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은행 원정 방문에 오픈런까지… 일요일도 문전성시 외국인 전용 점포

평택=김태호 기자 2024. 10. 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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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 평택외국인센터점
AI 기반 38개 외국어 통역 지원
일요일 영업에 전국서 외국인 몰려
지난 9월 29일 오전 하나은행 평택외국인센터점이 문을 열기 전 외국인 고객들이 줄을 선 모습. /김태호 기자

일요일인 지난 9월 29일 오전, 베트남 출신 외국인 근로자 응우옌 티흥반(40)씨는 은행 ‘오픈런(영업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대기하는 것)’에 나섰다. 충남 당진시에 사는 그는 이날 오전 9시부터 경기 평택시의 하나은행 영업점에 찾아와 은행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이 영업점이 외국인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다 일요일에도 영업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 평택시로 달려온 것이다. 응우옌씨는 “먼저 이 은행에 방문했던 지인들이 ‘방문객이 매우 많아 늦게 도착하면 은행 문을 닫을 때까지 일을 못 본다’고 말해줘 은행 문이 열리기 1시간 전에 미리 왔다”고 말했다.

최근 주말 아침마다 은행 외국인 특화점포 앞에 외국인들이 모이는 진풍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국내 은행들이 외국인 특화점포를 세우고 주말 영업을 시작하면서 은행 업무를 보려는 외국인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다국어 서비스를 갖추고 주말에도 문을 여는 은행이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자 시·도를 넘어 외국인 특화점포를 찾는 ‘원정 방문’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월 19일 새로 문을 연 하나은행 평택외국인센터점도 일요일 영업 때마다 외국인들의 오픈런이 이어지는 곳이다. 지난 9월 29일 오전 9시 30분, 평택외국인센터점 앞에는 개점 30분을 앞두고 38명의 외국인들이 줄을 서며 영업점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평택외국인센터점을 찾은 외국인들은 평택시뿐만 아니라 경기 화성시, 충남 당진시, 세종시 등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 외국인들은 “평일에 일을 빼고 은행에 방문하기 어려운데 일요일에 문을 열면서도 모국어로 은행 업무를 보는 곳이 있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왔다”고 입을 모았다.

전국에서 사람이 몰리다 보니 일주일을 기다려 다시 영업점을 찾은 고객도 있었다. 네팔 국적의 아차리야 차크라파니(23)씨는 “지난주 일요일 점심시간쯤 왔는데 대기인원이 70여명이나 돼 그냥 돌아갔다”며 “오늘은 아예 은행 문이 열리기 전에 일찍 도착했는데도 대기번호가 16번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9월 29일 경기 평택시 하나은행 평택외국인센터점 창구에서 한 태국인 고객이 은행 업무를 보고 있다. 이 영업점엔 한국어와 외국어를 실시간으로 자동 번역해 띄우는 디스플레이가 마련돼 있다. /김태호 기자

외국인 특화점포의 가장 큰 특징은 다국어 서비스를 제공해 편의성을 높였다는 점이다. 하나은행은 처음으로 평택외국인센터에 외국어 자동 통번역 시스템을 도입했다. 지원하는 언어 수는 38개다. 은행 창구에서 고객이 모국어로 말하면 은행원의 업무용 컴퓨터에 한국어로 실시간 번역문이 표출된다. 반대로 은행원이 한국어로 답하면 고객이 보는 태블릿 PC에 외국어로 번역문이 뜬다.

이 영업점의 한 창구엔 은행원과 외국인 고객의 대화를 번역해 보여주는 반투명 디스플레이가 설치돼 있다. 한 태국인 고객이 이 창구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은행원이 “하나원큐 애플리케이션(앱)을 먼저 설치해달라”고 말을 마치자마자 디스플레이에 태국어로 번역된 문장이 생성됐다.

어려운 금융 용어가 한글로 빼곡히 적힌 서류는 외국인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더하는 요소다. 평택외국인센터점은 이러한 불편함을 덜기 위해 외국인들이 스스로 서류를 작성하게 돕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영업점엔 14대의 태블릿 PC가 비치돼 있는데 서류에 어떠한 정보를 기재해야 하는지 안내한다. 이용객은 영어·러시아어·베트남어 등 6개 언어 중 하나를 골라 태블릿 PC에서 서류 작성법을 배울 수 있다. 이날 평택외국인센터점을 찾은 외국인 고객들은 창구 이용 순번을 기다리는 동안 태블릿 PC 화면과 서류를 번갈아 비교하며 스스로 서류에 정보를 써넣었다.

지난 9월 29일 경기 평택시 하나은행 평택외국인센터점 내 비치된 태블릿 PC에 미얀마어로 은행 업무 서류 작성법이 안내돼 있다. 이 영업점에 마련된 태블릿 PC는 6개 외국어로 은행 업무 서류 작성법을 안내한다. /김태호 기자

이날 평택외국인센터점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도 외국인 특화점포가 생기길 바란다고 전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평일에 은행을 이용하기 어려운 데다 외국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점포 수도 적어 일요일이면 고객이 몰리고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탓이다. 국내 전체 외국인 특화점포는 32개에 불과하다.

은행권 역시 이러한 수요를 인지하고 외국인 고객 모시기 경쟁에 돌입했다. KB국민은행은 올해 1월 인천국제공항 지점을 열고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상품을 출시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9월 27일 4개 영업점에 외국인 고객 전담 창구를 신설했다. 신한은행은 비대면으로 외국인 고객이 입출금 계좌와 체크카드를 신규 발급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은행들이 외국인 고객 공략에 힘을 싣는 이유는 국내 체류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덩달아 외국인 금융 시장도 커졌기 때문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는 251만명이다. 전년 말(225만명)과 비교하면 10% 넘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신규 외국인 고객 수는 31만명에서 38만명으로 늘어났다.

김상봉 하나은행 외국인근로자마케팅팀장은 “한국 사회의 외국인 비중이 커지고 있는 만큼 외국인들의 금융 거래 편의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외국인 특화점포를 운영하면서 가장 신경 쓸 부분은 막힘없는 언어소통이다”라며 “인공지능(AI) 기반 자동 통번역 시스템 도입 등으로 앞으로 5년 이내에 언어 장벽을 완전히 없앤 금융 서비스를 선보이고자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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