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을 조국이라 생각하며 찾아오셨겠지만 같은 동포이기에 따뜻하게 맞아주리라 기대했던 것과 달리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았을 겁니다. 이번 사업이 그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아물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1937년 소련 정부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의 후손들이 다시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재외동포청에 따르면 국내 체류 고려인은 2013년 약 2만1000명에서 2024년 약 10만7000명으로 5배가량 늘었다. 그러나 '조국'에서의 정착은 녹록지 않다.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언어다.
장혜선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이들의 정착을 돕겠다고 나섰다. 롯데장학재단은 15일 서울 중구 한국의 집에서 '2026 신격호 롯데 고려인 지원사업 전달식'을 열고 경기·인천 지역 고려인 위기가정 아동·청소년 65명에게 1억원 상당의 생활지원금과 한국어 교육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재단이 고려인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첫 사업이다.
생활비·한국어 '투트랙'…수준별 교육에 성과 점검까지
이번 사업은 굿네이버스와 협력해 진행된다. 지원 대상은 국내 거주 고려인 동포의 51.4%가 모여 사는 경기·인천 지역에서 굿네이버스와 파트너십을 맺은 고려인 단체의 추천을 받아 선발됐다.
지원은 지역별 고려인 단체의 수요를 반영해 세 갈래로 나뉜다. 25명은 생활지원금과 한국어 교육을 함께 받는다(1인당 약 152만원 상당). 30명은 생활지원금 150만원을, 10명은 한국어 교육(1인당 약 100만원 상당)을 지원받는다. 재단 관계자는 "사업을 준비하며 여러 고려인 지원 기관에 가장 필요한 것을 물었더니 공통적으로 한국어 교육과 생활지원금 수요가 가장 컸다"고 설명했다.
한국어 교육은 아이들의 실력에 맞춰 설계했다. 초급 학생은 기초 이론 중심의 학습지로 한국어를 익힌다. 중·고급 학생은 지역 도서관 방문 같은 체험학습과 동화책을 활용한 문해력 교육을 받는다. 교육 전후에는 한국어 능력평가를 실시해 실제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점검한다. 지원금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과까지 확인하겠다는 취지다.
재단이 주목한 '사각지대'

장 이사장은 이번 사업의 추진 배경으로 ‘사각지대’를 꼽았다. 그는 "신규 사업이든 어떤 사업이든 재단의 가장 큰 기준은 사각지대"라며 “재단이 글로벌 사업을 많이 하지만 1순위는 언제나 한국인을 돕는 것이다. 국내와 글로벌을 잇는 접점을 고민한 결과, 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고려인을 지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업은 정부·지자체 지원과 별도로 재단과 굿네이버스, 지역 고려인 단체가 중심이 돼 운영된다.
재단의 지원 대상이 '정착'의 사각지대로 넓어지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재단은 지난해 '장혜선 가정 밖 청소년 장학금'을 신설해 위기 청소년의 자립을 지원해 왔다. 올해는 '장혜선 롯데 위기 탈북민 긴급지원' 사업을 새로 만들어 생계비·주거비·법률·심리상담 등을 지원하고 있다. 고려인 사업은 그 연장선에 있다.
사업명에는 신격호 롯데 창업주의 이름을 붙였다. 장 이사장은 "낯선 땅에서 삶의 터전을 일군 고려인 선조들과 일본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한 신격호 명예회장의 삶에는 도전과 개척의 정신이 담겨 있다"며 "재단은 이 정신을 이어 여러분이 한국에서 만들어 갈 새로운 미래를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장 이사장은 신 창업주의 외손녀다.
재단은 첫해 성과와 피드백을 바탕으로 향후 사업 방향과 지속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사업이 연장될 경우 지원 대상은 성인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이유리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