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인텔 '투자축소' 속 TSMC 독주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대만 TSMC의 독주 체제가 공고해지고 있다. TSMC가 인공지능(AI)의 혜택을 홀로 누리며 성장세를 이어가는 반면, 삼성전자와 인텔은 수주부진과 누적된 적자로 설비투자를 줄이는 등 위기에 처했다. 후발주자인 삼성전자와 인텔이 TSMC를 추격할 확실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선두와 희비가 명확히 갈리는 양극화가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TSMC의 매출은 올해 3분기 시장 기대치를 소폭 웃도는 235억달러(약 32조 2000억원)를 기록해 전 분기 대비 13%, 전년동기 대비 36% 증가했다. 매출에서 원가를 제외한 금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매출총이익률은 57.8%로 전분기보다 4.7%p 늘었다.
TSMC의 매출은 선단공정과 고성능컴퓨팅(HPC)을 중심으로 극대화됐다. 3㎚(나노미터) 공정 매출 비중은 20%로 전분기보다 5%p 확대됐다. 전체 매출에서 7㎚ 이하 공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69%에 달한다. 응용처별로는 HPC 부문이 전체 매출의 51%를 점유했다. 직전분기보다 HPC 매출은 11% 증가했다.
선단공정과 고부가가치 응용처 중심의 실적 상승세는 TSMC가 AI 반도체 부문에서 삼성전자, 인텔 등 경쟁사보다 강력한 기술지배력을 갖춘 결과로 풀이된다. AI 연산용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설계하는 엔비디아를 비롯해 AMD와 애플, 퀄컴 등 주요 고객사의 주문이 TSMC로 몰리고 있다.
TSMC는 올해 설비투자가 300억달러(약 41조원)를 소폭 상회할 것으로 전망했다. 직전 전망인 300억~320억달러(약 43조8000억원)에서 하한에 가까운 액수로 조정한 셈이다. 본사가 있는 대만뿐 아니라 미국, 일본 등에서 해외 공장 건설이 추진되는 가운데 설비투자 규모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선단공정 생산능력 확대와 AI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칩온웨이퍼온서브스트레이트(CoWoS) 등 후공정 규모를 올해 전년 대비 2배 확대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가 이어지는 흐름이다.
삼성전자와 인텔은 파운드리 시장에서 수익성 악화와 적자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성전자의 시스템LSI사업부를 포함한 파운드리사업부는 올 3분기 1조5000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영업적자 규모가 2조원을 웃돈 가운데 상반기 1조원 이상의 적자까지 더해져 손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애초 하반기 양산을 시작할 것으로 기대됐던 삼성전자의 차세대 AP인 '엑시노스 2500'는 내년 초 출시될 스마트폰 신제품 '갤럭시 S25' 시리즈에 탑재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중론을 이룬다. 삼성전자의 공정계획에 따르면 하반기 3㎚ 공정의 본궤도에 해당하는 2세대 'SF3'의 가동이 원활히 이뤄져야 했지만, 물량이 많지 않은 스마트워치용 '엑시노스 W1000' 양산 이후 이렇다 할 실적을 쌓지 못했다.
인텔은 지난 2021년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한 지 3년여 만에 지지부진한 실적으로 연내 분사를 결정했다. 출범 이후 줄곧 적자가 이어졌고, 올 들어 상반기에만 53억달러(약 7조3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매출 95%가 인텔 자체 물량으로 추정될 만큼 신규 수주가 부진했기 때무이다. 연말 가동될 예정이었던 2㎚급 20Å(옹스트롬) 양산도 백지화됐다. 삼성전자와 인텔이 공언한 공정 로드맵을 지키지 못하면서 선단공정 신뢰도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인텔은 과거 비용부담을 감수하며 추진했던 공격적인 설비투자를 보류할 가능성이 높다. 계속된 적자로 추진동력을 상실했고, 스마트폰과 개인용컴퓨터(PC) 등 소비자용 정보기술(IT) 시장 침체로 수주가 부진하기 때문이다. 당장 수요가 쏠리는 AI 관련 부문은 TSMC가 독식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국내 평택캠퍼스의 제4공장(P4)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파운드리 생산설비 발주가 보류됐고,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 공사도 지연되고 있다. 인텔 역시 독일과 폴란드에 설립하기로 한 공장 건설을 미뤘다.
이진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