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은 ‘탈삼진상’ 공식 수상 0회…베어스는 창단 23년 만에 첫 탈삼진왕
[베팬알기] ⑱KBO & 베어스 역사 속 흥미로운 탈삼진왕 이야기
『한국야구위원회는 (12월) 29일 플라자호텔 20층 등실에서 93년도 정기 이사회를 열고 93년도 예산을 올해(22억3천만원)에 비해 7%가 인상된 23억8천만원으로 최종 확정했다. KBO는 또 포상 제도 개인상 투수 부문에 최다탈삼진상을 신설키로 했다.』 <1992년 12월 30일자 경향신문>
타격의 꽃이 홈런이라면, 투구의 꽃은 탈삼진이다. 하지만 지난주 투수의 승률 이야기를 하면서 소개했듯이 KBO 역사에서 탈삼진 부문은 상대적으로 뒤늦게 공식 타이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위의 기사는 ‘최다 탈삼진상’이 1993년에서야 비로소 KBO 공식 포상 제도 범위 안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KBO리그가 1982년 출범했으니 12시즌 만이었다. 재야에 머물러 있던 탈삼진왕은 이때부터 제도권의 주요 타이틀 홀더로 대접을 받았다.
[베팬알기-베어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기록 이야기] 이번 편에서는 KBO와 베어스 역사 속 탈삼진왕의 세계를 다각도로 살펴보고자 한다.
◆KBO 탈삼진상은 1992년까지는 비공식…1993년부터 공식 시상
스트라이크 아웃(Strike Out). 국어사전에는 ‘야구에서 타자가 세 번의 스트라이크로 아웃되는 일’로 설명해 놓고 있다. 폴 딕슨의 야구사전(Baseball Dictionary)을 보면 ‘An out made by a battter charged with three strike)’로 풀이해 놓고 있다. 같은 뜻이다.
일본에서는 ‘스트라이크 아웃’을 ‘삼진(三振)’이라는 용어로 번역해 사용해왔다. 투수가 타자를 삼진아웃으로 처리하면 삼진을 탈취했다는 뜻에서 ‘탈삼진(奪三振)’이라 일컫는다. 삼진은 일본식 용어지만, 일본야구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야구도 시대 흐름에 따라 기록의 가치를 대하는 시각이 달라진다. 오늘날에는 ‘탈삼진’이 투수의 역량을 측정하는 기록으로서 핵심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투수 부문 ‘트리플 크라운(3관왕)’이라고 하면 한 투수가 동일한 시즌에 승리(Win), 평균자책점(ERA·earned run average), 탈삼진(Strike out) 3개 타이틀을 모두 석권하는 것을 이른다.
하지만 KBO 역사에서 ‘탈삼진’이 처음부터 이런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전문에 소개했듯이 KBO 공식 시상 타이틀로 인정받은 것은 1993년부터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KBO 출범 원년인 1982년부터 1992년까지 11년 동안은 투수의 탈삼진 기록은 참고용에 그쳤다는 의미다.
그 시절 투수 3관왕이라 하면 오늘날과 달리 다승, 방어율(평균자책점)에 ‘승률’이 포함됐다. 여기에 세이브포인트(세이브+구원승)로 시상하는 구원상이 추가돼 투수 분야에서는 공식적으로 총 4개 부문을 시상했다. 탈삼진 1위는 공식 시상 부문이 아니었다.
◆초대 탈삼진왕 노상수, 공식 개인 타이틀 시상이 없었던 까닭은?
1982년 롯데 자이언츠 잠수함 투수 노상수는 거의 홀로 팀 마운드를 책임졌다. 팀당 80경기(전기리그 40경기, 후기리그 40경기) 체제였던 원년에 무려 232.1이닝을 던져 14승19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2.94, 141탈삼진을 기록하며 에이스 노릇을 했다.
