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탄생 100주년 맞은 '마블의 아버지'

▲ <어벤져스> 멤버들과 촬영장에서 함께 한 스탠 리

100년 전 오늘1922년 12월 28일, '스파이더맨', '어벤져스', '판타스틱 4', '엑스맨' 등 마블 코믹스의 주요 캐릭터와 스토리를 창조한 만화 작가 '스탠리 마틴 리버', 스탠 리가 태어났습니다.

▲ 어린 시절 스탠 리 ⓒ 스탠 리

'대공황' 시절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유명 작가들의 소설들을 두루 섭렵하며 글쓰기 재능을 키웠고, 1937년 언론사 작문 콘테스트에서 두 개의 작품을 입선시키는 등 남다른 필력을 보여줬는데요.

▲ <캡틴 아메리카> 코믹스 ⓒ 마블 코믹스

이후 삼촌 마틴 굿맨의 도움으로, 삼촌이 경영하는 '타임리 코믹스'에서 '주급 8달러' 사원으로 근무하게 된 그는 <캡틴 아메리카>(1941년)의 각본을 쓰게 됐죠.

▲ 1930년대 청년 스탠 리 ⓒ 스탠 리

이때 처음으로 '스탠 리'라는 필명을 사용했는데, 이는 당시까지만 해도 순수문학을 하고 싶었던 그가, '사회적 평판'이 낮은 만화책에 자신의 '진짜 이름'이 실리는 게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군 복무 중인 스탠 리 ⓒ 스탠 리 트위터

2차 세계대전이 본격화되면서 미 육군 통신부대에 입대한 스탠 리는, 당시 9명 밖에 없던 '미 육군 극작가' 보직을 받아, 훈련용 매뉴얼과 슬로건 작성, 전쟁 교육영화 각본 작업 등에 참여했는데요.

▲ 재향군인의 날 행사에 참석한 스탠 리와 크리스 에반스(가운데) ⓒ 스탠 리 트위터

종전 후 '아틀라스 코믹스'로 사명을 바꾼 '타임리 코믹스'에 다시 복직한 그는, 그곳에서 50년대 중반까지 로맨스부터 서부극, SF, 중세, 호러 등 다양한 장르의 코믹스 작품을 출간하게 됩니다.

▲ 1950년대, 30대가 된 스탠 리 (오른쪽) ⓒ 마블

그러나, 이 시기 작품들이 평면적인 캐릭터와 단순한 스토리 구성 때문에 대중의 외면을 받기 시작하자, 회의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스탠 리는 만화 일을 그만두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데요.

▲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2016년)에서 스탠 리와 함께 카메오 출연한 아내 조안 리

"사표를 쓰기 전에 '늘 꿈꿔오던 작품'을 마지막으로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아내 '조안 리'의 조언에 따라, 그가 극화가 '잭 커비' '스티브 딧코'와 의기투합해 만든 작품이 바로 현재까지 1억 5천만 부가 넘게 팔린 <판타스틱 4>(1961년)였습니다.

▲ <판타스틱 4> ⓒ 마블 코믹스

각기 다른 힘을 지닌 4명의 슈퍼히어로가 팀을 이뤄 악당을 물리치는 <판타스틱 4>가 발매된 후, 스탠 리는 수많은 독자로부터 응원의 편지를 받았을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을 체험했는데요.

▲ <토르> ⓒ 마블 코믹스

그 덕분에 '마블 코믹스'로 사명을 바꾼 삼촌의 회사에 남아서 코믹스 일을 계속하기로 한 그는 '마블 코믹스' 편집장이 된 후, '잭 커비'와 '스티브 딧코', '빌 에버렛' 등과 함께 1962년부터 '프랑켄슈타인'을 모티브로 한 <헐크>, '아스가르드'에서 온 '천둥의 신' <토르>, 개미처럼 작아지는 능력을 보유한 <앤트맨>을 만들어냈죠.

▲ <스파이더맨> ⓒ 마블 코믹스

특히, 발행인 '마틴 굿맨'을 집요하게 설득해 출간한 '10대 거미 인간' 이야기 <스파이더맨>이 공존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마블 코믹스'는 60년대 황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 <어벤져스> ⓒ 마블 코믹스

1963년까지 스탠 리는, 억만장자 천재 발명가 '토니 스타크'를 바탕으로 한 <아이언 맨>과 사회적으로 억압 받는 돌연변이 히어로의 이야기를 다룬 <엑스맨>, 호러 영화 전문 배우 빈센트 프라이스를 모티브로 한 <닥터 스트레인지>와 경쟁사 'DC 코믹스'의 <저스티스 리그>에 대응할 '슈퍼히어로 팀' <어벤져스>를 연달아 출간했는데요.

▲ <데어데블> ⓒ 마블 코믹스

이듬해(1964년) 방사능으로 시각을 잃은 슈퍼히어로 <데어데블>을 출간한 뒤, '어벤져스' 프로젝트를 확장시켜 그가 관여한 각각의 코믹스 캐릭터들이 '공유된 세계관'에서 활동하도록 설계한 스탠 리는, 1940년대 인기 캐릭터였던 '네이머'와 '캡틴 아메리카'까지 부활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 1970년대, 50대에 접어든 스탠 리

1972년에 삼촌 '마틴 굿맨'의 뒤를 이어 '마블 코믹스'의 발행인이자 사장이 된 스탠 리는, 코믹스의 판매 부수와 점유율 면에서 경쟁사인 DC 코믹스를 압도하며, 미국 대중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는데요.

▲ 국내에서는 70~80년대에 방영된 <두 얼굴의 사나이> 시리즈 촬영장에 간 스탠 리

하지만 70년대부터 대중화된 컬러텔레비전과 이를 통해 방영된 TV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전체 코믹스 시장이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스탠 리는 영화와 드라마 제작 쪽으로 마블 코믹스의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해 나갔고, 이런 그의 결정은 90년대에 마블이 파산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했습니다.

▲ 1990년대, 70대에 접어든 스탠 리

결국 경영난에 대한 포괄적인 책임을 지고 1996년에 발행인 자리에서 물러난 스탠 리는, 이후 마블엔터테인먼트의 '명예 회장' 직에 올라 상징적인 존재로 남게 되었는데요. 

▲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스탠 리

그러나 만화계의 아카데미 시상식인 '윌 아이스너 어워드' 수상(1994년)을 비롯해 '미국 예술 훈장'을 받은(2008년) 그는, 다양한 슈퍼히어로 영화들의 원작자로서 마침내 그 공을 인정받아, 2011년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고, 5년 뒤 LA 시의회는 그를 위해 매년 10월 28일을 '스탠 리의 날'로 공식 지정했습니다(2016년).

▲ <퍼스트 어벤져>(2011년) 개봉 행사에 참석한 스탠 리

2018년 11월 12일, 지병인 폐렴을 앓고 있던 스탠 리는 트위터에 "더 높은 곳을 향해(Excelsior)!"란 자신의 유명한 격언을 남긴 채, 향년 9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요.

▲ 스탠 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아이언맨'으로 활약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촬영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인스타그램

그의 사후 많은 미국 매체가, 그를 "20세기부터 현재까지, 미국 대중문화 산업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서브 컬쳐 혁명의 주역"으로 평가하며 애도했습니다.

▲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팬들이 '스탠 리 찾기' 놀이를 즐겼을 정도로, 고령임에도 개봉하는 모든 마블 작품들에 빠짐없이 카메오로 출연했던 스탠 리는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년)을 통해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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