다.
첫 번째 홀에서 직원의 도움을 받아 골프를 칠 코스를 정했다. 여러 코스가 있지만, 지금은 ‘공개 대회 오아시스 골프장’만 선택할 수 있었다. 개장 첫날인 9월 13일 이곳에서 열린 ‘2024 골프존 시티골프 차이나 오픈’에서 썼던 코스다. 당시 옌판판(중국)이 4라운드 동안 최종 8오버파 296타를 쳐 150만위안(약 2억8440만원)의 상금을 가져간 대회다. 그렇게 시작한 게임은 한국 골프존의 최신판 스크린골프 시스템과 같았다. 공이 떨어진 위치가 경사져 있을 경우 발밑 스윙 플레이트가 조정됐고, 양발 무게중심도 측정이 가능했다.
인조 잔디로 구성된 실제 그린, 쇼트게임 구역은 플레이어 모두 그린에 공을 올리거나, 홀컵으로부터 50야드(약 46m) 거리에 공을 떨어트려야 열린다. 홀마다 그린 모양이 모두 다른 것은 물론, 그린 주변에 작은 해저드(호수)와 벙커(모래 구덩이)가 있는 홀도 있었다. 모래는 입자가 굵으면서도 고와 벙커샷 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천장에 달린 레이저는 그린 위 최초 공 위치만 알려준다. 그 뒤로는 직원이 게임 전 나눠준 볼 마커를 이용해 공 위치를 표시하며 게임을 진행해야 한다. 18개 그린 대부분이 경사가 심한 데다 천연 잔디도 아니다 보니 난도가 꽤 높았다.
스크린 골프와 달리 체력 운동도 됐다. 매 홀을 옮겨 다녀야 하는 데다 골프채를 실은 카트도 직접 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린 경사를 읽고 왔다 갔다 하며 공을 쳐야 한다는 점도 작용했다. 이날 기자는 한 라운드를 돌면서 6000~7000보가량을 걸었다. 실제 그린을 즐기면서도 실내다 보니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골프존차이나의 허우보스 디지털 전략부 담당자는 “최근 (날씨가 더워 야외에서 골프하기 어려운)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시찰을 왔었다”라고 전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공간에 제약이 있어 그린이 크지 않았고, 사실상 어프로치는 그린 밖 1~2m 이내에서만 가능했다. 인조 잔디다 보니 나오는 문제도 있었다. 예를 들어 그린 중 경사가 심한 곳에 공을 놓으려 하면 계속 미끄러져 결국 좀 더 평평한 곳으로 공을 옮겨야 했다. 18개 그린이 고정돼 있다 보니 라운드할 때마다 같은 그린을 쳐야 한다는 것도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었다. 다만 허우보스는 “지금의 그린 18개를 만드는 데 74일이 걸렸지만, 이제는 기계와 기술이 확보됐으니 한 달이면 그린을 바꿀 수 있다”라고 했다.
만만치 않은 비용도 문제다. 일반 게스트의 경우 9홀만 칠 수 있는데, 가격은 248위안(약 4만7000원)이다. 베이징 스크린 골프가 18홀에 120위안(약 2만3000원)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비싼 편이다. 게다가 18홀을 모두 치려면 10만위안(약 1900만원)의 회원권을 구입해야 한다. 10년간 유효하고, 양도도 가능하지만,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허우보스는 “실제 골프장 회원권은 100만위안(약 1억9000만원)에 달해 10분의 1 가격밖에 안 되는 셈”이라며 “앞으로 1~3선 도시에 진출해도 모두 같은 가격을 적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타이거 우즈도 뛰어든 하이브리드 골프⋯ 골프존, 글로벌 공략 본격화
골프존은 중국 시장을 필두로 전 세계 유명 거점 도시 진출을 목표로 시티골프 신사업을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중국에서 출발하는 것은 ‘가성비’에 있다. 톈진 시티골프에는 총 4000만위안(약 76억원)이 투입됐다. 홀 하나 조성 비용은 100만위안이다. 이는 저렴한 수준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같은 시설을 만들려면 1.5배가 필요하다고 한다.
중국의 수요와도 맞아떨어졌다. 중국은 정부 인허가가 나지 않아 새 골프장을 10년째 짓지 못하고 있는데, 기존 골프장도 문을 닫고 있어 좋은 골프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스크린 골프장은 설립 제한이 없다. 허우보스는 “한국은 5000만 인구에 골프장이 600개나 되는데, 중국은 14억 인구에 골프장이 300개가량에 불과하다”라며 “스크린 골프장도 아직 많지 않아 수요가 크다”라고 했다. 골프존차이나는 올해 중 협력사와 손잡고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양, 다롄 등 5개 도시에 시티골프를 추가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골프존 시티골프에 대한 주목도는 내년부터 본격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타이거 우즈와 로리 매킬로이가 공동 설립한 투모로(TMRW)스포츠의 스크린골프 리그 TGL이 내년 1월부터 본격 시작되기 때문이다. TGL 역시 롱게임은 스크린, 쇼트게임은 경기장 내 실제 벙커 세 곳과 그린 세 개에서 경기가 진행돼 시티골프와 유사하다. 다만 시티골프의 그린은 고정돼 있지만, TGL 그린은 최첨단 기술이 적용돼 있어 설계에 맞춰 그린 경사 변형이 가능하다. 제네시스가 TGL 출범을 함께하는 파운딩 파트너로 이름을 올렸고, 우즈와 매킬로이를 비롯한 세계 톱랭커들이 출격을 확정 지어 흥행이 예상된다. 투모로스포츠는 최근 5억달러(약 6729억원) 가치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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