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며칠 전 금융회사에서 디폴트 옵션 상품을 선정해야 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디폴트 옵션이란 것도 잘 모르는데, 상품까지 골라야 한다고 하니 당황스럽습니다. 설명서를 보니 TDF란 상품이 알아서 다 해준다는데, 어떨까요?
우리나라의 퇴직연금 제도는 2005년 12월부터 시작되었는데, 제도 시행 이래 지속적으로 문제시되었던 점이 적립금의 방치입니다.
DB형(확정급여형)이야 법인이 운용하는 것이니 방치될 일이 없겠지만, 개인이 퇴직급여를 직접 운용하는 DC형(확정기여형), IRP(개인형퇴직연금)의 경우에는 본인의 퇴직금임에도 불구하고 현금성 예금이나 원리금 보장 상품으로 방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적립금 운용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거나, 바쁜 직장인들로서는 신경을 못 썼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투자를 해야 한다면, 원금손실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수 있겠지요.
사실 이 부분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미국, 호주 등 먼저 퇴직연금 제도를 시작했던 국가들도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디폴트 옵션’입니다.
디폴트 옵션이란 DC형 퇴직연금과 IRP 가입자가 적립금 운용 방법을 정하지 않고 방치할 때를 대비하기 위해, 가입자가 사전에 운용 방법을 지정해 두는 제도입니다.
즉 만기가 도래한 적립금 운용을 지시하지 않고 방치하면 현금성 자산으로 남아서 거의 수익을 내지 못하는데, 이 같은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운용 방법을 정해두는 것입니다.
디폴트 옵션을 관련 법에서 ‘사전지정운용제도’라고 하며, 2022년 7월 도입됐고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3년 7월에 시행됐습니다.
가입자별 디폴트 옵션 적용 절차는 신규 가입자와 기존 가입자가 조금 다릅니다.
신규 가입자는 2주간 적립금을 어떻게 운용할지 정하지 않으면, 적립금을 미리 정한 디폴트 옵션 상품으로 운용하게 됩니다.
기존 가입자의 경우, 운용하고 있던 상품의 만기가 도래하고 4주가 경과했는데도 만기상환자금에 대한 운용 지시가 없을 경우, 연금 사업자는 2주 이내에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디폴트 옵션이 적용된다고 안내합니다.
다시 말해 금융상품의 만기가 도래한 다음 6주가 지났는데도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디폴트 옵션이 적용되는 겁니다.
DC형 퇴직연금과 IRP 가입자는 연금사업자가 제시하는 디폴트 옵션 상품 중에서 자신에게 적합한 것을 고를 수 있는데 이때 하나의 디폴트 옵션 상품만 선정할 수 있습니다. (단, DC형 퇴직연금과 IRP에 각각 가입하고 있는 가입자는 디폴트 옵션 상품도 각각 하나씩 지정해야 함)
금융회사에서 제시하는 디폴트 옵션 상품은 보통 위험도에 따라 초저위험,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 등 4가지 포트폴리오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위험등급 중 초저위험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으로만 구성이 됩니다. 나머지는 위험도가 높아질수록 펀드와 같은 원금 비보장형, 다시 말해 실적배당형 상품의 비중이 높아집니다.
은행의 정기예금, 증권사의 ELB(Equity Linked Bond,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와 RP(Repurchase Agreements, 환매조건부채권), 보험사의 GIC(Guaranteed interest contract, 이율보증상품), 금리연동형 보험 상품 등이 있는데요.
원금과 이자가 보장되는 원리금 보장 상품은 투자한도 제한 없이 적립금의 100%까지 투자가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원리금 보장 상품에 가입하실 때 한 가지 주의할 점으로는 예금자보호 여부를 확인해 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기예금, 이율보증보험, 금리연동형 보험 상품은 예금자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ELB와 RP는 예금자 보호 대상이 아닙니다.
정기예금 금리만으로 목표수익을 달성하기 어렵다면 펀드와 같은 실적배당 상품에도 관심을 가져볼 만합니다.
