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저택' 228억 현금 매입 강나연 태화홀딩스 대표…F1 인천 유치 '숨은 실세'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자택을 전액 현금으로 매입한 강나연 태화홀딩스 대표. 출처=제미나이 생성

베일에 싸여 있던 강나연 태화홀딩스 대표가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자택을 전액 현금으로 매입한 사실이 알려지며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러시아산 원자재 거래와 남편 가문의 유럽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급성장한 태화홀딩스가 모터스포츠 경험 전무에도 불구하고 인천 포뮬러원(F1) 그랑프리 유치전의 전면에 나서면서 강 대표의 배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직원 7명이 매출 3376억…'초효율' 태화홀딩스의 정체

17일 업계에 따르면 강나연 태화홀딩스 대표는 올해 6월 1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위치한 고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 회장의 단독주택을 228억원에 사들였다. 그는 이 과정에서 대출 없이 전액 현금으로 대금을 치렀으며, 2014년생 자녀와 공동 명의로 주택을 매입했다.

1984년생인 강 대표는 영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2013년 10월 태화홀딩스를 창업했다. 태화홀딩스는 에너지·철강 원자재 트레이딩 전문 기업이다. 러시아, 인도네시아, 호주 등에서 석탄, 펫코크, 합금철 같은 원자재를 들여와 아시아 시장에 공급하는 것이 주력 사업이다. 현대제철, 포스코, 한국서부발전까지 주요 고객사로 확보하며 사업적 신뢰도를 입증했다. 특히 지난해 8월에는 한국서부발전과 19만톤 규모의 유연탄 장기구매계약을 체결하며 해외 공급사 위주였던 발전 연료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데 일조했다.

태화홀딩스 홈페이지. 출처=태화홀딩스 홈페이지 갈무리

태화홀딩스의 성장세는 폭발적이다. 매출액은 2022년 2733억원, 2023년 3376억원, 2024년 4055억원으로 매년 늘었다. 놀라운 점은 이런 매출이 극소수 인력으로 창출된다는 사실이다. 2023년 기준 태화홀딩스의 직원 수는 단 7명에 불과했다. 1인당 약 482억원의 매출을 올린 셈이다. 이는 태화홀딩스가 물리적 자산이 아닌 소수의 핵심 인력이 가진 '관계 자본'과 '중개 능력'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전문 트레이딩 하우스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태화홀딩스의 초고속 성장 배경에는 강 대표의 남편인 니콜라 셰노(Nicolas Chenot) 대표와 그의 가문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강 대표의 시아버지인 고(故) 앙리 셰노(Henri Chenot)는 약 50년간 세계 최상류층을 상대로 럭셔리 웰니스 사업을 펼친 '셰노 그룹'의 창립자다. 셰노 그룹은 스위스,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는 물론 러시아 모스크바에도 최고급 스파를 운영하며 전 세계 부호들과 깊은 신뢰 관계를 구축했다. 이곳의 고객 명단에는 러시아 신흥 재벌(올리가르히)을 비롯한 글로벌 엘리트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故) 앙리 셰노(사진)가 설립한 세계적인 럭셔리 웰니스 사업체 '셰노 그룹'. 출처=세노 그룹 홈페이지 갈무리

전문가들은 이런 배경이 태화홀딩스가 진입 장벽이 높은 러시아 원자재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으로 분석했다. 영국 유학 시절 습득한 유창한 러시아어 능력과 남편 가문이 수십 년간 쌓아온 러시아 내 인적 네트워크가 결합하면서, 다른 기업들이 뚫기 어려운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 태화홀딩스는 러시아산 석탄의 장기 공급 계약을 통해 국내 핵심 공급사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인천 F1 유치전, '제2의 영암' 되나…자금력 논란까지

지난 4월 강나연(왼쪽 첫 번째) 태화홀딩스 대표가 유정복(가운데) 인천시장, 니콜라 셰노(오른쪽 첫 번째) 태화S&C 대표가 일본 스즈카 그라프리 현장을 찾아 스테파노 도미니칼리(왼쪽 두 번째) CEO 등 F1 책임자 등을 만나 F1 인천 그랑프리 개최 의향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인천시

태화홀딩스에 대한 논란은 주력 사업과 전혀 무관한 F1 유치전에 뛰어들면서부터 불거졌다. 강 대표는 시아버지의 소개로 F1의 거물 플라비오 브리아토레를 알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고 밝혔지만, 이것만으로 사업 추진의 타당성이 확보되지는 않는다.

현재 인천시의 F1 유치는 유정복 시장이 사전 타당성 조사 등 필수 절차를 생략한 채 '선언'부터 하고 나섰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에 대해 인천시는 "사업 초기 단계라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며 "F1 서킷 디자인이 가능한 국제 인증 업체가 드물어 용역 발주가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타당성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정부에 국제행사 개최 승인을 요청하는 것은 사업을 기정사실화하고 타당성 조사를 요식행위로 만들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과거 실패의 학습효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0년 전남 영암 F1은 운영사 카보(KAVO)의 경영난으로 1902억원의 누적 적자를 남긴 채 4년 만에 중단됐고, 2022년 잠실 포뮬러 E 대회는 주관사 포뮬러 E 코리아(JSM 홀딩스 주도)의 운영 미숙과 터무니없는 티켓 가격 정책으로 파행을 겪었다. 두 사례 모두 경험 없는 주관사와 막대한 개최권료, 부풀려진 경제효과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었다.

2022년 서울 잠실에서 열린 ‘포뮬러 E’ 대회 모습. 출처=포뮬러E 조직위원회

여기에 태화홀딩스의 자금력 논란도 겹쳤다. 태화홀딩스는 "100% 민간 자본으로 치르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 재원 조달 방안은 없다. 사업이 난관에 빠질 경우 결국 시민 혈세가 투입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가운데 강나연 대표가 최근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자택을 228억원에 전액 현금으로 매입한 사실이 알려지며 파장이 확산됐다. 재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부동산 거래가 아니라, F1 유치를 앞두고 현금 동원 능력을 과시해 시장의 의심을 잠재우려는 전략적 행보로 해석한다.

논란의 정점에는 영암 실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독일 설계업체 '틸케(Tilke)'의 재등장이 있다. 인천시는 최근 F1 타당성 조사 용역을 틸케가 포함된 컨소시엄과 수의계약으로 체결했다. 틸케는 과거 8700억원대 사업 실패의 핵심 관계자로, 그런 업체에 다시 사업의 타당성을 묻는 것 자체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52개 시민단체가 모인 'F1 개최 반대 인천대책위원회'는 "실패를 설계한 장본인에게 미래를 묻는 어처구니없는 행정"이라며 "결국 F1 그룹의 배만 불리고 영암처럼 수천억원의 빚더미를 시민에게 떠넘기는 제2의 영암 사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류종은 기자 rje312@3pro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