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꺼리면 중국인 쓰면 그만?'...아리셀 참사 희생자 대부분이 중국동포인 이유
“단순노동에, 최저임금에, 거리도 먼데 이런 데 한국인이 누가 오겠어요.”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가 발생한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인근에서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는 A씨는 왜 중국인 동포 사망자가 많은 것 같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인근 식당, 공장도 안산이나 시흥에서 중국인들 공급받는 곳이 많아요."
재한 중국동포 단체인 전국동포총연합회 회장 김호림 씨도 “중국 국적 사망자 대부분이 안산 인근에 거주하던 동포들”이라며 이들 대부분이 “인근에서 모여 버스로 출퇴근하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관계자들은 중국 동포들이 이런 인력 업체를 통해 열악한 일자리에 취업하는 일이 매우 흔한 일이라며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체 23명의 사망자 중 17명이 중국인이며 그 중 상당수가 재외동포비자를 가졌던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지방의 노동 환경을 잘 아는 관계자들에게 희생자들 대부분이 중국 동포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한국인이 꺼리는 자리를 채우는 중국인들
아리셀에 인력을 공급했던 업체인 메이셀은 참사 5일 전인 6월 19일까지도 각종 구직 사이트에 구인글을 올렸다.
구인글에 명시된 근로 조건은 좋다고 보기 어렵다. 임금은 최저시급 9860원이고, 통근버스가 출발하는 시화공단과 아리셀은 차로 약 30km 거리에 있다. 면접이나 경력에 대한 요구사항도 없다.
메이셀은 중국 동포 구인구직 전문 사이트는 물론 한국인들이 이용하는 사이트에도 구인글을 게시했지만 결과적으로 중국 동포가 많이 채용됐다.
법무법인 원곡의 최정규 변호사는 “그간 공장 임시직은 내국인 중에서도 고령층이 주로 선호했지만, 최근엔 메이셀의 구인 공고에서 보듯 50세 이하인 젊은 층을 원하는 곳이 많다”며 “최저임금, 나이, 생산직, 임시직 등 조건을 충족할 만한 계층이 이제는 거의 동포들만 남은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동포 남성들은 주로 임금이 높은 공사장을 선호한다”며 여성 비율이 높은 이유에 대해 추측했다.
현재 한국에 거주 중인 중국 동포는 지난해 말 기준 약 65만 명으로 체류 외국인 약 250만 명의 26.4%를 차지한다. 이들 동포들이 한국인들이 취업을 꺼리는 산업 현장을 메워왔음이 이번 참사를 통해서 또 한 번 드러났다.
가장 많고 가장 유연한 노동자, 재외동포
관계자들은 특히 동포들이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다는 특성 때문에 임시직에 취직하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한다.
이창원 이민정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아리셀 파견 근로자 중 특히 중국 동포 근무자가 많았던 이유에 대해 “일반적인 외국인 근로자와 달리 동포들은 일용직 고용이 가능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동포를 제외한 외국인 근로자들은 대부분은 비전문취업(E9) 비자를 통해 입국한다. ‘고용허가제'로 불리는 이 제도는 고용노동부가 직접 기업과 외국인 구직자를 연결하는 제도다. 때문에 근로계약, 조건 등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직접 감독한다.
“E9은 정부가 취업을 보증하고 데리고 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상시 고용을 해야 하고 어느 정도 산업안전 교육도 시키고 고용주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소지도 있어요."
반면 동포들은 방문취업비자(H2)나 장기 체류가 가능한 재외동포비자(F4)를 소지하고 있다.
특히 전체 약 85만 명의 재외동포 중 약 55만 명이 소지한 재외동포 비자는 엄밀히 말해 고용 비자가 아닌 체류 비자이기 때문에 노동조건에 대한 규정이 비교적 덜 까다롭다.
이 실장은 “다른 이주노동자들이 직장 이동도 제한되고 장기체류도 불가능한 데 반해 동포 비자로는 직장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장기 체류도 할 수 있는 등 혜택이 많다"면서도, 한편으론 이 비자가 “개인의 선택과 책임성에 좀 더 무게를 뒀다"며 “일용직이나 위험한 환경에 노출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전국동포총연합회 김호림 씨도 "정보가 부족한 동포들이 처음엔 대부분 인력 업체를 통해 취직한다"며 "인력 사무소들은 보험도 잘 안 들어주는데, 동포들은 한국 법도 잘 모르고 하니까 그냥 일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충남 아산의 고려인 밀집지 인근에서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는 이모 씨는 “단기 계약도 가능한 데다, 불법체류 이슈도 없기 때문에 최근엔 고용주들이 동포들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회사 이름도 모르고 일하는 사람도 많아요'
문제는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재외 동포들이 위험한 노동 환경에 노출되거나 사후에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메이셀도 이번 참사 사망자들에 대한 산재 보험을 들지 않았다.
아산 신창면에서 아들과 함께 거주하는 고려인 동포 김이리나 씨도 2020년 한국에 와 불법파견으로 취직했다고 했다.
