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이 갈라진 순간이었습니다. 차가운 얼음 위를 가르며 18세 신예 임종언 선수가 질주했습니다. 2025년 10월 12일(한국시간),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 모리스 리처드 아레나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투어 1차 대회 남자 1500m 결승에서 임종언 선수는 2분16초141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전광판에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 1위로 떠올랐습니다. 그 아래에는 한국의 간판 황대헌 선수가 2분16초593으로 2위를 기록했습니다. 단 0.452초 차이였습니다. 그 순간 관중석은 환호로 가득 찼고, 한국 팬들의 심장은 뜨겁게 뛰었습니다. 한국 쇼트트랙의 세대교체가 현실이 된 장면이었습니다.

임종언 선수는 이제 막 성인 대표팀에 합류한 18세 선수입니다. 하지만 그의 경기력은 신인이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는 레이스 초반 3~4위권에서 여유롭게 주행했습니다. 상대 선수들의 움직임을 차분히 관찰하며 자신만의 리듬을 유지했습니다. 과감하게 속도를 내지도, 불안하게 밀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12바퀴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인코스 라인이 순간적으로 열리자 임종언 선수는 망설임 없이 파고들었습니다. 그 한 번의 진입이 승부를 갈랐습니다. 이후 그는 중심을 잃지 않고 속도를 유지하며 결승선까지 질주했습니다. 주니어 시절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따내며 ‘차세대 스타’로 불렸던 소년은 이제 세계 무대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번 금메달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0.4초 차이로 뒤를 이은 황대헌 선수와의 원투 피니시는 한국 쇼트트랙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입증한 결과입니다.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대헌 선수의 노련함과 10대 신예 임종언 선수의 패기가 한 경기에 함께 담겼습니다. 두 세대가 부딪히지 않고,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세대교체가 아닌 세대의 ‘동행’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황대헌 선수는 경기 초반부터 노련한 페이스 조절로 전체 흐름을 안정시켰습니다. 외국 선수들이 무리하게 치고 나올 때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임종언 선수가 뒤에서 기회를 엿보는 모습을 확인하자, 그는 자연스럽게 공간을 내주며 후배의 질주를 도왔습니다. 그 장면은 마치 세대가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는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결승 후 두 선수는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승자와 패자의 관계가 아닌, 같은 팀의 동료로서 나눈 진심 어린 격려였습니다.
임종언 선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처음엔 많이 떨렸지만, 제 앞에 태극기가 보이자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단정하고 담담한 어투였습니다. 그는 “이건 시작일 뿐입니다”라는 짧은 한마디로 앞으로의 목표를 분명히 했습니다. 고등학생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냉정한 자기 관리와 집중력을 보여줬습니다. 실제로 그는 주니어 시절부터 ‘감정 기복이 적고 집중력이 강한 선수’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이번 성인 무대에서도 그 강점은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치열한 추월전이 이어지는 순간에도 그의 시선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전방을 향했습니다.

빙상 전문가들은 임종언 선수의 경기 운영 능력에 극찬을 보냈습니다. “초반에는 참았고, 중반에는 계산했고, 후반에는 폭발했다”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1500m 종목은 단순한 스피드 경기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체력, 시야, 타이밍, 그리고 판단력이 동시에 작동해야 합니다. 임종언 선수는 이러한 복합 요소를 완벽하게 조율했습니다. 코너 진입 시 무게 중심을 옮기는 동작이 부드럽고, 블레이드(스케이트날)의 안정성도 탁월했습니다. 좁은 인코스에서도 밀리지 않고 중심을 유지하는 장면은 그가 기술적으로 이미 성인 무대에 적응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황대헌 선수 역시 세계 정상급 실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경기 후반 캐나다 선수와의 미묘한 접촉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레이스를 마무리했습니다. 경험과 노련함이 만들어 낸 완벽한 대응이었습니다. 그는 경기 후 “임종언이 정말 침착했다. 다음 세대가 이렇게 성장한 것이 자랑스럽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짧은 한마디는 세대 교체를 넘어 ‘세대의 연결’을 의미하는 진심이었습니다.

이번 월드투어 1차 대회는 시즌의 시작과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임종언 선수의 금메달은 한국 남자 쇼트트랙이 여전히 세계 정상권에 있음을 증명하는 신호입니다. 몇 년간 세대 교체 과정에서 불안했던 남자 대표팀은 이번 경기로 다시 안정감을 되찾았습니다. 황대헌 선수의 경험, 임종언 선수의 패기, 그리고 신동민, 이정민 등 젊은 선수들의 도전이 하나로 이어지며 한국 팀은 확실한 전력 구조를 구축했습니다.
빙판 위에서 세대는 단순히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이 새로운 도전을 이끌고, 젊은 힘이 전통을 이어가는 과정입니다. 이날 몬트리올의 결승선은 바로 그 흐름을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선두로 들어온 임종언 선수의 뒤를 따라온 황대헌 선수의 모습은 한국 쇼트트랙의 과거와 미래가 하나로 맞닿은 순간이었습니다. 빙판은 차가웠지만, 그 위에서 펼쳐진 한국 선수들의 질주는 뜨겁게 타올랐습니다.
Copyright © 구독과 좋아요는 콘텐츠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