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와 트램 등의 대중교통이 무료인 도시가 있다. 더욱이 한 나라의 수도, 대도시에서 말이다.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여행을 시작한 건 무료 대중교통에 그 이유가 있었지만, 점차 도시 내부를 깊숙이 들여다볼수록 도시의 역사와 문화, 종교적 사실에 흥미가 크게 샘솟았다. 자긍심 넘치는 대담한 도시의 낯빛, 옛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수도였던 베오그라드의 자부심을 느껴보자.
강변에 조성된 공원과 산책길
버스와 트램, 트롤리버스로 구성된 베오그라드의 대중교통
대중교통이 무료인 유럽의 대도시
새로운 장소에 처음 발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때론 여행의 목적이 쉽게 충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것으로 성이 차지 않아 뭔가 확실한 목적을 찾고 정의하는 데 부단히 애를 쓰는 편이다. 나의 여행은 항상 그랬다.
그곳을 여행하는 이유가 바로 서 있지 않으면 어느 순간 중심을 잃곤 고꾸라져버린다. 몸보다는 정신, 새로운 장소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과 사고, 태도를 곧추 세워주는 어떠한 방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여행이 애초 정한 방향대로만 흘러가진 않는다는 사실 또한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대다수의 버스정류장은 항상 승객들로 북적이는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의 방향은 끝이 아닌 시작을 향해 움직인다. ‘나는 왜 이곳을 여행하는가?’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여행의 시작은 뜻밖에도 ‘대중교통’에 있었다. ‘유럽에서 무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대도시’라는 정보를 접하고서 이에 현혹되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여행을 시작했다.
베오그라드역 앞 버스정류장, 이곳에 정차하는 대다수의 버스가 공화국 광장으로 향한다. 잠깐의 기다림 끝에 버스 한 대가 천천히 정류장에 멈춰 섰고, 문이 열리자 승객들은 버스에 올라타 곧장 빈자리를 채운다. 이들을 따라 요금을 지불하지 않은 채 나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운전사는 나를 불러 세우지 않았으니, 듣던 대로 베오그라드의 버스는 무료가 맞았다. 현지인은 물론 외국인 거주자 및 관광객까지도.
베오그라드 시내는 차량 밀도가 높아 교통 체증이 심각하다.
비행기나 기차 등을 이용해 낯선 도시에 첫 발을 들였을 때, 여행자가 가장 먼저 찾고 고민하는 것은 숙소가 위치한 도심까지의 이동경로다. 특히 1인 여행자에게 선택지는 버스가 전부나 다름없다.
때문에 버스 요금을 지불하려면 카드 결제가 가능한지, 현금만 혹은 교통카드만 가능한지 그렇다면 교통카드의 구입처는 어디인지, 또 가까운 환전소는 어디인지, 환전소의 환율은 적당한지 등등 이동하는 데 필요한 온갖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첫 번째 임무다. 이 귀찮은 임무가 베오그라드에서는 필요치 않다니… 횡재한 기분이 따로 없었다.
베오그라드의 상징과도 같은 사바 강과 다뉴브 강의 풍경
베오그라드의 무료 대중교통 서비스는 2025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인구 170만 명의 이 도시는 지하철 시스템이 없는 몇 안 되는 유럽 주요 수도 중 하나다. 세르비아 당국은 2030년까지 지하철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계획은 여러 차례 지연되면서 착공조차 되지 않는 등 무기한 중단을 맞았다.
대다수의 버스정류장은 항상 승객들로 북적이는 모습이다.
지하철 건설을 환영하고 기대했던 이곳 시민들은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정부에 비판을 쏟아냈고, 이에 따른 정부의 보상이 바로 무료 대중교통 서비스 시행이었다. 이곳 시민들이 지하철 건설을 염원하는 가장 큰 배경은 베오그라드의 심각한 교통 체증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베오그라드의 도로 위 차량 수가 25만 대 이상 증가하는 등 차량 밀도가 매우 높아 시민들은 도시 곳곳을 이동할 때 몇 시간씩 끔찍한 교통체증에 시달려왔다.
베오그라드는 유럽에서 인구 50만 명 이상 도시 중 유일하게 버스와 트램, 트롤리버스 등의 대중교통을 무료로 제공하는 도시가 되었지만 지하철 건설의 지연과 도시의 교통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도사리고 있어 그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좌)강변에서 일몰을 감상하는 사람들 (우)강변에 조성된 공원과 산책길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도심의 거리들
베오그라드는 발칸 반도의 남동부 유럽에 위치해 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자, 그리스 아테네와 더불어 발칸 반도에서 가장 큰 도시권에 속하는 곳이다. 유럽에서 두 개의 큰 강인 사바 강과 다뉴브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유일한 대도시이기도 하며, 삼면이 두 개의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고대부터 강줄기의 수호자 역할을 해온 이곳의 지리적 위치는 예로부터 베오그라드를 ‘발칸의 관문’이자 ‘중앙 유럽의 문’으로 일컫는 배경이 되었다.
