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매의 집 후암동 단독주택

용산 후암동 주택 프로젝트는 흔치 않은 시각을 요하는 프로젝트다. 요즘의 세태와는 역행하는 가족 단위의 집, 분화되는 가족 구성원들의 미래를 대비하는 영속성의 집, 많은 시간 동안 축적된 도시 원형의 날것에서 버텨야 하는 새로운 건축물의 자가적 콘텍스트, 그리고 외부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내부에서 보이는 이미지들의 불합치성 등등의 수많은 이질적인 요소가 결합된 집이다.

진행 이화정 기자 | 글 자료 아크로마키 건축사사무소 | 사진 장미 작가

HOUSE NOTE
DATA

위치 서울 용산구
지역/지구 제2종일반주거지역, 고도지구
건축구조 철근콘크리트조
대지면적 261.50㎡(79.10평)
건축면적 136.38㎡(41.25평)
연면적 371.12㎡(112.26평)
지하 101.77㎡(30.79평)
1층 117.69㎡(35.60평)
2층 75.83㎡(22.94평)
3층 75.83㎡(22.94평)
건폐율 52.15%
용적률 103%
설계기간 2021년 1월~10월
시공기간 2021년 10월~2022년 10월
설계 아크로마키 건축사사무소
02-6012-8015 www.archromaky.com
시공 리움건설㈜ 031-456-0979

MATERIAL
외부마감 지붕-쇄석마감,
페 데스탈 20T 데크타일(보현석재)
외벽-STO 외단열시스템
바닥-페데스탈 20T 데크타일(보현석재)
내부마감 천장-벤자민무어 에그쉘 수성페인트
내벽-벤자민무어 에그쉘 수성페인트,
흥 신스톤 6T 박판세라믹타일
바닥-12T 이태리 테라조타일,
안 이 원목마루
단열재 지붕-THK220 압출법보온판 가급1호
외단열-THK135 비드법 2종1호(준불연)
창호 LG하우시스 알루미늄창호,
로이3중 투명유리
가구 SUN&MOON 맞춤제작
조명 현우조명
스위치 융코리아
위생기구 아메리칸 스탠다드
난방기구 경동나비엔

해방촌 언덕을 오르면 내려다보이는 새하얀 건물. 미술관일까? 집일까?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화실. 도로변에 대응하는 거칠고 어두운 질감은 건물 내부에서 부드럽게 반전된다.

세 자매와 부모님의 기본적인 가족 구성원이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독립된 공간의 배려, 그리고 그 공간 사이사이의 연결성에 초점을 맞추며 기본적인 건축적 틀을 지켜 나가는 것이 주요한 과제였다. 또한 세대 간의 전이가 이루어진 이후의 미래적인 관점에서 이 공간이 변화될 수 있는 수많은 양태에 대한 고찰이 필요했다.

그리고 후술할 다양한 도시적·건축적 개념들의 정리를 통해 기존의 고착된 주거 개념과 앞으로 제안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실험적 주거 개념의 아이디어들이 결합하는 과정들을 현실화시키며 작업을 진행했다.

열악한 대지 조건을 색다른 건축의 모티브로

남산의 산자락이 남으로 내려오면서 용산 미군기지에 다다르며 끝나는 형국에 자리한 해당 사이트는 남동서를 둘러싼 영락 보린원이라는 고아원이 자리잡고 있다. 도로가 확장되며 북쪽으로 면한 곳은 6m 도로가 확보됐고, 남서 방향으로는 4m 도로에 접하고 있다.

4개의 필지가 제 각각으로 쪼개져 있고 비정형으로 결합돼 있는 대지 상황은 남측에 있는 거대한 스케일의 보린원으로 인해 채광을 비롯한 환경이 열악한 편이었다. 특히 대지의 레벨 차이가 4m를 넘고, 보린원의 옹벽과 맞닿은 부분에 설치된 불법 전용 데크 및 합벽 등은 철거가 필요해 공사상 많은 제한 요인이 될 것으로 보였다.