14승은 원년 롯데 팀 내 최다승 기록. 하지만 19패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김재현과 KBO 원년 공동 최다패 기록이기도 했다. 원년 롯데의 전력(종합승률 6개 팀 중 5위)이 약했던 탓이었다. 역대 2점대 평균자책점 투수 중 최다패라는 점에서 그가 얼마나 비운의 투수였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노상수의 기록에서 주목해야할 또 다른 분야는 141탈삼진이라는 지점이다. 원년 탈삼진 1위였다. 최고 투수였던 OB 박철순과 MBC 청룡의 에이스 하기룡(108개 공동 2위)보다 33개나 많았다. 그러나 노상수는 그해 탈삼진왕 트로피를 받지 못했다. KBO 공식 시상 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1983년 삼미 장명부, 1984년 롯데 최동원, 1985년 삼성 김시진도 그해 시즌 최다 탈삼진 투수가 됐지만, 공식적으로 탈삼진상 트로피를 받지 못했다.
◆탈삼진 1위 5회 선동열도 비공식 타이틀 홀더?
탈삼진 비공식 타이틀 홀더를 논할 때 ‘국보투수’로 칭송받은 해태 선동열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데뷔 이듬해인 1986년 생애 처음 탈삼진 1위에 오른 뒤 1988년부터 1991년까지 4년 연속 탈삼진 1위 자리를 지켰다. KBO 역사상 탈삼진 부문에서 5차례나 정상을 차지한 건 한화 괴물투수 류현진(2006년, 2007년, 2009년, 2010년, 2012년)과 선동열 뿐이다. 4년 연속 탈삼진 1위는 선동열이 유일하다.
그러나 선동열은 개인적으로 탈삼진 트로피를 단 1개도 소장하지 못하고 있다. 기록적으로는 투수 트리플 크라운(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도 4차례(1986, 1989, 1990, 1991년) 달성했지만, 공식적으로는 당시 탈삼진 타이틀이 없었던 탓에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 대신 다승, 평균자책점, 승률 1위를 동시에 차지한 1989년, 1990년, 1991년 KBO 공식 타이틀로서 투수 3관왕을 차지한 인물로 남아 있다.
따라서 KBO 공식 시상을 기준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최초의 주인공은 2011년 KIA 윤석민(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률 4관왕)이라고 해야 옳다.
◆KBO 최초 탈삼진상 수상자는 1993년 김상엽
1989년 대구고를 졸업한 뒤 곧바로 삼성에 입단한 ‘만딩고’ 김상엽은 묵직한 구위와 KBO 최고 수준의 파워커브를 앞세워 1990년 12승6패, 18세이브를 올리며 곧바로 에이스로 도약했다.
그는 1993년에도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13승6패, 8세이브를 올렸는데 그해 170탈삼진을 기록하면서 탈삼진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마무리투수로 전향한 천하의 해태 선동열(164탈삼진)이었다.
앞서 설명한 대로 1993년 탈삼진이 공식 시상 부문으로 신설됐기에 김상엽은 KBO 최초 탈삼진왕으로 탄생하게 됐다.
한편, 해태 시절 이강철 역시 탈삼진 타이틀과 관련해 불운하다면 불운한 투수였다.
1990년과 1991년에는 해태 선배인 선동열에 이어 탈삼진 2인자에 머물렀다. 그러다 1992년 156탈삼진으로 한화 루키 정민철(145탈삼진)을 밀어내고 마침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1992년까지는 비공인 타이틀. 1년만 먼저 탈삼진이 KBO 공식 타이틀로 신설됐다면 초대 탈삼진왕이 될 뻔했지만 역시 트로피를 받지 못했다.
이강철은 그 대신 1989년부터 1998년까지 KBO 사상 최초로 ‘10년 연속 100탈삼진’ 기록을 작성하면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현재까지 장원준과 양현종이 10년 연속 100탈삼진 타이기록을 세움).
◆박철순도 김상진도…탈삼진왕 인연 없던 베어스
두산 베어스는 OB 시절부터 유난히 탈삼진 타이틀과 인연이 없었다. 원년 최고 투수 박철순도 3관왕(다승, 평균자책점, 승률)을 차지했지만 탈삼진 부문에서는 롯데 노상수에 이어 2위에 머물렀다.
그 이후로는 베어스 구단 내에서 탈삼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선수조차 없었다.
그러다 1990대 초반에 탈삼진왕에 근접한 선수가 나타났다. 배팅볼 투수로 입단해 에이스로 도약한 김상진이다.
