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 도매 상인과 소매 상인
연결 플랫폼 개발기

직장인들은 보통 오전 9시에 업무를 시작해 오후 6시에 일과를 마감한다. 도매시장은 모두가 잠을 청하는 심야 시간대에 활기를 띤다. 남대문이나 동대문처럼 전국적으로 유명한 도매시장 일대는 새벽에 버스로 점령당한다. 물건을 사입하려는 소매상이 전국에서 몰리기 때문이다.
양승우 대표(45)는 장사하는 사람도 밤에 잠을 편하게 잘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남대문 도매 사업자와 국내외 소매 사업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남도마켓을 개발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나 웹사이트를 통해 남대문의 도매상품을 둘러보고 결제까지 할 수 있다. 양승우 대표를 만나 개발 스토리를 들었다.
도소매시장 연결 플랫폼 남도마켓을 개발한 양승우 대표. /더비비드

남도마켓은 남대문 도매 상인과 소매 상인 거래를 연결하는 기업간거래(B2B) 서비스다. 액세서리, 아동복, 패션, 꽃, 공예품, 전자기기, 지역특산품 등 남대문에서 거래되는 대부분의 카테고리를 아우른다.
소매 상인은 비대면으로 신상품을 실시간 확인하고 사입할 수 있어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남대문 내 모든 매장의 모든 제품을 한 번에 묶어서 배송해 준다. 남대문 시장 상인회의 공식 파트너사다.

양승우 대표는 전자 상거래 분야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후 G마켓의 카테고리 매니저로 입사했습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상품기획자와 유사한 직무인데요. 명품 브랜드 구매대행 카테고리를 총괄했어요. 담당 카테고리의 매출이 잘 나와 ‘마이다스의 손’이라는 별명도 붙었죠.”
잘나가던 중 우연히 근로 의욕을 확 떨어뜨리는 일이 발생했다. “제 카테고리에서 물건을 판매하던 셀러 분을 뵌 적이 있어요. 아버지뻘의 수더분한 어르신이셨는데요. 단 몇 달간 의류를 팔아 순이익 10억원을 벌어들였대요. 당시 적지 않은 월급을 받으며 직장 생활을 했지만 10억원이라는 액수에 충격을 받았어요. ‘전자상거래와 온라인 쇼핑이라면 나도 빠삭한데.’ 창업을 해야겠다 결심했죠.”
퇴사 후 방송인 백보람, 걸그룹 LPG의 쇼핑몰을 1년씩 운영했다. 기대했던 만큼의 실적이 나오지 않았다. 생계유지를 위해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가야 했다. “2011년 메트라이프생명에 입사했습니다. 기업재무관리, 개인자산관리, 세무컨설팅, 보험설계 등 다방면에서 전문지식을 쌓으며 지점장 자리까지 올랐죠.”
지점장 직함을 달자 연봉이 3억원까지 올랐다. “모교인 연세대로부터 연락을 받아 2년간 ‘성공한 선배와의 대화’를 주제로 한 특강도 했어요. 메트라이프에서 근무하는 동안 지인들과 <21세기 인터넷 마케팅>, <한국의 전통시장론>, <슈퍼마켓 경영론>, <한국의 사라진 대기업> 등의 책도 공동 집필했고요. 그렇게 인지도를 쌓으면서 간간이 온라인 쇼핑몰 사업자들을 컨설팅했습니다.”
◇ 하루 상인 100명 만나며 신뢰 확보

