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과학분야 노벨상 배출할 확률 100%인 이곳!!

[정연섭의 과학과 철학]
'과학 열정' 발목잡는 '유교 문화'
서로 배려하려는 패거리 자본주의 있지만
기초과학연구원(IBS)의 30개 연구단
여기서 과학 노벨상 나올 가능성 매우 커
KEIT, 보건산업진흥원 등도 노벨상 노려

2024 노벨상

한강 작가가 2024년 노벨상을 받았다.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사람들이 조국의 영광을 안겨 주었다. 며칠 뒤 발표된 노벨 경제학상은 '포용적 제도하에서만 나라가 부강해질 수 있다'며 한국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동포를 노예로 부리는 유교사회를 혁파하여 근대화를 이루었으니 이 분들의 주장에 공감한다.

그러나 현대의 한국적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유교 이념으로 오염되어 있다는 자의식 탓에 칭찬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과학 분야로 한정하면, 한국의 과학정책이 서구 과학제도를 흉내내며 따라가고 있지만, 한국적 자본주의에 뿌리를 내리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국가 예산을 연구분야에 집중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하지만 과학분야에서는 노벨상 수상 소식이 없다. 과학분야 노벨상은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등 세 개다.

네이처(Nature)지는 노벨상 추천자들이 북미나 유럽인에게 편중되어 타 지역 과학자들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낸 적이 있다. 그렇지만 한국의 유력 후보자들은, 이번에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노벨상을 받았다는 고백을 한다. 모차르트의 재능을 알아봤던 살리에르처럼, 필자도 과학 탁월성을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은 되기에 이런 한국 과학자의 고백이 겸손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사진=노벨상 공식 홈페이지

과학자의 열정

뛰어난 과학적 성취는 어디서 나오는가? 많은 사람들이 과학 정책을 이야기하고 예산을 이야기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과학자의 열정과 노력이다.

과학적인 문제를 발견하여 곰곰이 생각하고 즐기는 연구자라야 과학적 열매를 딸 수 있다. 의무감이나 더욱이 욕심에서는 창조성이 나올 수 없다.

아이작 뉴턴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인류 과학사에서 독보적인 존재이다. 뉴턴은 '고전역학'과 '중력'을,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발견했다. 뉴턴은 업적을 인정받아 국회의원이 되었고, 조폐 공사 국장의 자리를 얻었지만 이 자리에서 한 일은 거의 없었다. 과학자 뉴턴은 연금술에 빠져 밤낮으로 유황을 지지고 볶았으며 예수 재림의 날을 계산하느라 주판알을 튕기기도 했다. 지금 보면 바보 같지만 '마법의 돌'과 '천년왕국'은 뉴턴시대에는 현안이었다.

바보 같은 활동 덕분에 화학혁명이 일어나 연금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졌다. 뉴턴은 땅으로 떨어지는 사과와 행성 공전 주기를 설명하려다 고전역학을 발견했다. 떨어진 사과를 본다고 만유인력 이론이 당장 하늘에서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사과는 핵심적 사색거리였음은 틀림없다. 낙하하는 물체만큼 만유인력을 단순하게 보여주는 실험은 없다.

아인슈타인은 중등학교 생활에 적응을 못했다. 수학과 물리를 배웠지만, 선생님이 가리키는 너머로 질문을 하니 선생님들도 곤혹스러워했다. 당연히 학교 선생님의 잘못 아니다. 필자도 시골에서 교과서로만 과학을 공부하면서 표면적 과학현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원인을 이해해 보겠다며 읽기를 반복했다. 되돌아보면 필자는 대학 수준의 질문을 했고 아인슈타인은 대학원 수준의 질문을 했다.

그런 의문에 빠져 있으니 다른 분야는 소홀히 하기 쉬울 수 밖에 없어, 그는 취리히 공대에 낙방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에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보험설계사로, 개인과외 교사로 끼니를 이었다. 친구 아버지 소개로 특허청에 들어가 특허를 심사하면서 1905년 '특수 상대성 이론', '광전 효과' 등 세상을 뒤흔드는 논문을 발표했다.

아이작 뉴턴(왼쪽)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출처= Wikimedia Commons

두 사람의 뛰어난 업적은 과학정책 덕분이 아니라 '과학을 향한 열정'에 의한 것이다.

100년 이전의 과학자인 뉴턴과 아인슈타인을 예로 드는 것은 현대의 연구 환경에서 보면 부적절할지 모른다. 현대의 과학은 장비의 중요성이 특히 높다. 웬만한 과학적 진리는 거의 규명되어, 장비를 사용하지 않으면 연구를 할 수도 없다는 주장도 타당하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고가 장비에 접근 못할 처지가 아니고 국제 연구에 참여할 기회도 많으니, 과학적 성취의 부족을 장비 탓으로 돌리기에는 부끄럽다.

