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지·맥박 없을 땐 '가슴 압박 30회, 인공 호흡 2회' 반복하세요
언젠가 뭐라도 같이 해보자는 말이 드디어 실현됐다. 김창업(51) 삼성창원병원 내과 교수. 10여 년 전 나는 그를 의사가 아닌 영화를 찍는 촬영감독이자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으로 만났다. 지금도 그를 '촬영감독님'이라 부른다. 하지만, 의사로서는 그에게 미국 의사 면허가 있다는 것과 대학병원 의사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 2018년 삼성창원병원 복도에서 그를 칭찬하는 글이 게시된 걸 우연히 봤다.
"무엇보다 힘이 되었던 것은 내과 김창업 선생님의 환자 가족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환자의 병의 진행상황과 향후 치료계획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었습니다. 저의 아들도 내과 의사로서 길을 걷고 있습니다. 꼭 김창업 선생님 같은 좋은 의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칭찬의 글을 남겨봅니다."
의사로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올해 초 김 교수에게 독자에게 의료 정보를 쉽게 전달하는 글을 한번 써보자고 제안했다. 고민하던 그는 소설 형식으로 해보겠다고 했다. 철수라는 이름의 주인공을 내세운 의료 정보 소설은 이렇게 탄생했다.
소설에 들어간 삽화는 진해에 있는 영화사 소금 대표 이수지 영화감독이 맡았다. 이 감독은 김 교수와 그동안 <먼지>, <나이트워킹>, <여좌동 이중하> 등 장·단편영화와 여러 편의 공익광고를 함께 만들었다. 이수지 감독은 뮤지컬 작가로도 오래 활동했으며, 소설가로서 독특한 소재와 다양한 인물, 방대한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웹소설 <소리사냥꾼>(2021)을 썼다. 이 소설은 온라인으로 만날 수 있고, 전자책으로도 발간돼 있다. 김 교수도 이 소설 작업에 참여했다.
언론사로서도, 병원으로서도 전에 없던 시도다. 늘 새로운 시도는 두렵고 설렌다. 이 소설이 아무쪼록 독자에게 재미도 주고, 도움도 되길 바란다.
/이서후 기자
올해 40세인 철수 씨는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화가고 45세인 김 선생은 세별병원 내과 교수다. 철수 씨는 건강염려증이 의심될 만큼 건강 문제에 의심과 걱정이 많다. 그런 까닭인지 역사 속 유명 화기들의 질병과 치료에도 관심이 많아 <화가의 처방전>이란 제목으로 책을 쓰고 있다. 철수 씨는 김선생과의 첫 만남 이후 외래 환자로서 수시로 그를 찾아가 자신과 지인의 건강 문제와 관련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본다. 이 과정에서 김선생은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전문적인 의학 지식을 쉽고 생동감 있게 풀어낸다. 소설은 매회 한 질병과 관련한 자세한 설명으로 이뤄진다. 회차가 거듭할수록 <화가의 처방전>도 조금씩 집필이 진행된다.
◇세별병원 앞
하늘은 쨍한데 발걸음이 무겁다. 2주 전 세별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결과가 오늘 도착했는데 불안하게도 '재검통보'였기 때문이다. 어쩐지 최근 밥 먹은 뒤 왠지 속이 불편했고 술이라도 마신 다음 날엔 어김없이 속이 불편해 아침을 거르곤 했었다. 그래서 괜스레 건강검진 받는 동안도 불안하더니, 결국 재검이라는 결과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세별병원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검사 결과를 확인하니 대부분 이상이 없다고 되어있으나, 의심스러워서 해보았던 위내시경에서 아니나 다를까 이상소견이 나와 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화실에서 그림 그리다 말고 나온 철수 씨는 카페에 들러 글이라도 써볼까 노트북을 열지만 집중이 안 되어 결국 집으로 가는데, 길목에 필연적으로 지나야 하는 세별병원! 그저 스치면 되는데도 병원이 가까울수록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이윽고 세별병원 앞 횡단보도에 서버린 철수 씨는 초조히 신호를 기다린다. 횡단보도 맞은편에서 대기 중인 사람들 뒤로 세별병원이 보인다. 병원을 나오는 사람, 횡단보도 근처로 걸어오는 사람, 이미 횡단보도에 서 있는 사람, 모든 사람의 몸짓과 표정이 마치 철수 씨에게 어서 병원에 가보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70대 여성과 딸로 보이는 30대 여성이 막 병원을 나서고 있다.