연금사업자가 제시하는 펀드 상품은 TDF(Target Date Fund), BF(Balanced Fund), SVF(Stable Value Fund), SOC 펀드(Social Overhead Capital Fund) 등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금융회사가 펀드 유형으로만 디폴트 옵션 상품을 제시할 때는 TDF 또는 BF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원리금 보장 상품과 펀드를 혼합한 포트폴리오 유형도 가능합니다.
또 디폴트 옵션에는 위험자산 투자한도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원래 퇴직연금(DC∙IRP)에서는 적립금을 위험자산에 70%까지만 투자할 수 있지만, 이를 엄격하게 적용하면 사전 지정 운용 방법이 제대로 작동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디폴트 옵션 상품에는 이 같은 위험자산 투자한도를 적용하지 않습니다.
혹시 디폴트 옵션 상품의 위험자산 투자한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셔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https://naver.me/5smidbMp
재정설계를 하는 기준으로 ‘100-나이 법칙’이라는 투자원칙이 있습니다.
투자자산의 비중을 결정할 때, 100에서 자신의 나이를 빼서 나온 비율만큼 투자를 하고, 나머지는 안전성 위주의 자산에 배분하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나이가 30세라면 70%를 위험자산에, 30%는 안전자산에 투자하라는 의미이고, 나이가 60세라면 40%를 위험자산에 60%는 안전자산에 투자하라는 말이 됩니다.
젊을수록 투자자산의 비중을 늘리는 한편, 나이가 들어갈수록 공격적인 투자자산을 줄이고 안전자산 비율을 높여 위험을 줄여 나가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TDF는 이 원칙을 실현하는 펀드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목표 시점 펀드’라고 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해 목표 시점에 맞춰 위험자산(주식 등)과 안전자산(채권 등)의 비중을 알아서 조정해 주는 펀드입니다.
다시 말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위험자산 비중을 서서히 줄여가면서 은퇴 이후에는 최소한의 비중을 유지해 가는 방식으로 운용되는데, 이때 비중을 조정해 가는 과정이 항공기 착륙과 비슷한 움직임이라 해서 “글라이드 패스(Glide Path)”라고 부릅니다.
사실 투자 경험, 역량, 시간이 부족한 직장인들 입장에서 투자대상을 골라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정기적으로 평가, 리밸런싱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TDF는 가입할 때 가입자가 자신이 예상하는 은퇴 목표 시점만 선정하면, 그다음부터는 알아서 해주기 때문에 요즘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TDF를 고르는 방법은?
TDF에 대해 이런 의문이 드실 수 있습니다.
펀드는 다수의 자금이 모여서 한 방향으로 운용되는 상품인데, 개인마다 은퇴 시기가 다르고 위험자산에 대한 생각도 다 다를 텐데… 어떻게 운용이 가능하지?
그래서 Target Date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TDF 상품들은 모두 상품 중간, 즉 TDF 바로 뒤에 2030, 2040 등과 같은 연도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이 4자리 숫자들이 바로 ‘목표 은퇴 시기’이며, 흔히 빈티지라고도 합니다.
본인의 나이가 30대이고 은퇴는 앞으로 25년 정도 남아 있다면 지금 기준으로 2050년 이후가 은퇴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투자자는 TDF 2050 펀드에 가입하시면 됩니다.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어 주식 운용 비중도 꽤 높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2040, 2030 등으로 ‘Target Date가 가까워질수록 위험자산 운용 비중은 줄어들겠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드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같은 해에 은퇴를 예정하고 있는 근로자라고 해서 모두가 동일한 위험수용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순 없습니다.
남들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이도 있고, 반대로 수익이 좀 적더라도 변동성이 적은 투자대안을 선호하는 이도 있습니다.
따라서 TDF를 고를 때, 이 같은 투자성향을 반영해 목표 시점을 일부 조정할 수 있습니다.
빈티지는 예상 은퇴 시점을 뜻하지만, 이를 통해 TDF에 편입된 주식 비중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빈티지가 높다는 것은 은퇴까지 기간이 많이 남았다는 뜻이고, 그만큼 주식 비중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80년 출생자가 2035년에 은퇴할 계획인 경우를 예로 들면…
만약 남들보다 보수적인 투자성향을 가지고 있는 투자자라면 2035나 2030 빈티지를 선택하면 되고, 반대로 공격적 투자성향을 가지고 있는 투자자라면 2045나 2050을 타깃으로 하는 TDF를 고르면 됩니다.