박철순 이후 타자를 압도할 수 있는 최고의 우완 정통파 투수. 탈삼진이 공식 타이틀로 신설된 1993년 3위를 차지하더니 3년 연속 탈삼진 부문 3위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1995년이 아쉬웠다. 159탈삼진으로 3위였지만 1위인 해태 이대진(159탈삼진)에 불과 4개 차이로 왕관을 쓰지 못했다.
◆베어스 창단 23년 만에 첫 탈삼진 1위 배출…2004년 박명환 최초 왕관
김상진의 뒤를 잇는 ‘닥터 K(Dr.K)’는 1996년 고졸 신인으로 입단한 박명환이었다. 1996년과 1997년 탈삼진 7위에 이름을 올리며 가능성을 엿보이더니 OB 베어스 시대 마지막 시즌인 1998년 탈삼진왕을 놓고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결국 181탈삼진으로 2위. 1위인 해태 이대진(183탈삼진)에 불과 2개 뒤져 타이틀을 놓쳤다.
박명환은 2002년 다시 한번 아쉬움을 곱씹었다. 169탈삼진을 기록했으나 이번엔 KIA 신인 투수 김진우(177탈삼진)에 밀려 또다시 2인자에 머물렀다.
강속구와 고속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탈삼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박명환은 2004년 마침내 한을 풀었다. 162탈삼진으로 당시 KIA 외국인 투수로 활약한 다니엘 리오스(145탈삼진)를 따돌리고 탈삼진 1위에 등극했다.
박명환 개인적으로도 최초의 타이틀이기도 했지만, 베어스 구단 역사상 최초의 탈삼진왕 배출이기도 했다. 1982년 KBO 출범 이후 23번째 시즌 만에 구단 역사상 첫 탈삼진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베어스는 KBO 원년 역대 구단들을 살펴봐도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를 제외하면 가장 늦게 탈삼진 1위를 배출한 구단으로 기록돼 있다. 2000년 창단한 신생팀 SK 와이번스도 2001년 외국인 투수 페르난도 에르난데스를 탈삼진왕으로 내놓은 터였다.
LG도 유난히 탈삼진왕과 거리가 먼 구단이었는데 2003년 좌완 이승호가 구단 역사상 첫 탈삼진왕에 올랐다. 두산보다 1년 먼저 탈삼진 왕관을 가져갔다.
◆탈삼진왕 역사를 이은 두산 외국인 투수들
박명환이 베어스 구단 역사에서 최초로 탈삼진왕에 올랐지만, 그 이후로는 아직까지 탈삼진왕을 차지한 베어스 구단 내 토종 투수는 없다.
그 대신 외국인 투수들이 계보를 만들어갔다. 박명환의 뒤를 이어 2005년 다니엘 리오스가 구단 역사상 두 번째 탈삼진왕에 올랐다.
그해 7월 10일 두산은 유망주 좌완 전병두를 KIA에 내주고, 내야수 김주호와 리오스를 받는 2대1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두산 유니폼을 입은 리오스는 후반기 역투를 펼치면서 그해 147탈삼진으로 삼성 배영수와 공동 탈삼진왕에 올랐다. 과거 유난히 탈삼진 타이틀과 거리가 멀었던 베어스는 이로써 2년 연속 탈삼진왕을 배출하면서 악연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냈다.
그 이후 2016년 마이클 보우덴, 2019년 조쉬 린드블럼, 2021년 아리엘 미란다가 베어스 탈삼진왕의 역사를 이어갔다.
특히 미란다는 2021년에 225탈삼진을 기록하면서 KBO 한 시즌 탈삼진 신기록을 작성했다. 전설의 철완 고 최동원이 롯데 시절이던 1984년 기록한 223탈삼진은 수십년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굳건히 최고 자리를 지켜왔지만, 쿠바에서 온 ‘K 머신’ 미란다의 등장으로 인해 38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다.
◆구단별 탈삼진 1위 배출 현황…탈삼진왕 이모저모
탈삼진이 KBO 공식 타이틀로 인정된 것은 1993년부터지만, 탈삼진 기록은 1982년 원년부터 존재했다. 공식 시상이 없을 뿐이었지만 탈삼진 1위는 매년 탄생했다.