"엄마. 그러니까 내가 약 좀 잘 챙겨 먹으라고 했잖아! 약을 먹다 말다 하니 병이 낫나?"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에서인지 딸이 어머니에게 쏘아붙이더니 회전문을 나섰다. 한 발짝 뒤에 오던 어머니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자 돌아보는데, 어머니는 회전문의 열린 틈을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한 바퀴를 더 돌아 다시 열릴 때를 기다리며 주춤거리고 있다. 딸은 유리문 안에 보이는 어머니의 뒤뚱거리는 몸짓을 보고 가슴이 아리다. 천천히 열리는 회전문 틈 속으로 딸은 오른쪽 어깨부터 밀어 넣어 어머니를 부축해 나왔다.
"괜찮나 엄마?" "개안타!"
어머니는 딸의 눈치를 보는지, 주름진 눈가를 더 늘어뜨리며 한숨 쉬듯 말했다.
"다 느그 아빠 때문이다. 옛날부터 니랑 내가 새벽부터 느그 아빠 찾아댕긴다고 얼마나 설쳐댔노."
어머니를 부축해 걷던 딸이 화를 낸다.
"와! 아빠 또 그라드나?" "똑같다. 또 술 처먹고 새벽부터 길가에 퍼질러 처박혀 뒹굴고 있더라. 그러니 내가 우째 정신을 챙기고 약을 챙겨 묵겠노?"
딸의 가슴속 응어리가 식도를 타고 후두까지 치밀어 올랐다가 왈칵 쏟아진다.
"그 인간! 진짜 안된다! 이제 처박혀있든지 말든지 포기해라. 이러다 엄마가 먼저 쓰러지겠다."
말없이 걷는 어머니를 바라보니 어깨는 평소보다 더 처지고 가뜩이나 작은 키가 더 작아 보인다.
"엄마! 여기 벤치에 잠시만 앉아 계세요. 저기 건너편 약국에서 약 타올게. 여기 딱 앉아서 기다리세요." "아이다. 그냥 같이 가자!" "쫌 엄마. 그냥 좀 앉아서 쉬고 계시라고."
◇쓰러진 여성
딸의 강한 권유에 어머니는 벤치에 앉는다. 갑자기 오후의 노곤함이 눈꺼풀 위로 순식간에 내려앉는다. 번쩍 정신이 들어 눈을 뜨니 점점 가까워지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어머니는 벌떡 일어선다. 잠시 여기가 어딘지 무슨 연유로 온 건지 하얗게 생각나지 않다가, 곧 서서히 상황이 떠오른다.
"아이구야. 얼마나 지났노? 약 타러 가서 올 때가 멀었나."
혼잣말하던 어머니는 딸이 간 약국으로 가려 횡단보도를 향한다. 그때 갑자기 가슴이 아프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다급히 오른손으로 명치 쪽을 부여잡아보지만 이내 털썩 주저앉는다. 건너편에 선 철수 씨 시선에도 쓰러지는 여성이 포착된다. 병원만 쳐다봐도 쓰러질 것처럼 두려운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던 중인데, 진짜로 쓰러진 사람을 보게 된 것이다. 철수 씨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쓰러진 환자 곁으로 20대로 보이는 청년과 50대로 보이는 여성이 놀라며 다가가고 있다.
"아이고, 우짜노! 아줌마 괜찮습니까?"
50대 여성은 환자의 팔과 어깨를 살짝 흔들어본다.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을 본 20대 남성은 다급히 고개를 숙여 환자 코에 자신의 귀를 갖다 대지만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드디어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뀐다. 철수 씨도 뛰고 있는 심장박동만큼 빠르게 그리로 달려간다.
"거기 모자 쓰신 분! 119에 전화 좀 해주세요!"
20대 청년이 모자 쓴 사람을 지목하자, 모자 쓴 사람이 폰을 꺼내 전화를 건다. 이미 환자 주변에 행인이 많이 모였다.
"비켜보세요!"
철수 씨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가서는 순간, 어디선가 큰 목소리로 외치며 40대로 보이는 남성이 달려온다. 남성이 환자 곁으로 비집고 오며 20대 청년을 본다.
"한 사람 지목해서 119에 전화하라고 한 것 정말 잘했어요. 이럴 땐 다들 정신이 없으니 청년처럼 딱 그렇게 하는 겁니다!"
행인들이 전부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윽고 환자에게 다다른 남성은 곧장 자세를 낮춰 앉았다.
◇심폐소생술
어머니의 목에 자신의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여러 번 갖다 대며 뭔가를 확인하더니 환자 왼쪽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양손을 포개 명치 좌측 바로 위를 힘껏 압박하기 시작했다.
"일! 이! 삼! 사! 오!"
남성은 큰소리로 자신이 압박하는 횟수를 외치며 압박을 반복하더니 고개를 든다.
"누가 세별병원 응급실로 가서 병원 바로 앞에서 심정지 여성 심폐소생술 중이니 도와달라고 요청해 주세요!"