대지의 한계를 어떻게 건축적으로 풀어 나가느냐 하는 것은 도시건축의 숙명과도 같다. 대지에 내재된 요인들이 독이 될 것인가 혹은 또 다른 건축의 모티브가 될 것인가의 문제는 확실히 건축가에게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 보여주는 일련의 해결책은 중간 정도 수준으로서, 타협을 봤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대지와 그 위에 들어서는 상상 속의 주택은 그 간극이 상당하다. 이 간극은 계속 부딪치며 집에서 삶을 영위하는 그들만을 위한 다름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색다른 주거의 형식을 제공했다.

ㄱ자로 구성된 주출입구와 현관의 관계는 동네 골목길까지 연장된다.
기존의 석축과 사선으로 마주하는 유리 박스의 1층 식당. 좁은 마당이지만 식당 너머로 시선이 확장돼 개방감을 준다.
식당 한 편의 노출기둥과 유리 너머의 석축, 조경 등이 어우러져 가족들만의 색다른 식사 공간을 제공한다.
1층 거실에서 바라본 주방과 식당. 바닥재를 구분해 공간의 위계를 달리했다.
화실 전면의 유리블록은 프라이빗함과 동시에 시간에 따라 다채로워지는 빛으로 화실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la maison, je sais jamais” - 그 집, 나는 몰라요

과연 건축주는 건축가를 위한 임상실험의 적극적 참여자가 될 수 있을까? 하나의 공간을 재현하기 위해 수많은 건축가들은 도전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적인 관습과 그 관습들에 익숙한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익숙한 도시의 맥락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후암동 주택은 이러한 관습적인 맥락을 어느 정도 느슨하게 하고, 기꺼이 임상실험에 참여한 건축주에게 새로
운 공간을 제안하며, 동시에 도시경관에 독특함이라는 한 점을 찍어내고자 했다.

40년 전의 기존 콘크리트조 건축물을 해체하고 그 땅이 갖는 ‘지저분한 필지’라는 특성과 레벨 차를 이용해 지하층과 1층을 계획했다. 도로에 접한, 곡선의 1층까지 외벽 면은 기존 건축물의 형태를 발견할 수 있는 흔적이다.

특히 지하와 1층의 아틀리에를 지나 정원으로 들어서면 대지의 형상과 대비되는 공간 구성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2층부터 시작하는 대칭의 평면은 저층부의 그것과는 동 떨어진, 새로 구축된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층간 위계는 세 자매의 공간으로 구분이 되며, 중앙의 계단실에서 분파된 대칭의 공간은 한 개인을 위한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구분이다.

현관과 계단실은 집 전체의 중심점이자 전이 공간 역할을 하며, 사각의 천창을 통해 집 안쪽 깊이 빛이 떨어진다.
지하부터 옥상까지 모든 층을 아우르는 계단실은 집의 수직적 갤러리이자 소통 공간이다.
삼각형의 돌출된 창과 윈도우시트로 아늑하고 따스한 느낌을 준 서재
계단실을 중심으로 방과 거실이 나뉘는 2층과 3층. 집의 평면을 닮은 가구 손잡이를 제작해 포인트를 주었다.
해방촌과 남산의 계절·풍경을 창을 통해 끌어들인 3층 침실
세면대를 중심으로 샤워실과 양변기를 분리하여 쾌적하게 구성했다. 마름모 거울과 골드 수전으로 더욱 특별해진 화장실

‘단독주택이 갖는 주거 공간의 특질은 아파트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한 이 공간 실험에 건축주는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나아가 집이라고 하는 구조물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공간인지 정의 내리지 못한 채 입주의 날을 기다리는 것을 보는 것 또한 우리의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였다. 게다가 이 집을 지나치는 모든 이들이 집인지 아닌지를 헷갈려 하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기대 이상의 목표를 달성했다. 그리고 우리는 세 자매의 집이라고 속삭이고 다녔다.

거실과 방들을 분리하면서도 연결해 주는 테라스는 가족들의 또 다른 통합 공간이다.
층을 오르고 내리며 창밖으로 시선의 환기가 이루어지도록 설계한 계단실
남산이 올려다보이는 좌측 옥상과 여의도가 내려다보이는 우측 옥상은 개별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