7,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도시에는 주변 채석장과 동굴 등지에서 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오그라드라는 도시명은 서기 878년에 지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길고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40번의 정복을 겪었고, 그중 38번이나 재건에 성공한 역사적 사실이 도시의 명성을 짐작케 한다.
(위로부터)강 주변 절벽 같은 능선에 위치한 고대 요새, 빅토르 동상이 자리한 일몰 명소
격동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베오그라드의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곳, 여행의 중심이 되는 장소가 바로 공화국 광장(Republic Square)이다. 솔직히 말하면 베오그라드는 ‘아름다운 수도’와는 약간 거리가 멀다. 유럽 도시 하면 흔히 떠올리는 유려한 건축물과 낭만적인 분위기, 동화 같은 미학의 풍경을 기대한다면 이곳 첫인상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공화국 광장에서 바라본 도시의 외관은 자긍심 가득하고 대담한 도시의 낯빛을 한껏 드러낸 모습에 가깝다. 격동의 혼란스러운 과거가 고스란히 담긴, 현재보다 오히려 밝은 미래를 향해 질주하는 활기 넘치는 역동적인 도시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위)세르비아 국립박물관이 있는 공화국 광장 입구 (아래)중세 세르비아 창시자인 슈테판 네마이나 동상과 그 뒤의 베오그라드 기차역 건물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을 본 따 지어진 국립극장, 보슈코 부하 극장이 있는 리우니오네 궁전, 세르비아 최대 규모이자 가장 오래된 국립박물관 등 공산주의 시대 유고슬라비아를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유럽연합(EU) 가입을 목표로 신식 스타일의 문화가 곳곳에 서려 있는 중심가.
이곳을 유유히 걸으며 베오그라드의 민낯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고대부터 베오그라드의 심장부였던 공화국 광장은 단순 도시를 이루는 중심 광장을 넘어 베오그라드 그 자체의 축소판으로 인식되는 곳이다.
(좌)공화국 광장의 중심이 되는 미하일로 거리 (우)베오그라드의 보헤미안 지구로 알려진 스카달리야 거리
베오그라드의 도심을 걷다 보면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가르는 기준이 불분명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도 그럴 게 대부분의 거리 풍경이 올드와 뉴를 한데 섞어 놓은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현지인들 사이에서 구시가지라 불리는 거리가 공화국 광장에서 동쪽으로 약 1km가량 떨어져 있다.
스카달리야(Skadarlija) 거리로 지칭되는 이곳은 자갈이 깔린 구불구불한 좁은 골목길이 여럿 나 있는, 베오그라드의 주요 보헤미안 지구로 알려져 있어 ‘파리의 몽마르트’와 닮은 장소라는 별칭이 붙는다.
보헤미안 감성이 묻어나는 스카달리야 거리 벽면 예술 작품
고대 도시 조직을 포함한 전통적인 도시 건축의 분위기를 보존하고 있는데다 19세기 베오그라드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로 인식되며 스카달리야 거리의 명성은 현재에 이른다. 특히 20세기 초 들어 세르비아의 배우와 작가, 시인, 화가들이 스카달리야 거리에 모여들었고 이는 도시를 보헤미안 거리로 변모시킨 배경이 되었다. 당시 이 거리에 자리한 여러 선술집들은 베오그라드 문화계의 유명 인사들이 모이는 장소로 각광받았다.
베오그라드의 보헤미안 지구로 알려진 스카달리야 거리
오늘날에도 날이 저물고 나면 레스토랑과 술집에선 도시의 전통 민속 음악이 울려 퍼지고 예술적 분위기에 흠뻑 취하고 싶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매년 여름 동안 열리는 스카달리야 축제에는 세르비아 전통 금관악기 연주단이나 전통 세르비아 의상을 입은 배우들이 거리를 따라 공연을 펼치는 등 세기를 이어온 보헤미안의 정신이 여전히 자갈길을 수놓는다.
도시의 자부심이 깃든 박물관부터 대성당까지
발칸 반도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교회 성당인 성 사바 대성당의 외관
유고슬라비아는 1918년부터 1992년까지 중앙 유럽과 발칸 반도에 자리했던 국가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세르비아 왕국을 중심으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가 모인 연합왕국으로 출범했다. 초창기 국명은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이었지만 1929년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국명이 바뀌었으며, 1948년 유고슬라비아 초대 대통령인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의 주도로 사회주의 국가인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재탄생했다.
