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고갈론이 싹 사라진 이유

우리나라는 UN이 정한 물 부족 국가라서 물을 아껴 써야 한다는 이야기. 아마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을 거다. UN과 관련 없는 민간단체의 조사에 낚여 공익광고까지 만들며 물을 아껴 쓰자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 당시 또 아껴 써야 했던 게 있다면 바로 석유 자원이었다.

이제 지구에 매장된 양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적게는 10년, 보통 20년 안에 고갈되고 말 것이라는 이야기다. 유튜브 댓글로 “20년 뒤 고갈된다던 석유는 왜 아직도 고갈되지 않는지 알아봐 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해 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석유가 고갈될 일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거의 없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라고 한다.

[김태헌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팀 선임연구위원]
"석유가 고갈될 위험은, 지금 고갈될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수요 자체가 줄고 우리가 전세계적으로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대체로 가고 그게 실제로 달성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석유 수요는 앞으로 많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내지 기술 변화가 생기고 있고 그런 것들을 고려하면 고갈의 우려 이런 부분은 문제가/되지 않습니다.”

석유고갈론을 주장했던 연구기관과 단체의 계산은 채굴할 수 있는 매장량인 가채매장량을 연간 석유 소비량으로 나누는 단순한 방법이다. 이렇게 산출한 값이 보통 10~20 정도라서 10년 뒤, 20년 뒤엔 석유가 다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섣불리 말해버리는 거다. 그러나 석유 소비량, 가채매장량이 매년 바뀌고 특히 가채매장량 자체가 매년 늘어왔기 때문에 이런 주장들은 이제 신빙성을 잃게 됐다.

여기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가장 큰 공이 있는데, 탐지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유전을 많이 찾게 되었고, 시추 기술의 발달로 과거에는 채굴이 불가능하거나 할 수 있어도 경제성이 없던 유전에서도 석유를 시추할 수 있게 되었다. 일례로, 해저에 있는 유전이나, 모래가 섞여서 쓸 수 없던 오일샌드, 미국에 막대하게 매장되어있는 셰일 가스 등이 기술의 발전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김태헌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팀 선임연구위원
"
그러니까 심해 유전 같은 경우도 과거 같으면 코스트가 높아서 생산하지 못했던 그런 유전들도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코스트가 떨어짐에 따라서 생산을 할 수 있게 되니까...”

이 중 특히 셰일가스는 석유고갈론을 잠재웠다고도 하는데, 셰일가스 채굴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가 잘 아는 산유국인 중동 국가들을 전부 제치고 미국이 제1위 산유국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매장량의 변화뿐 아니라 소비량도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석유 소비량이 매년 증가는 하고 있지만, 과거보다 증가 폭이 완만해지고 있어서 생산과 소비의 균형이 이뤄지는 중이기도 하다. 대체재를 개발하고자 하는 노력도 한창인데, 석유제품 중 휘발유 경유 LPG 등 연료로 사용되는 소비량은 전기차와 수소차로 대체되고 있고, 섬유를 만드는 에틸렌, 플라스틱 등 석유제품들은 미미하지만, 바이오 기술이나 친환경 소재로 대체재를 찾아가고 있다.

다만, 석유가 고갈될 걱정이 없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석유를 대체할만한 기술은 없기에 석유 소비를 줄이고 아껴서 이용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우려도 있다.

최지웅 한국석유공사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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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인식하고 좀 다르게 올해 소비량이 역대 최고치입니다. 역사상 최고치. 많은 분들이 석유 소비량이 줄어들고 있는 거 아니냐생각을 하시는데 아직도 소비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거거든요.
석유를 대체할만한 에너지원이 아직 딱히 있어 보이지 않거든요. 항공기(연료), 선박(연료)도 그렇고 특히 석유 화학 제품들 우리가 입고있는 옷, 신발, 가전제품 그리고 아스팔트 이런 거 다 석유거든요. 일반인들의 인식이 석유화학제품으로서 석유 연료는 그렇게 깊게 생각을 안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기술의 진보로 예전처럼 석유고갈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사라지게 됐지만 이제는 산업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 하지만 역시 생각해봐야할 건 석유연료의 무분별한 사용 그로인한 오염으로 인류 자체가 언제 고갈될지 모른다는 또다른 공포가 석유고갈론의 공포를 대체한 것이 아닐까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