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가 정말 SUV 맞나요?" 기아 EV9을 1년 넘게 운용한 소비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공통된 의문이다. 겉모습은 분명 요즘 인기인 각진 대형 SUV지만, 실제 사용해 보면 미니밴에 가깝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자동차 전문매체 카앤드라이버는 최근 EV9을 48,000km 장기 테스트한 후 흥미로운 결론을 내렸다. "슬라이딩 도어만 없을 뿐 미니밴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과연 EV9의 진짜 정체성은 무엇일까.

EV9의 체급부터 살펴보자. 전장 5,010mm, 전폭 1,980mm, 휠베이스 3,100mm로 웬만한 대형 세단보다 크다. 가격대는 6,412만 원에서 7,917만 원까지 형성돼 있으며, 배터리 용량에 따라 76.1kWh부터 99.8kWh까지 선택할 수 있다. 1회 충전으로 최대 501km까지 주행 가능하고, 최고출력 283kW(379마력)의 동력성능을 자랑한다.

하지만 숫자로는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실제 사용성이다. EV9을 타보면 가장 먼저 놀라게 되는 것이 내부 공간이다. 카앤드라이버가 핑퐁볼로 수납공간을 측정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EV9에는 1,581개의 핑퐁볼이 들어갔다. 이는 대표적인 미니밴인 혼다 오디세이(760개)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심지어 최신 전기 미니밴인 폭스바겐 ID.버즈(626개)와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이런 공간 효율성은 전기차 플랫폼의 특성에서 나온다. 엔진룸이 없고 바닥이 평평해 공간 활용도가 극대화된 것이다. 실제로 2미터 길이의 문짝도 들어갈 정도로 적재공간이 넓다.

승하차 편의성도 뛰어나다. 문이 매우 크게 열리고 바닥 높이가 낮아 노인이나 어린이도 쉽게 오를 수 있다. 카시트 설치 역시 수월하다. 다만 좁은 주차공간에서는 큰 문이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

EV9에서 주목할 옵션은 하이테크 패키지다. 디지털 사이드미러와 센터미러는 우천 시 진가를 발휘한다. 일반 거울과 달리 물방울이 맺히지 않아 시야가 항상 깨끗하다.


EV9의 가장 큰 약점은 3,100mm에 달하는 긴 휠베이스다. 실내 공간 확보에는 유리하지만 주차할 때는 상당한 애로사항이 된다. 운전자가 생각한 각도와 실제 차량의 움직임에 차이가 나 한 번에 주차하기 어렵다. 특히 오래된 지하주차장에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 오너들 사이에서는 "생각한 각도와 달라 한 번에 안 된다. 오래된 지하주차장 들어갈 때 정말 조심해야 한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충전비용 측면에서는 확실한 메리트가 있다. 월 2,000km 주행 기준 충전비가 평균 7만 원 수준이다. 동급 내연기관차라면 월 연료비만 20만 원은 나올 것을 고려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전기차 특성상 에어컨이나 히터를 상시 가동할 수 있고, V2L 기능으로 220V 전원 사용도 가능하다. 다만 3열 시트에 열선시트가 없고, 좌석을 눕혀도 완전히 평평해지지 않아 차박에는 한계가 있다. 작은 프렁크도 아쉬운 부분이다.

EV9을 SUV로 봐야 할지 미니밴으로 봐야 할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용 차량으로서의 실용성이다. 미니밴의 기능을 원하지만 이미지 때문에 망설이는 소비자들에게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구매 전에는 반드시 시승을 권한다. 긴 차체로 인한 주차의 어려움이나 생각보다 큰 덩치 등은 직접 경험해 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차량 분류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EV9은 그런 변화를 상징하는 모델이다. 장르를 따지기보다는 얼마나 실용적인지가 더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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