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단아한 쪽빛의 화양연화…‘여섯 명소, 여섯 시선’ 단양 남한강

기자 2024. 10. 5.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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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활공장에서부터 날아올라 패러글라이더를 타는 사람들. 강을 사이에 두고 왼쪽으로 이어지는 마을이 덕천리, 오른쪽 마을이 사평리다.
용탄에서 출발, 구봉팔문 찾아가는 길…패러글라이더는 푸른 하늘 유영, 양방산 억새는 바람 따라 누워
절벽 위 ‘만천하스카이워크’ 너머엔 54년 전 시루섬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가 ‘어른’
신라 적성산성 아래, 죽령 물줄기와 하나 된 남한강…충주호엔 유람선 한 척만 유유히

강원 태백 금대봉 아래 한강의 시원, 검룡소에서 시작된 물길이 골지천이라는 이름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물길은 정선 아우라지에서 평창으로부터 흘러온 송천을 아우르며 차츰 세를 불린다. 조양강, 동강으로 이름을 바꾸어 흐르다 여월에서 이윽고 남한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북벽

북벽은 남한강이 단양으로 접어들어 빚은 첫 풍경이다. 북벽에서 구담봉까지 단양의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사행하는 남한강은 단양 곳곳에 멋진 풍경을 빚어놓았다. 남한강과 어우러진 그 풍경을 굽어볼 수 있는 6개의 전망 좋은 곳을 추렸다. 검룡소에서 남한강이란 이름으로 단양을 지날 때까지, 산골마을 실개천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삼국시대의 굵직한 역사까지 품고 흐르는 물길의 내력을 생각했다.

그 봉우리를 보았나, 소백산 자연휴양림 전망대

소백산 자연휴양림 전망대

단양의 남한강이 시작되는 곳은 영춘면 오사리다. 먼저 강에 다가가 보자. ‘용탄 여울’은 마을 사람들이 천렵하던 곳인데 풍경이 장관이다. 이무기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거기서 차로 멀지 않은 ‘북벽’도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너른 강기슭 모래 자갈밭과 그만큼 넓은 물줄기, 물줄기 따라 진을 친 수직 절벽이 ‘북벽’의 기본 풍경이다. 이제 남한강 긴 줄기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소백산 자연휴양림 전망대에 오르자. 영춘면 소재지를 감싸고 흐르는 남한강이 다른 풍경에 가려 사라졌다 나타났다 한다. 고구려 온달장군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온달산성은 초록의 바다에 떠 있는 배의 형국이다. 파도처럼 넘실대는 산줄기 속에서 ‘구봉팔문’을 찾아보았다. 구봉팔문은 소백산 줄기의 한 맥이 만든 9개의 봉우리와 그 사이 8개의 골짜기로, 부처님의 뜻으로 정진하며 속세의 사람들과 함께 평등과 사랑의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는 뜻을 담고 있다. 9개의 봉우리 중 아곡문봉, 밤실문봉, 여의생문봉, 뒤시랭이문봉, 덕평문봉을 찾았다면 미션에 성공한 것이다. 곰절문봉, 배골문봉, 귀기문봉, 새밭문봉은 시야에 잡히지 않는다.

날아오르는 젊음, 두산활공장

이번에는 해발 500m가 넘는 두산의 패러글라이딩장에서 굽이치는 남한강을 보자. 활공장에서 보이는 오른쪽 강마을이 사평리다. 사평리를 지난 물길은 덕천리를 감싸고 흘러간다. 그렇게 흘러 흘러 이윽고 단양 읍내를 지나게 되는데, 그 전에 일을 하나 치르고야 만다. 읍내에 다다르기 전에 도담삼봉을 물 위로 밀어 올리는 것. 하지만 이곳에서는 산에 가려 도담삼봉과 단양 읍내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시선이 멀리 가지도 못한다. 활공장 언덕 끝 의자에 앉아 있는 연인들도 예쁘고, 활공장에서 막 이륙한 패러글라이더가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도 풍경이 된다. 패러글라이더를 탄 젊은이들이 공중에서 지르는 환호성이 생각보다 가까이 들린다. 바람을 타고 서서히 고도를 낮추는 그들이 멀어져 가면, 연이어 또 다른 청춘들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 소리마저 푸르른 청춘이다. 바람도 푸르고 햇빛은 찬란하다.

강물에 안긴 단양읍, 양방산 전망대

양방산 전망대에 서면 멀리 상진대교와 남한강철교 뒤 만천하스카이워크까지 눈에 담을 수 있다.

양방산 전망대는 단양 읍내를 휘감아 흐르는 남한강을 한눈에 넣기 좋은 곳이다. 강물에 안긴 단양읍이 평온해 보인다. 전망대 가장자리에 노랗고 희고 붉은 작은 들꽃이 피었다. 해발 650m가 넘는 곳에 피어난 들꽃 무리, 저 아래 굽이쳐 흐르는 강물, 그 품에 안긴 사람 사는 마을, 멀리서 넘실대는 파도 같은 산줄기, 어느 것 하나 빠지면 완성되지 않을 풍경이다. 강을 가로지르는 상진대교와 남한강철교 뒤 절벽 위에 지어진 건 만천하스카이워크다. 몸을 돌려 뒤쪽 풍경을 본다.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가늠하는 장치가 바람을 머금고 수평으로 날린다. 억새는 바람의 방향으로 누웠다. 소백산이 거느린 산줄기들이 기운차다.

