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야당안 거부한 기재부…‘허점 숭숭’ 정부 논리 뜯어봤다
여론대응 자료집 보면 논리 곳곳 허점
내년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시행 여부를 둘러싼 정치권의 샅바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더불어민주당의 절충안을 거부하고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쪽 방어 논리에 허점이 적지 않다.
20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기획재정부는 기존 정부안인 금투세 시행 유예를 유지하겠다는 태도다. 금투세는 국내 상장 주식·공모 주식형 펀드(국내 주식형 ETF 포함) 양도소득이 연 5천만원, 이외 채권·파생상품·해외 주식·비상장 주식 등의 양도차익이 연 250만원을 초과하면 초과액에 20% 세율(3억원 초과분은 25%)로 세금을 매기는 제도다. 현재 세법상 ‘대주주’에게만 과세하는 상장 주식 양도소득세를 거래 차익 연 5천만원을 넘는 모든 투자자로 확대하는 까닭에 개인투자자들의 반대가 많다.
정부는 애초 내년으로 예정된 금투세 시행 시기를 오는 2025년으로 2년 늦추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금투세 시행에 맞춰 0.15%로 낮추려던 증권거래세율은 내년 0.20%로 유지하고, 기존 주식 양도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현재 ‘종목당 주식 보유액 10억원 또는 지분율 1%(코스닥 2%) 이상’에서 ‘종목당 100억원 이상’으로 높이는 방안을 함께 추진 중이다.
민주당은 지난 18일 정부안 조건부 수용 입장을 밝혔지만, 기재부 쪽은 세수 감소 등을 이유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견해다. 민주당은 금투세를 2년 유예하되, 내년 증권거래세율을 0.15%로 인하하고 주식 양도세 과세 대상 대주주 기준은 현행대로 유지하자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나 기재부가 여론 대응을 위해 작성한 자료집을 뜯어보면, 주먹구구식 통계 인용 등 정부 논리도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난다.
①통계수치 과장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통계 수치 과장’이다. 정부는 자료집에서 “주식 보유 상위 0.5%가 국내 상장 주식의 49.4%(2021년 3월 시가총액 기준)를 갖고 있어 금투세 과세 시 ‘큰 손’의 증시 이탈로 주가가 하락하는 등 일반 투자자가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는 논리를 폈다. 문제는 이 ‘상위 0.5% 주주’에 상장사 지배력 유지를 위해 지분 매각 가능성이 없는 대주주들이 포함된다는 점이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상장사 오너 일가의 주식은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팔 수 없는 주식이 다수”라며 “금투세 과세로 큰 손들이 주식을 대거 매도해 소액주주도 영향을 받으리라는 건 지나친 우려”라고 지적했다.
기재부는 “최근 한국과 미국의 기준(정책)금리가 역전된 상황에서 금투세가 도입되면 국내 자본 유출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금투세가 도입되어도 외국인 투자자는 ‘거주지 과세 원칙’에 따라 한국에선 상장 주식 양도세를 대부분 내지 않고 거래세만 부담한다.
②입맛대로 인용
특정 수치를 ‘제 논에 물 대기’ 식으로 인용한 사례도 있다. 예를 들어 기재부 쪽은 금투세 유예 시 내년부터 2년간 국내 개인투자자 감세 효과가 5천억원(증권거래세 인하)에 달하지만, 금투세를 예정대로 내년 시행하면 반대로 3천억원 증세(금투세 시행 1조6천억원-증권거래세 인하 1조3천억원)가 이뤄진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런 세수 효과는 투자자별로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상장 주식 거래 차익이 연 5천만원 이하로 금투세 과세 대상이 아닌 소액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정부의 제도 유예로 주식을 팔 때 내는 거래세를 2년간 수천억원 더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 사례도 입맛대로 해석한 측면이 있다. 기재부 쪽은 정부가 현재 주식 양도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 완화(종목당 보유액 10억→100억원)를 추진하는 근거로 미국 사례를 든다. 미국도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개인이 1년 이상 보유한 주식의 양도세율을 기존 10%에서 0%로 낮춰준 전례가 있다는 거다. 그러나 미국은 근로·사업 등 종합소득이 4만400달러(약 5400만원, 부부 합산 8만800달러) 이하인 중·저소득 투자자에게 세율 0%를 적용하는 등 대주주 혜택을 강화하는 한국과는 정책 방향이 뚜렷하게 다르다.
③제도개선엔 뒷짐
정부가 투자자 편의·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에 뒷짐을 진 모습도 엿보인다. 기재부가 내년에 주식 양도세 부과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완화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큰 손’들의 주식 매도를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증시에선 상장 주식의 ‘대주주 판단 기준일’을 매년 말로 정한 까닭에 연말마다 양도세 회피 물량이 시장에 쏟아진다는 불만이 적지 않았다. 이런 증시 왜곡 문제에 대해 정부는 진작에 대주주 판단 방법 변경 등 행정적 보완책을 내놓을 수 있었음에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금투세를 도입하기로 한 상황에서 기존 제도를 손보면 시장에선 현행 제도를 계속 유지하려는 것이라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소액 주주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기업 이사가 회사뿐 아닌 모든 주주를 위해 일하도록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 이익’을 반영하는 상법 개정이나 주주 배당 강화 논의 등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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