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누아르·피카소…거장의 궤적을 만나다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展

빈센트 반 고흐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미술사의 두 거장이 남긴 그림이 아름답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파블로 피카소도 그렇다. 그림을 잘 몰라도 다른 화가 작품과 뭔가 다르다는 건 척 보면 알 수 있다.
우리의 이해는 대개 여기까지다. 어째서 이 작품들이 감동적이고 위대하다는 건지, 왜 인류 역사상 불멸의 명작으로 남은 건지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서양미술사 책을 한 번쯤 사본 경험은 있을 테다. 하지만 책장을 넘긴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큰맘 먹고 산 미술사의 벽돌책은 장식용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도심 곳곳에 세계적인 미술관과 명화가 즐비한 뉴욕, 런던, 파리와 달리 국내에서는 원화를 실제로 만나기 어렵다. 이런 명작이 아직도 교과서에 실린 삽화로만 느껴지는 이유다.
한국경제신문사가 미국 디트로이트 미술관과 함께 5월 28일부터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 2관에서 개막하는 ‘인상주의를 넘어: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전’은 모처럼 열리는 체계적인 서양미술사 전시다. 전시에는 르누아르, 에드가르 드가, 폴 세잔, 고흐, 앙리 마티스, 바실리 칸딘스키, 피카소,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등의 작품이 등장한다. 인상주의부터 후기인상주의, 야수주의, 표현주의, 입체주의, 추상 등 미술사 교과서의 목차와 함께 반드시 나오는 이름들이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중반까지 이어진 서양 미술의 흐름이 이들의 명작 52점을 통해 전시장에 펼쳐진다. 빛을 그린 인상주의 화가들의 시선이 이후 어떤 작품으로 이어졌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디트로이트를 ‘모터시티’로만 연상한다면 더 의미 있는 발견의 시간이 될 것이다. 디트로이트가 경제적 황금기를 보내던 시절 세계에서 모은 작품들이어서다. 전시장에 펼쳐진 미술사의 맥락 안에서 왜 당시에 이들 그림이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는지, 하지만 훗날 왜 위대하다고 평가받는지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책을 박차고 나와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명작들을 만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상상 속 천사보다 신발끈 묶는 발레리나…눈앞의 세상을 마주하다
사실주의에서 추상까지…명작 52점으로 본 서양미술 해방史

좋은 그림은 어떤 그림일까.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서양 화가들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했다. “그리스 신화의 신(神), 성경 속 영웅, 역사적 사건 같은 ‘고귀한 주제’를 그린 그림이다.” 반면 눈앞의 농부, 빨래하는 여인을 그린 그림은 격이 떨어진다고 여겼다.
그 오랜 규칙을 깬 사람이 있다. 평범한 사람의 일상, 화가 자신의 감정과 영혼으로까지 그림 영토를 확장한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다. 이후 서양 미술 영역은 폭발적으로 확장된다. 쿠르베가 그린 ‘시냇가에서 잠든 목욕하는 여인’은 다음달 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 2관에서 막을 올리는 ‘인상주의를 넘어: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전’을 여는 첫 번째 작품이다. 당시 “왜 그런 별 볼 일 없는 주제를 그리냐”는 질문에 쿠르베는 답했다. “천사를 본 적이 없으니 천사를 그릴 수 없다”고. 줄무늬 드레스와 옷가지를 벗어두고 개울가에서 잠든 여성을 그리는 그 순간, 회화의 주인공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됐다.
세잔의 사과, 고흐의 붓질

사실주의가 연 이 문을 통해 인상주의 화가가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효과를 그림에 담았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안락의자에 앉은 여인’(1874)에서 화가는 여인 얼굴과 팔 위로 빛이 쏟아지는 순간의 ‘인상’을 붓질로 잡아냈다. 에드가르 드가의 ‘녹색 방의 무용수’(1879)는 무대 뒤편에서 신발 끈을 묶는 발레리나 일상을 포착했다. 이 시기 유럽에 유입된 우키요에(일본 목판화)가 이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줬다. 전시에서는 우키요에가 서양 근대 회화에 준 충격을 별도 코너로 다룬다.
인상주의가 주류가 되자 후배 화가들은 인상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간 새로운 화풍(후기인상주의)을 찾았다. 인상주의 그림에는 손에 잡히는 ‘견고한 형태’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 사람이 폴 세잔이었다. “인상주의를 더 견고하고 지속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다.”
전시에 나온 ‘생트빅투아르산’(1904~1906)에서 세잔은 고향인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풍경을 기하학적 면의 집합으로 해체하고 재조립했다. 원기둥, 구(球), 원뿔 같은 기본 형태 몇 가지로 자연의 변하지 않는 모습을 캔버스에 고정하는 게 그의 목표였다.