샐러리맨으로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지만 늘 창업이 그리웠다. 온라인 쇼핑몰 컨설팅을 하다가 유의미한 변화를 발견했다. “15년 전만 해도 온라인 쇼핑몰의 주류는 여성복이었어요. 하지만 점점 남성복, 액세서리, 반려동물 용품, 아동복,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 시장이 분화되더라고요. 여성복의 경우 주로 동대문에서 사입이 이뤄집니다. 도매상과 소매상을 연결하는 플랫폼도 잘 구축된 상태였죠. 반면 새로 부상하는 카테고리의 제품들은 대부분 남대문 시장에 밀집해 있는데 대표적인 도매 플랫폼이 없는 상태였어요.”
호기심을 느껴 남대문 시장에서 20년 가까이 액세서리 도매 일을 한 동생을 찾았다. “물어보니 도매 플랫폼을 준비하는 업체들로부터 여러 번 입점 제안을 받았대요. 하지만 남대문 시장 상인분들의 경계심을 완전히 푼 업체가 없었어요. 이미 운영 중인 플랫폼도 몇 군데 있었지만 높은 수수료나 사용료를 부과해서 상인들의 신뢰를 잃은 상태였죠. 시장 상인들과 사이가 좋은 동생이라는 인적 자원도 있겠다, 제가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요.”

2018년부터 남대문 도매상과 소매상을 연결하는 플랫폼 준비에 착수했다. 동생이 ‘상도(商道)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도매 일을 관두고 손을 보탰다. “시장 상인들과 유대관계를 쌓기 위해 말 그대로 시장에서 살았어요. 하루에 100명 이상의 상인을 만난 적도 있죠. 이런 서비스 필요 없다며 문전 박대하시는 분은 다섯 번 이상 찾아뵀어요.”
상인들과 가까이 지내며 그들의 수요를 파악했다. 그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것은 자동화된 플랫폼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고 싶다는 ‘진심’이었다. “시장 상인분들 대부분이 엄지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엄지족’입니다. 그만큼 연령대가 높아요. 플랫폼, 디지털화의 당위엔 동의하면서도 섣불리 도전하기가 꺼려지는 분들이죠. 그래서 도매 사장님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상품 사진 촬영, 등록 등을 저희가 해주기로 했어요. 경쟁사들이 자사의 수익구조 개선에 혈안일 때 상인분들과 함께 호흡한 덕에 신뢰라는 자산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사입 삼촌이 하는 일 대신해드려요

2020년 8월 남도마켓 법인을 설립하고, 같은 해 10월 도매상 입점을 시작했다. 2021년 1월부터 소매상을 대상으로 서비스 영역을 확대했다. “액세서리, 아동복, 애견용품, 꽃, 성인의류 잡화, 인테리어 소품, 한복, 이불 등 남대문을 대표하는 상품 카테고리를 모두 아우르는 플랫폼입니다. 거래처 찾기, 상품 기획, 판매, 카탈로그 전송, 세금계산서 발행 등 여느 도소매 연결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기능을 모두 갖췄습니다.”
남도마켓에 입점한 도매상은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IT기기 다루는데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서 상품 사진 촬영, 상품 등록 등을 저희가 대신해드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도마켓 유튜브,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의 채널에 입점 도매상 홍보 콘텐츠를 꾸준히 올리고 있습니다. 유튜브의 경우 해외 바이어를 겨냥해 4개 국어로 운영 중입니다. 남도마켓 자체 캐릭터를 만들어서 웹툰도 연재하고 있어요. 소구점을 친근한 콘텐츠로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전략이죠.”

셀러(소매상)의 경우 ‘선판매 후사입’도 가능하다. “nd pick이라는 상품 이미지 무료 사용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무료 제공된 사진으로 상세페이지를 만든 후 판매가 이뤄졌을 때 주문을 하면 되는 구조죠. 여기서 별도의 포장료를 지불하면 소비자에게 바로 배송도 해줘요. 사입을 위해 새벽에 시장을 방문할 필요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물류 저장 공간 확보, 재고 처리 등의 압박 없이 판매를 할 수 있는 거죠. 제로 리스크에 가까워서 온라인 셀러 분들이 무척 좋아합니다.
◇ 남도마켓 토대로 신규 서비스 순차적으로 론칭