혁신추구형 과제 정책과 유교 이데올로기

장비 핑계가 먹히지 않는다면 과학정책으로 화살을 돌리야 한다. 예컨대 우리나라 과학연구과제 성공률이 거의 100%라는 통계가 있다. 이는 낮은 목표를 잡았기 때문이다.

열정이 있는 과학자라면 뻔한 목표로 과학 활동을 하지 않는다. 과제 기획자가 목표를 낮게 잡고 수행자는 기획자의 의도에 맞게 계획서를 써서 과제를 수행한 탓이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토론에 의해 과제 계획서가 평가되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한국적 자본주의(패거리 자본주의)가 잘 작동한 덕분이다.

이런 비난을 받은 우리 과학계도, 미국 국방부 산하 조직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연구전략 모델을 도입해 기대감을 갖게 한다.

한국혁신도전 R&D는 2020년부터 매년 5개의 과제를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다. 실패도 허용하고 과제 책임자에게 자율권을 부여한다. 과제 기간은 5년인데, 선정됐던 연구테마를 보면 5년 안에 성공하기는 어려운 도전 과제들도 보인다. 연구테마가 열정적으로 수행되어 정책의 파급 효과가 나타났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도 연금술과 같은 알키미스트 프로젝트 제도를 도입하여 2024년까지 13개의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뇌파를 읽고, 노화를 역전시키는 등의 연구 주제는 갈 길이 멀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고 파급 효과가 커 보인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도 2024년부터 9년간 약 1조 원을 투입하여 난제 해결 연구를 수행한다고 한다. 아직 과제 명이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백신 치료제, 암 정복 등 5개를 목표로 잡았다. 시작 전부터 제시된 복잡한 '선정' 프로세스는 도전성과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이들 3개 정도의 제도와 공간에서 혁신적 연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되었다. 그렇지만 미국에서와 같은 탁월한 성과가 나올지는 의문이다. 제도를 잘 만들어 놓아도 과제를 선정하고 평가하는데 구태의연한 방법이 적용된다면 열매는 뻔하다. 열정적인 수행자만큼 혁신적 평가자와 기획자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우리는 500년 동안 유교 문화에 세뇌되어 적극적으로 뿌리치지 않으면 유교적 사고가 생각 곳곳에 슬그머니 파고든다. 조선 시대에는 한양으로 가서 과거 시험을 쳤듯, 지금도 사람들은 집값이 오르는 수도권으로 몰리고 '돈이 되는' 의대로 몰리고 '권력이 있는' 법조계로 몰린다. 종종 세태에 편승해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하려 든다. 한번 진입하면 경쟁과 도태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번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는 "착취적 제도에서는 발전이 없다"라고도 했다. 유교 문화에서 수많은 개혁이 일어났지만 조선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자신의 밥그릇을 백지신탁하지 않은 자에게서 나오는 정책은 사회를 위하는 척하지만 오히려 사회를 퇴보시킨다.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도 마찬가지다. 해외로부터 도입된 도전적인 제도들도 착취적 유교적 가치와 섞인다. 경쟁을 회피하는 패거리 자본주의는 혁신적 제도마저 변질시킨다.

희망을 꿈꾸게 하는 IBS의 연구단

그래도 암울해할 필요는 없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수행하는 연구단 제도에 희망이 보인다.

IBS는 물리학, 화학, 수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분야에서 30개의 연구단을 세워 새로운 진리를 창출하고 있다.

이들 연구단에서 발표되는 연구실적은 수준이 상당히 높고 세계를 선도한다. 과학분야에서 한국이 노벨상을 받는다면 이 연구단에서 나올 가능성이 거의 100%다. 우수한 과학 기술자들이 포진해 있고 연구 폭도 넓다.

무슨 제도의 개선은 한 해의 결실을 보고 변경해야 한다. 무럭무럭 자라는 여름에 식물을 옮겨 심으면 바로 고사하듯이 과학도 그렇다. 결실이 나올 때까지 지켜보고 제도를 바꾸지 말아야 한다. 더 바라기는 과학자는 과학정책 자체를 잊게 해주면 좋겠다. 과학자들이 스티브 잡스처럼 바보같이 과학 현안에만 몰두하는 자세(Stay hungry, Stay foolish)로 남게 해주면 좋겠다.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인 정연섭은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퇴직했다. 최근 한국원자력학회 사무총장을 새로 맡았다. 서울대 화학 석사 후에 LG화학연구소, 한국전력연구원을 거쳤다. 50여 편 발표 논문, 10여 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원전 설계 및 수출로 한국원자력학회 기술상, 산자부 표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