20대 청년이 바로 응급실로 달려간다. 구호를 30까지 외치고 환자 입에 큰 호흡을 두 번 불어넣은 남성이 다시 구호를 외치며 양손으로 힘껏 압박한다.
"혹시 이 환자 아시는 분 계신가요?!"
남성이 흉부 압박을 멈추지 않으며 큰 소리로 물었으나 아무런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구호를 30까지 외친 남성은 환자의 정수리를 뒤로 살짝 젖히고 턱을 쳐들었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환자의 코를 쥐고 막는다. 왼손으로는 턱을 밑으로 잡아당겨 환자의 입을 크게 열리게 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입을 갖다 대고 크게 두 번 숨을 불어넣었다. 다시 구호를 외치며 30회 압박, 환자의 얼굴을 살짝 뒤로 젖혀 코를 막고, 입을 벌려 두 번 숨 불어넣기. 많은 사람이 환자 곁을 에워싸고 그 반복되는 동작을 본다.
그때 약봉지를 손에든 여성이 인파를 뚫고 두리번거리더니 갑자기 약봉지를 떨어뜨리고는 외친다.
"엄마!"
사람들은 여성이 환자 곁에 오도록 순식간에 공간을 열어준다. 딸은 놀란 눈으로 곁에 주저앉아 오열하며 어머니의 몸을 흔든다. 구강호흡 후 흉부 압박을 지속하던 40대 남성이 말했다
"저는 세별병원 내과의사입니다. 이 환자 현재 심정지 상태로 의심되어 심폐소생술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혹시 환자와 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딸입니더." "혹시 어머니께서 병을 앓고 계셨나요?" "병예? 예. 그, 고혈압하고예. 협심증 그라고 당뇨도 있고, 고지혈증도 있고."
마침내 바퀴 달린 운송용 침대 바퀴 소리와 함께 흰 가운 걸친 세 사람이 달려온다.
"어?! 김교수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흰 가운 입은 사람 중 한 명이 응급 처치 중인 남성에게 묻는다.
"퇴근길에 이분 쓰러지는 걸 봤죠. 어서 응급실로 옮깁시다!"
◇첫 만남
흰 가운을 입은 세 사람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였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서 환자를 응급실로 옮긴다. 철수 씨는 뭔가에 홀린 듯 의료진과 함께 전속력으로 응급실까지 달려간다. 순식간에 닫히는 응급실 입구 문을 넋 놓고 바라보더니 두근대는 가슴을 마구 쓰다듬는다. 잠시 뒤 김 교수라 불리던 그 40대 남성이 응급실 문을 열고 나오다 철수 씨와 눈이 마주친다. 그에게 성큼 철수 씨가 다가서며 말을 건다.
"이 세별병원에서 근무하시는 의사선생님이신가요?" "예. 그렇습니다." "아! 방금 그분 괜찮으신가요?" "저도 괜찮아지시길 바랍니다. 지금부터는 응급실 의료진이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겁니다." "왜 그렇게 된 거죠?"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환자가 여러 기저질환, 특히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에 협심증까지 앓고 계셨다고 하니, 미루어볼 때 심근경색이 의심되긴 합니다."
김교수는 문득 궁금한 표정으로 철수 씨를 바라본다.
"그런데 혹시 환자와 어떤 관계이신가요?" "아, 저는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집에 가다가 그분 쓰러지는 것을 보고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관련 없는 사람임을 알고 김 교수는 멈칫하며 그를 살핀다.
"뭔가 쓰러진 분께 도움이 되고 싶으셨어요?"
철수 씨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예! 제가 뭘 좀 알았다면 도왔을 텐데 아무것도 못 했네요." "오랫동안 의학을 공부하고 준비한 사람도 그런 상황엔 당황하기 마련이죠. 그럼 살펴 가십시오." "아! 저기 잠깐만! 궁금한 것이 더 있는데요!" "죄송하지만 저 환자에 대해서는 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가족 외에 제삼자와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 제 문젭니다."
김교수가 대답 대신 철수 씨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철수 씨는 자신이 2주 전에 건강검진을 받은 것과 위내시경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되어 재검받으라는 문자를 받은 것까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김 교수의 오늘 모습에 감동해 김 교수에게 진료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김 교수는 자세를 고쳐잡으며 철수 씨를 정면으로 마주 본다.
"저는 세별병원 내과의사 김선생입니다. 저의 외래로 오셔서 상담받으시죠! 건강상의 문제라면 뭐든 구체적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철수 씨와 김선생의 첫 만남이 운명처럼 이뤄졌다.
/김창업 삼성창원병원 내과 교수·웹소설〈소리사냥꾼〉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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