은퇴 전까지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콘셉트로 TDF가 있다면 은퇴 후 연금 인출시기에는 TIF(Target Income Fund)가 있습니다.
은퇴 이후의 삶을 여유 있게 보내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현금흐름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수명이 늘어나면서 노후자금 인출 계획을 수립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수명과 노후자금의 수명을 일치시키는, 즉 죽기 전에 돈이 먼저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노후자금을 관리할 때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면서 노후자금을 어떻게 운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요.
필요한 연금 소득을 인출해 사용하면서도 잔여자산에 대한 시장 방어를 추구하고, 장수(長壽)리스크, 물가상승 등에 대비하고자 하는 상품이 바로 TIF입니다.
TDF는 은퇴 시점까지 자산 형성에 초점을 맞추지만, TIF는 그동안 모아둔 목돈을 현금흐름으로 변환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은퇴 전에는 TDF, 은퇴 이후에는 TIF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TIF는 소중한 은퇴자금을 최대한 지키기 위해 안정적인 변동성 관리를 최우선시하면서, 원금의 3~4%를 매년 이자와 배당 수익으로 인출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해 내며 자산시장 하락기에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는 자산들, 즉 배당주, 채권, 리츠, 인프라 펀드 등의 인컴자산에 분산 투자합니다.
TDF가 은퇴 시기에 초점을 맞춘 펀드라면, TRF(Target Risk Fund)는 위험 수준을 타겟팅하는 펀드입니다.
TDF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산구성이 변화된다면, TRF는 펀드 설정 초기에 투자자의 위험 성향에 맞게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의 비중을 정하고 그대로 유지하는 자산배분형 펀드입니다.
예를 들어TRF 7030이면 주식과 채권이 7:3으로 고정되었다는 의미이고, TRF 3070이면 주식과 채권이 3:7로 유지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보통 주식은 글로벌 선진국에 투자하며, 채권은 국내 채권에 투자합니다.
TRF는 포트폴리오 자산들의 수익률 상황에 따라 해당 투자 비중이 변화할 경우, 늘어난 비중의 자산은 팔고 줄어든 비중의 자산은 매수해서 원래 지정한 투자 비중을 맞추는 리밸런싱 작업을 진행하는데요.
쉽게 말해, 주식이 많이 올랐을 때는 주식을 팔아 채권을 사고 채권이 많이 올랐을 때는 채권을 팔아 주식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리밸런싱 작업을 통해, 기초자산의 가격이 변동되더라도 자산의 비중을 일정하게 조정하여 시장의 변동성에 대비하면서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TRF는 투자자가 감당할 수 있는 위험(리스크)과 수익을 목표로 설계된 펀드이며, 투자자는 자신이 원하는 위험 수준을 선택하기만 하면 됩니다.
투자자가 직접 자산배분을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위험자산과 안전자산 관련 금융상품을 투자자 본인이 따로 매수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자산배분을 스스로 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게다가 적절한 대상 선택과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자산 가격 변동에 따라 매번 비중을 조정하는 것은 바쁜 직장인에게 큰 부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TRF는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리스크와 수익을 유연하게 관리할 수 있으므로, 투자 초보자나 퇴직연금을 적극적으로 운용하기 어려운 투자자들에게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디폴트 옵션 제도 시행 이후로, 은퇴 전용 3총사라고 불리며 관심을 받고 있는 TDF, TIF, TRF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이렇게 장기적인 투자 상품을 선택하실 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사실 상품을 고르실 때 제일 먼저 보는 것이 수익률일 것이고, 당연히 수익률이 좋은 운용사의 상품을 선택하실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품들은 연금가입자를 위한 금융상품입니다.
연금가입자만 가입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라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가입자가 적립금을 운용하는 데 최적화된 금융상품이라는 의미입니다.
연금과 같은 장기 투자 상품은 노후자금을 축적하고 인출하는 데까지 상당히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산을 운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짧은 기간 동안의 성과로 자주 상품을 갈아타거나 하지 마시고 장기적인 수익률이나 중간중간 나오는 회사별 운용성과 보고서를 살펴보시면서 긴 안목으로 보며 선택, 운용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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