남도마켓을 운영하며 수집한 데어터와 이용자 후기를 토대로 ‘남도로보’라는 인공지능(AI)을 개발했다. 남도로보를 토대로 신규 서비스를 론칭했다. “2023년 초 출시한 ND박스는 AI 기반의 물류 관리 시스템입니다. 예상 배송일이 빠를수록 매출이 증가한다는 점에서 착안한 서비스입니다. ND박스로 남대문에서 발생하는 픽업, 검수, 포장, 발송의 모든 과정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도소매 사업자는 실시간으로 수요를 예측하고, 최적화된 물류 동선을 파악해 물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2023년 말 출시한 ND엉클은 도소매 사업자 대상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다. “ND엉클은 클라우드 기반의 도소매 맞춤형 주문, 정산 자동화 툴입니다. 이 시장의 이해관계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해 남도마켓으로 유저를 유입하는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죠. 온라인 대량 주문과 정산서 발송, 사입삼촌 픽업 관리, 이미지 기반의 간편 주문 등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기능을 갖췄습니다.”
남대문 시장이라는 공간의 매력을 알릴 기술적인 매개도 마련했다. “2024년 10월, 남대문시장을 메타버스로 구현한 ND메타를 공개했습니다. 남대문 시장은 매일 약 1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다녀가는 글로벌 시장입니다. 그들이 자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남대문 시장과 접점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가상의 공간을 마련했어요. 매장별로 온라인 방문이 가능한데다 AI 맞춤형 상품 탐색 기술이 적용돼 재미있고 실감나게 상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AI가 적용된 기능들은 데이터가 누적될수록 고도화되면서, 매출 증대의 발판이 돼 줍니다.”
◇ 전 세계 소매상의 아마존 되는 게 목표

지금까지 7000곳의 도매상이 입점했다. 남도마켓을 통해 판매용 제품을 찾는 소매상(리테일러)는 9만5000곳이 넘는다. 이 중 5000곳은 해외 바이어다. 월 거래액은 500억원 규모다. 경쟁사와의 경쟁을 뚫고 남대문 시장 상인회의 공식 파트너로 선정됐다. 유저의 요청에 맞춰 동대문과 제주도까지 입점 범위를 넓혔다. 지난해 남도마켓을 통해 제주 특산물이 4억원치 수출됐다.
각종 기관으로부터 서비스의 필요성도 인정받았다. 창업 초기 신용보증기금 주관 네스트업 9기, 중소벤처기업부와 구글 플레이가 주관한 구글 창구 프로그램, 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 팁스(TIPS)에 연이어 선정됐다. 2023년에는 시장 상인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국내외 신규 시장을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아 중소벤처기업부가 개최한 ‘2023 대한민국 중소기업 규제혁신 대상’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지난 6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배치’에 최종 선정됐다.

“초창기때의 일이에요. 시장을 돌아다니다 76세 완구점 사장님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느라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봤어요. 장난감을 아스팔트에 두고 촬영하더라고요. 그분에게 저희 서비스를 소개한 뒤 제품을 가지고 가서 예쁘게 찍고, 상품 등록을 해드렸어요. 빠른 시간에 상품이 팔리니 뛸 듯이 기뻐하셨어요. 이루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꼈죠. 남대문 시장은 대한민국의 제조업과 패션업을 이끌었던 능력 있는 생산자들이 한데 모인 역사적인 공간입니다. 도매상분들은 우리 경제의 한 축을 이끈 대단한 분들이신데 가속화되는 온라인 사회에 적응을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도매 상인들을 다양한 셀러와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남도마켓은 남대문시장 1위 도소매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올해 목표는 월 거래액 1000억원 달성이다. “동대문시장 진출을 통해 여성 카테고리에서의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경쟁자가 많아서 조심스럽지만, 동대문시장 1등 플랫폼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해외 사업도 중요한 축입니다. 남대문의 액세서리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해외 바이어도 남도마켓을 잘 활용하고 있는데요. 전 세계 소매상의 아마존 같은 기업이 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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