“인력 업체를 통해 일을 구했다"는 그는 인근의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했다. 그도 아리셀 희생자들처럼 “인력사무소가 제공한 승합차를 타고 공장에" 다녔다.
“어느 날 공장 관리자가 원래 안 하던 일을 시켰어요. 페인트를 칠하기 전에 부품을 화학물질에 담가 세척하는 과정인데, 장갑과 마스크도 없이 맨손으로 작업을 하게 했어요."
그는 이후 “토를 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 인력사무소에 전화해 일을 못 하겠다고 말한 뒤 일을 관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인력 업체를 통해 고용됐지만 해당 업체는 공장과 떨어진 곳에 있고, 근로 지시는 원청이 하는 전형적인 불법 파견의 형태다.
김 씨는 "이후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지금도 공장에서 4대 보험 없이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다.
아산 이주노동자센터의 우삼열 소장은 “오랜 기간 이주노동자들을 봐왔지만, 동포들의 불법 파견 노동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고 말했다.
"퇴직금을 못 받아서 찾아오는 동포들에게 물어보면 근로계약서도 쓴 적 없고 회사 이름도 모른다는 경우도 많아요."
그는 또 “고용주들 입장에선 동포들을 가장 선호할 것"이라며 “인력 업체들이 언제든 필요하면 봉고차로 딱딱 인원 맞춰서 데려올 수 있고, 또 언제든 그만 나오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빈 자리는 외국인으로 채우면 그만?'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가 노동 현장에서 이어진 오랜 관행들이 겹쳐 발생했다고 입을 모은다.
광주민중의집 운영위원 김춘호 변호사는 “제조업 공장에서 불법 파견은 오래된 관행"이라며 “기업들이 비용을 절감하고 산재 등에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많이 써왔다"고 말했다.
현행 파견법은 제조업체엔 원칙적으로 파견을 금지하고 있다. 아리셀은 메이셀을 통한 채용이 "적법한 도급"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도급이 되기 위해선 메이셀이 같은 공장에 상주하며 근로 지시를 아리셀이 아닌 메이셀이 했어야 한다.
하지만 메이셀은 "인력 공급만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이제 한국인들은 이런 열악한 일자리를 찾지 않으니, 최근엔 자연스레 동포들이나 미등록이주민(불법 체류자)들이 이런 자리로 공급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정규 변호사도 “고용노동부는 사실상 불법 파견 문제를 방치해왔다"고 지적한다.
그는 “파견엔 여러 예외가 허용되는데, 고용노동부는 파견을 받으려는 기업들이 이 예외를 적용하기 위해 사전 허가를 받거나 사후 신고를 해야 하는 규정도 만들어놓지 않았다"면서 “사실상 예외적으로 불법파견을 마음껏 하도록 내버려둔 셈"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파견사업주들의 파견 현황을 보고받으며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또 보도자료를 통해 "매년 제조업, 유통업을 중심으로 불법파견을 근로감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단속 건수는 2022년 489건, 2023년 465건으로 미미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도 이번 참사에 대해 “한국인들이 오지 않는 자리에 그저 외국인들을 집어넣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인들이 임금이 적고 위험해서 안 오면 한국인이고 외국인이고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급여와 안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먼저 논의했어야 하는데, 그저 외국인을 채워넣기만 했죠.”
재외동포 노동환경, 이대로 괜찮을까?
일각에선 동포들도 사실상 한국 사회의 노동력 부족을 메우고 있는 만큼, 이들의 노동 환경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동포 비자 정책이 한국의 노동력 수요를 고려해 다듬어진 측면이 있어요."
이민정책연구원 최서리 연구위원은 재외동포 비자 정책은 명목상 동포의 귀환을 돕는 인도적인 목적이지만, 그 안에선 한국의 부족한 노동력을 이들을 통해 보충하기 위한 의도도 발견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내국인이 많은 일자리는 동포들이 취업을 못 하게, 일손이 부족한 일자리는 취업할 수 있게 비자 정책이 바뀌어왔어요."
일례로 재외 동포들이 단기 비자인 방문취업비자(H2)에서 장기 체류가 가능한 재외동포비자(F4)로 비자를 전환하기 위한 요건 중엔 '지방 소재 제조업체에서 2년 이상 근무'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법무부는 또한 지난해 5월부터 이전까지 금지하던 재외동 비자 소지자의 식당, 숙박업소 등 취업을 허용했다.
법무부는 그러면서 “구인난 해소를 위해 재외동포 취업 범위를 확대한다”며 “구인난을 겪고 있는 산업 분야와 인구감소지역 인구 유입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우삼열 소장은 “어찌 보면 필요에 의해서 데려온 사람들인데 이런 구조 속에서 계속 살아가게 하는 것이 맞냐"고 말했다.
그는 "단기취업비자로 오는 외국인들은 최소한의 노동권에 대한 교육은 받고 온다"며 "한국 사회가 앞으로도 재외동포들로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려 한다면 이들에게도 최소한의 노동권 교육을 한다든지, 이들의 노동 환경을 지켜봐야 하지 않나"고 물었다.
이창원 실장도 "이번 참사를 계기로 재외동포들의 노동 현황에 대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