베오그라드는 이 국가가 존재했던 시기 동안 근간을 이루는 수도였다. 유고 연방의 정치적, 외교적 주도권을 잡았던 도시로서, 유고슬라비아의 유산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땅이 바로 베오그라드다. 이러한 흥미롭고 찬란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 유고슬라비아 박물관이 도시의 중심부에 있다.
(위)유고슬라비아 박물관 건물 외관 (아래)성당 모자이크의 40% 이상은 금박으로 만들어져 화려하다.
자긍심 강한 베오그라드의 정체성은 종교에서도 나타난다. 세르비아 국민의 90% 이상이 정교회 신자일 만큼 동방 정교회가 지배적인 교파다. 교회와 수도원, 소수 종교의 예배 장소가 세르비아 전역에 자리하는데, 베오그라드에는 1만 2,000명의 신도를 수용할 수 있는 정교회 성당인 성 사바 대성당이 대표적이다. 베오그라드 관광명소에 일순위로 올라 있는 성 사바 대성당은 이곳 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이자 랜드마크로서 웅장한 외관이 특징으로 꼽힌다.
(좌)현존하는 교회 중 가장 넓은 기도 공간을 갖춘 성 사바 대성당의 내부 높이는 65m에 달한다. (우)금빛 돔 벽화의 모자이크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축복을 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변화하는 정치 상황과 유고슬라비아에서 공산주의가 지배적인 이념적 입장을 취하던 당시 성 사바 대성당의 건설은 주변국의 폭격과 침공으로 공사가 여러 차례 중단되는 등 온갖 부침을 겪어야 했다. 성당은 1935년 착공이 시작된 이래 2004년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그 위용을 드러낼 수 있었다.
1962년 5월 25일, 요시프 브로즈 티토 대통령의 70번째 생일을 기념해 건립된 유고슬라비아 박물관은 건국부터 해체에 이르기까지 유고슬라비아의 이념을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하는 장치로서 역할을 하는 장소다. 유고슬라비아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사진과 예술, 역사 문서, 영화, 무기, 보물 등 약 20만 점이 넘는 특별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 방문객에게 지식과 경험을 제공한다.
(위)유고슬라비아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박물관 내부 전시공간 (아래)사진과 역사 문서, 무기, 보물 등 약 20만 점이 넘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 박물관 건물 중 하나는 요시프 브로즈 티토 기념센터로 활용되고 있는 중이다. 실리외교를 통한 유고슬라비아의 번영을 이룩한 그의 정치적 삶과 업적을 보여주는 소장품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1980년 5월 4일 사망한 요시프 브로즈 티토 대통령은 기념관 부지 내에 있는 꽃의 집에 묻혔다. 박물관의 가장 평화로운 장소에 반듯하게 드러누워 있는 그의 무덤은 개인의 역사이자 도시와 국가, 왕국의 역사를 상징한다.
(우)유고슬라비아 초대 대통령 요시프 브로즈 티토를 기리는 기념센터 (아래)기념관 부지 내 꽃의 집에 묻힌 요시프 브로즈 티토 대통령의 묘
“‘성 사바’는 세르비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인물 중 한 명이다. 성 사바는 형들이 일으킨 내전을 종식시키고 세르비아 정교회를 창시해 초대 대주교가 된 인물이다. 1594년 4월 27일 오스만 제국은 베오그라드의 브라차르 언덕에서 성 사바의 유해를 불태웠고, 그 유해 위에 대성당이 세워졌다.”
65m 높이에 있는 돔 형태의 벽화를 비롯한 성당 내부 그림 예술은 성 사바를 중심으로 세르비아의 성인들에 관한 기독교적 이야기가 담긴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성 사바 대성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돔에 그려진 두 손으로 축복을 내리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이는 세상의 심판은 오직 주님, 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 사바 성당 모자이크의 40% 이상은 금박으로 만들어져 화려함이 특징이다.
성당 벽화의 40% 이상은 금박으로 만들어져 화려함이 극에 달한다. 총면적 1만 5,000m2에 달하는 모든 이미지를 만드는 데 600명 이상의 예술가들이 모자이크 작품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베오그라드의 정중앙에 위치한 정교회도 전 세계에서 비할 데 없는 규모를 자랑하고 현존하는 모든 교회 중 가장 넓은 기도 공간을 갖추고 있는 성 사다 대성당. 베오그라드 사람들의 강인한 믿음과 긍지, 자부심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