그래서 1982년부터 2024년까지 구단별로 탈삼진 1위 배출 횟수를 집계해봤다.
탈삼진 1위를 가장 많이 배출한 구단은 KIA 타이거즈(해태 시절 포함)로 총 10차례 나왔다. 그중 불멸의 투수 선동열이 지분의 절반인 5회(1986, 88, 89, 90, 91년)를 차지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선동열은 탈삼진이 공식 시상 항목으로 자리잡기 이전에 1위를 차지했다. 1993년 이후로 보면 타이거즈에서는 총 4차례 탈삼진왕이 나왔다. 이대진이 1995년과 1998년 2차례 탈삼진왕에 올랐고, 김진우(2002년)와 윤석민(2011년)이 1차례씩 달성했다.
이 부문 2위는 한화 이글스다. 총 8회 수상에 빛난다. 이글스는 1986년 7번째 구단으로 1군 리그에 뒤늦게 진입했지만 원년 팀들보다 더 많은 탈삼진왕을 배출했다.
역시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 덕분이다. 류현진은 2006년 신인 시절을 비롯해 2007년, 2009년, 2010년, 2012년 등 총 5차례나 탈삼진왕을 차지했다. 탈삼진 1위 5회 달성은 선동열과 타이 기록. 하지만 공식 시상 부문으로 인정된 1993년 이후로 따지면 류현진은 단독 1위인 셈이다. 만약 2013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류현진은 이 부문에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수상 기록을 세웠을 것이다.
정민철은 1994년과 1997년 탈삼진 1위에 올라 한화 구단 최초의 탈삼진왕이 됐고, 2018년 키버스 샘슨은 한화 외국인 투수로는 유일하게 탈삼진왕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
롯데, 삼성, 두산은 5차례씩 탈삼진 1위를 배출했다.
롯데는 초대 탈삼진 1위 노상수를 시작으로 최동원이 두 차례(1984년, 1987년), 주형광(1996년)과 댄 스트레일리(2020년)가 한 차례씩 탈삼진 1위에 올랐다.
삼성은 1985년 김시진이 가장 먼저 탈삼진 정상에 오른 뒤 1993년 김상엽, 2004년 배영수, 2014년 릭 밴덴헐크, 2015년 차우찬이 탈삼진 왕관을 썼다.
삼미~청보~태평양~현대로 이어진 구단에서는 3명(1983년 장명부, 1999년 김수경, 2000년 임선동)을 내놓았다. SSG 구단 역시 SK 시절이던 2001년 에르난데스에 이어 2008년 김광현, 2017년 메릴 켈리 등 3명의 탈삼진왕을 배출했다.
LG(2003년 이승호, 2013년 레다메스 리즈)와 NC(2023년 에릭 페디, 2024년 카일 하트)는 2차례씩 탈삼진 1위를 차지한 구단이다.
한편 역대 KBO 구단 중 탈삼진왕과 인연을 맺지 못한 곳은 2개 구단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쌍방울 레이더스와 2015년 창단한 막내 구단 kt 위즈다.
복수로 시즌 최다 탈삼진 부문을 접수한 선수는 역대로 총 6명. 5회씩 탈삼진 1위를 차지한 선동열과 류현진 외에 최동원, 정민철, 이대진, 배영수가 2회씩 달성했다.
한 시즌에 공동 탈삼진왕이 나온 건 딱 한 번 있었다. 2005년 삼성 배영수와 두산 리오스가 147탈삼진으로 영광을 나눴다.
역대 한 시즌 최다 탈삼진은 2001년 두산 미란다로 225탈삼진, 역대 최소 탈삼진 개수로 1위에 오른 투수는 1982년 롯데 노상수로 141개다. 1982년엔 팀당 80경기 체제였다.
야구 역사는 진화한다. 기록도 진화한다. 탈삼진 부문 역시 1980년대와 오늘날 마주하는 기록 가치는 달라졌다. 앞으로 누가 미란다의 한 시즌 225탈삼진을 넘어설지, 탈삼진 기록이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쳐나갈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