세잔이 사물을 보는 방식을 바꿨다면 빈센트 반 고흐는 ‘누가 어떤 마음으로 그리느냐’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오베르의 우아즈 강가’(1890)는 그가 생을 마감하기 70일 전, 매일같이 작품을 쏟아내던 때 완성한 그림이다. 풍경을 감정 언어로 바꾼 강렬한 붓터치와 보색 대비를 통해 관람객들은 그가 살아온 삶의 고뇌와 격렬하게 흔들리던 정신을 마주한다.
색채의 해방, 형태의 해방
여기서부터 전시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현실에 묶여 있던 색채가 해방돼 자유롭게 표현된 ‘색채의 해방’이다. 사진이 보급되면서 그림은 현실과 똑같아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오딜롱 르동의 ‘나비의 환상’(1910~1912)은 꿈과 무의식을 담고 있다. 눈에 보이는 현실 너머 내면 세계를 상징적 이미지로 표현한 상징주의다.
앙리 마티스는 ‘창문’(1916)과 ‘양귀비’(1919)에서 하늘이 반드시 파랄 필요도, 나무가 반드시 초록일 필요도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보려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꽃이 있다”던 그의 말처럼 마티스 그림에서 색채는 대상을 묘사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 됐다. 현실과 다른 파격적인 색채를 보고 비평가들은 ‘야수파’란 이름을 붙였다.
내면의 감정 자체를 화면에 쏟아부은 ‘표현주의’는 이런 맥락에서 등장했다. 스스로를 ‘다리파’ 혹은 ‘청기사파’로 칭한 카를 슈미트로틀루프, 에밀 놀데, 막스 페히슈타인 등의 작품이 나왔다. 강렬한 원색과 뒤틀린 형태로 불안, 고독 같은 감정을 드러낸 작품이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흰 형태를 위한 회화 연구’(1913)는 색과 형태가 현실 재현에서 완전히 풀려나 음악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순간을 보여준다. 이런 전시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추상화라는 양식이 왜, 어떻게 등장했는지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형태를 그린 ‘형태의 해방’이다. 파블로 피카소는 “자신의 방식으로 자연을 분석하고 표현하라”는 세잔의 가르침을 가장 과격하게 밀어붙인 사람이다. 사물을 앞, 뒤, 옆에서 동시에 보고 그 파편을 하나의 화면에 재조립한 입체주의가 이렇게 탄생했다. 르네상스 이후 400년간 지속된 서양 미술의 절대적 규칙, 원근법을 과감히 포기한 것도 그다.
전시에서는 1905년 장밋빛 시기의 ‘광대의 얼굴’에서 시작해 1909년 초기 입체주의 ‘마누엘 팔라레스의 초상’, 1923년 신고전주의 ‘안락의자에 앉은 여인’, 1938년 ‘책 읽는 소녀’, 1960년 ‘앉아 있는 여인’이 함께 소개된다. 55년에 걸쳐 평생 화풍을 부수고 다시 구축한 피카소 화풍의 변천사를 전시 하나로 따라갈 수 있다.
영혼의 화가, 모딜리아니
마지막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가 장식한다. ‘남자’ ‘여인’ ‘모자를 쓴 청년’ 등 그의 전형적인 화풍이 드러난 초상화 세 점이 나온다. 길게 늘어난 얼굴, 비어 있는 눈동자. 인간 내면을 그리고 싶었던 모딜리아니는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될 때 당신의 눈동자를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느 화파에도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며 ‘파리파’를 자처했다. 국내에서 모딜리아니 원화를 세 점이나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쿠르베의 사실주의에서 출발해 모딜리아니의 파리파까지. 전시 7개 섹션을 지나고 나면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중반까지 서양 미술이 왜, 어떻게 흘러갔는지 맥락이 잡힌다. 단순한 교양과 지식을 넘어 새로운 시대를 만나 인간의 정신과 표현이 어떻게 확장되는지 두 눈으로 느낄 수 있는 전시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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