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해부] JYP, 美 진출 실패 후 ‘지배구조 우등생’ 변신
견고한 멀티 레이블… 아티스트 활동량 ‘쑥’
팬덤 플랫폼·메타버스 등 신사업 진출 추진
미국진출 실패 후 대대적인 시스템 개편에 나서면서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구축한 JYP엔터테인먼트(JYP Ent.)가 최근 불거진 SM(에스엠) 경영권 분쟁 속에서 ‘지배구조 우등생’으로 새삼 관심을 받고 있다. 작년에는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하는 등 경영실적도 개선되면서 신사업 진출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JYP는 작년에 매출액 3458억원, 영업이익 96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대비 78.4%, 66.9% 증가한 수치로 역대 최고치다.
실적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외국인의 관심도 커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달 17일부터 이달 17일까지 JYP 주식 949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인수전 이슈가 불거지면서 관심이 집중됐던 SM(1112억원) 다음으로 높은 금액이다. 같은 기간 하이브와 YG(와이지엔터테인먼트)는 각각 592억원, 86억원을 기록했다.
◇ SM보다 5년 빨리 구축한 ‘멀티 레이블’ 체제
JYP가 실적개선에 성공한 것은 경쟁사와 비교해 개선된 지배구조가 한몫했다. JYP는 최근 SM이 제안한 ‘SM 3.0′ 전략의 핵심인 멀티 레이블 체제를 2018년에 이미 구축했다. 당시 JYP는 ‘JYP 2.0 비전’을 발표했고, 멀티 레이블 체제의 포문을 열었던 걸그룹 트와이스가 성공을 거두면서 이 시스템은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
과거 JYP는 마케팅, 홍보, 아티스트 앤 레퍼토리(A&R·음반 기획 총괄) 등 각 부서가 모든 아티스트의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나 2011년 소속 아티스트의 미국 진출을 추진했던 JYP의 도전이 사실상 실패하면서 경영 방향을 재편할 필요성이 커졌다. 해외 사업에 앞장섰던 박진영 대표 프로듀서는 2018년 7월 “회사 규모가 커지다보니 아티스트나 회사의 성장 속도에 비해 콘텐츠를 제작하는 프로세스가 신속하지 못했다”면서 일원화된 앨범 제작 체계의 한계를 인정했다.
현재 JYP는 아티스트별로 레이블을 만들고 그 안에 업무 담당자를 두고 있다. JYP가 작년 8월 엔터업계 최초로 발간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보고서에 따르면 JYP는 5개의 독립적인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다. 트와이스와 스트레이키즈 등 소속 아티스트들은 각 본부로 분리되고 해당 본부에서 마케팅과 기획, 매니징 등을 독립적으로 수행한다.
이 과정에 박 PD에 대한 음악적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JYP는 2020년 4월 박 PD의 개인회사였던 JYP퍼블리싱을 100% 인수하면서 완전 자회사로 편입했다. 2008년 설립된 JYP퍼블리싱은 작사가·작곡가·프로듀서 등을 키우는 회사다. 설립 당시 30여명의 뮤지션이 소속돼있었는데, 공식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50여명으로 늘어났다.
멀티 레이블 체계가 자리잡으면서 JYP 소속 아티스트들은 타사 대비 많은 활동량을 자랑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JYP는 공개된 계획에 맞춰 아티스트의 활동이 이뤄지는 편”이라면서 “1년 동안 컴백을 단 한번도 못하는 아티스트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는 경쟁사와 달리, JYP 소속 아티스트들은 1년에 두 번 이상 컴백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비음악 부문 자회사 비중 낮아… 영업이익률 타사 2배
음악 사업과 무관한 자회사가 적다는 점도 경쟁사와의 차이점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작년 9월 기준 JYP의 종속회사는 총 10곳이다. 일본과 홍콩, 중국, 미국 등 현지에 설립된 법인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음악과 무관한 곳은 콘텐츠 제작사인 JYP픽쳐스 정도다. 이 회사마저 사업정리 수순을 밟고 있어 음악 사업에 대한 집중도가 더 높아질 전망이다.
반면 SM엔터테인먼트는 총 29개의 자회사가 있는데, 키이스트와 SM C&C, 에스엠라이프디자인 등 비(非)음악분야 자회사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YG 또한 19곳의 종속회사 중 음악사업과 무관한 YG 스튜디오플렉스(드라마 제작사), 그린웍스(골프회사) 등이 포함돼있다. 하이브도 국내외에 48개 종속회사를 두고 있는데,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공급업과 교육서비스업 등이 있다.
경쟁사와 비교해 타법인에 대한 투자도 많지 않은 편이다. JYP가 출자한 타법인의 수는 총 16곳이다. 반면 YG는 법인 23곳, SM은 29곳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JYP는 경쟁사가 뛰어든 광고업과 드라마 제작업, 외식업 등에 대한 노출을 최소화하면서 비용 부담을 줄여 재무구조가 안정적인 회사로 거듭났다. 이런 노력 덕분에 JYP의 지난해 영업이익률(매출에서 영업이익이 차지하는 비율)은 27.9%로 YG(11.9%)와 SM(11%)의 두 배 수준이다.
◇ 팬덤 플랫폼·메타버스 등 진출 모색
탄탄한 지배구조를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해왔던 JYP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신사업 진출에 나섰다.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높일 과감한 투자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극복하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JYP는 2020년 11월 네이버(NAVER)의 메타버스 자회사 ‘네이버제트’에 약 50억원을 투자하면서 신사업 투자를 본격화했다. 2021년 6월에는 디어유에 214억원을 투자했고 5개월 뒤 초고화질 VFX 콘텐츠 제작기업 포바이포에 약 50억원을 투자했다. 메타버스와 팬덤플랫폼, 미디어 등 본업과 시너지를 이룰 수 있는 사업을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하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벤처캐비탈(VC) 자회사까지 설립하면서 신사업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JYP엔터는 ‘JYP파트너스’ 설립등기를 마쳤다. 초대 대표이사로는 변상봉 JYP엔터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 등이 이름 올렸다. 지난 2021년 K팝 기반 대체불가토큰(NFT) 플랫폼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두나무와 합작을 모색했지만, 사업이 무산되자 직접 VC를 설립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혜인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JYP는)수평적 구조의 레이블 시스템으로 각 본부가 마케팅· 기획·매니징을 독립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면서 “주요 아티스트의 팬덤 성장 및 영업환경 개선과 함께 우수한 이익 창출력은 지속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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