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유족 첫 기자회견…“정부, 진정한 사과·책임 규명해야” [이태원 핼러윈 참사]

조성민 2022. 11. 22. 13:2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라 이끄는 분들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답답해”
피해자 지원·추모시설 마련 등 정부에 요구사항 전달
“책임 회피·거짓 해명 한 자들 엄중하게 문책해 달라”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참사 이후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철저한 책임규명을 촉구했다.

22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 중 일부는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심경을 밝혔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희생자들의 사진을 들고 눈물을 닦아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외국 국적인 A 씨의 어머니는 아들 A씨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알기 위해 국내 대학 어학당에 공부를 하러 왔다가 이태원 참사로 희생됐다고 밝혔다. 그는 “아이를 보내며 가장 힘든 건 나라를 이끄는 분들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정말 답답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나는 아들을 가슴에 묻고 곧 빈으로 간다. 정부 사과를 받아야 하는데 아들 장례식이 빈에서 28일이어서 가야한다”며 “억울하게 죽은 외국인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겠다. 유가족 여러분도 힘내서 꼭 우리 아이들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말했다.

다른 희생자 B 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사망증명서를 들어 보이며 “사인도 시간도 장소도 알지 못하고 어떻게 떠나 보내려 하나”라며 “심폐소생술이라도 받았는지 병원 이송 중 사망했는지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더 안아주고 더 토닥거려줄 걸, 사랑한다고 매일 말해줄 걸, 얼굴 한 번 더 만져줄 걸, 먼저 보낸 미안함에 몸부림친다”며 “단축번호 3번에 저장된 우리 아들 목소리를 이제 들을 수 없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번 참사로 희생된 배우 고(故) 이지안 씨의 어머니도 이날 자리에 참석했다. 그는 “드라마 방영을 앞두고 매일 같이 운동을 거르지 않았고 작품에 온 신경을 썼다. 오후 2시에 바지를 다려 입으면서 ‘나 오늘 밥 먹고 올거야’(하고 나갔다.) 그런데 아이가 그날 죽었다고 (연락이 와서) 믿을 수 없어서 병원을 갔는데 지안이가 맞았다”고 말했다. 이어 “볼이 패여 있었고 배가 홀쭉해서 ‘지안아 너 오늘도 못 먹었구나’(라고 생각하며) 가슴이 미어졌다”며 “용산구청장, 용산경찰서장, 경찰청장, 서울시장, 행안부장관, 국무총리 자녀 한명이라도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면 과연 그 거리를 설렁탕을 먹고 어슬렁 걸어갈 수 있었겠나”라고 했다.

유가족들은 이날 △진정한 사과 △엄격하고 철저한 책임규명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 및 책임규명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추모시설 마련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입장 표명과 구체적 대책 마련 등 정부에 대한 6가지 요구사항을 전했다.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꽃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유가족 측은 “정부는 ‘10·29 이태원 참사’의 책임이 이태원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 지방자치단체, 경찰에게 있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며 “참사의 모든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책임 있는 후속 조치를 약속하라”고 했다. 이어 “모든 책임자들을 빠짐없이 조사하고, 가장 엄격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책임을 회피하려 하거나 거짓 해명을 한 자들을 무관용으로써 엄중하게 문책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진상규명 과정에 유가족들이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참여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며 “참사 당시 뿐만 아니라 참사 이전, 이후까지의 진상과 책임이 모두 규명돼야 한다”고 밝혔다. 
유가족 측은 나아가 “정부는 참사의 모든 피해자들이 서로 소통하고 슬픔을 나눌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며 “피해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사항을 확인하고 관련 조치를 즉각 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사회적 추모를 위해 추모시설 마련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참사의 재발 방지와 사회적 추모를 위한 정부의 공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부는 무분별하게 발생하고 있는 2차 가해를 묵과하지 말아야 한다”며 “참사가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책임이 아닌 정부의 책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희생자들에 대한 2차 가해에 반대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태원 참사는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턴호텔 옆 골목 119-7번지 일대에서 발생했다. 많은 인파가 좁은 골목길에 몰리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했고 이날 현재 158명이 숨졌다.
세계일보는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