사연 많은 물길, 만천하스카이워크

하늘길(스카이워크)에서는 어떻게 보일까? 해발 300m가 넘는 절벽 위에 철골 구조물로 전망대를 만들었다. 꼭대기에 외부로 돌출된 유리 바닥이 있다. 유리 바닥에 오르면 발아래 풍경이 까마득하고, 사방으로 시야가 통쾌하게 터진다. 단양 읍내를 지나 밀려오는 남한강을 본다. 양방산 전망대와 단양 읍내, 남한강철교, 단양역, 시루섬이 선명하다. 멀리 두산활공장에서 날아오른 패러글라이더가 작은 새 같다. 소백산, 월악산, 금수산이 만든 산줄기가 외연이다. 적성산성도 보인다. 신라군이 고구려군을 몰아내기 위해 넘어 온 소백산 죽령 고개가 어디쯤인지 안내판에서 확인한다. 이번엔 초점을 하나로 모아본다. 남한강 가운데 보이는 작은 섬이 시루섬이다. 그곳엔 수해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남아 있다. 1972년 단양 대홍수 때 마을 주민 250여명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을 찾아 높이 7m, 지름 4m의 물탱크로 올라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사투를 벌이며 14시간을 견뎠다. 서로 팔짱을 끼고 부둥켜안고 아이들은 어른들 어깨 위에 올라서서 버텼는데, 안타깝게도 한 아기는 엄마 품에 안긴 채 숨을 거뒀다. 대열이 흐트러지면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을 알았기에 엄마는 소리도 내지 않고 울음도 참으며 죽은 아기를 품에 안은 채 죽을힘을 다해 견뎠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시루섬은 옛 시루섬의 일부다.

역사의 줄기 따라, 적성산성

적성산성의 성벽 대부분은 붕괴했지만 북동쪽 일부는 남아 있다.

범상치 않은 돌이었다. 1978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성재산에서 이사부, 비차부, 무력 등의 한자가 새겨진 돌을 발견했다. 이사부는 신라 지증왕과 진흥왕 때 활약한 장군이고, 비차부는 진흥왕 때 죽령 북쪽의 고구려군을 몰아낸 장군이다. 무력이라는 이름은 김무력 장군으로 추정하는데, 김유신 장군의 할아버지다. 그 돌이 국보로 지정된 ‘단양 신라 적성비’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비문에는 신라의 영토 확장을 돕고 충성을 바친 적성인의 공훈을 표창하고, 앞으로 신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은 포상을 내리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성벽은 대부분 붕괴하고 북동쪽에 일부 남아 있다. 적성산성에 서면 만천하스카이워크 아래를 지나온 남한강이 신라군이 넘었던 죽령에서 시작된 물줄기와 만나는 풍경도 볼 수 있다.

맘 고운 신선이 살았던 구담봉

구담봉 정상 너머로 충주호가 보인다.

구담봉으로 가는 길 초입은 계란재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1.4㎞ 지점에서 옥순봉과 구담봉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구담봉까지 600m다. 능선을 장악한 바위와 단단하게 다져진 흙길,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한다. 겸재 정선과 이방운이 그린 ‘구담도’에서 충주댐이 생겨 밑동이 물에 잠기기 전 온전한 구담봉을 볼 수 있다. 해발 300m가 넘는 바위 절벽 봉우리는 그림 속에서 신선이 사는 마을을 지키는 파수꾼 같다. 옛사람들은 구담봉을 구담이라 불렀고, 구담에 사는 신선이라 해서 구선(龜仙)이라 불린 인물도 있었다. 청풍군수로 재직하면서 제도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두루 도운 이지번이다. 그의 동생 이지함도 형의 영향을 받아 가난한 사람들을 애틋하게 여겼는데, 그가 바로 <토정비결>로 잘 알려진 이지함이다. ‘구담봉 330m’라고 새겨진 정상 표석 뒤 전망대에서 통쾌하게 펼쳐진 풍경을 마음에 담는다. 충주호 유람선 선착장이 저 아래 물가에서 한적하다. 유람선 한 척이 물결을 그리며 나뭇잎처럼 떠다닌다.

>>> ‘천년의 사랑’을 찾아서…물이 빚은 또 하나의 작품, 고수동굴

아주 오래전 석회암 지질층에 동굴이 생겼다. 동굴 속 길을 따라 약 1㎞ 구간을 걸었다. 평탄한 길, 오르락내리락 계단, 나선형 좁은 계단을 걷기도 한다. 수고롭지만 신비로운 풍경이 위로한다. 동굴의 수호신 사자바위, 폭포처럼 보이는 거대한 종유석, 선녀탕이란 이름이 붙은 웅덩이, 꽃 모양의 돌들, 동굴진주와 동굴산호…. 신비하지 않은 게 없다. ‘천년의 사랑’이라는 이름이 붙은 종유석과 석순도 있다. 동굴 천장에서 시작한 종유석과 동굴 바닥에서 시작한 석순 사이가 약 15㎝밖에 안 된다. 하지만 그 둘이 맞닿아 하나가 되려면 적어도 100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단다. ‘천년의 사랑’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다.

단양 |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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