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런 공포 확산에… 금융당국 ‘선제적 리스크 관리’ 주문
‘방화벽’ 높여 선제적 리스크 관리
경기 대응 완충 자본 등 적립 추진
충당금 정비도 상반기 완료·시행
손실 흡수능력 갖도록 체질 보강
은행권 “시장 안심 차원 조치” 분석
세계 9대 투자은행(IB)으로 꼽히는 크레디트스위스가 한때 파산 위기로 몰리면서 글로벌 국제유가 급락과 안전자산 선호 등 글로벌 금융시장의 공포 상황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현상들이 속속 나타나는 중이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5일(현지시간)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3.72달러 떨어진 67.6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전일 대비 배럴당 5.2%나 하락한 것으로 배럴당 70달러 선을 내주며 2021년 12월3일 이후 최저가로 밀렸다.
미국 CNN 방송은 이날 유럽 금융시장 위기를 보도하며 “크레디트스위스와 실리콘밸리은행(SVB)은 엄밀히 말하면 별개의 사건이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금융시장에서 군중심리는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전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이미 지난달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인 72억9300만스위스프랑(약 1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연간 순손실을 발표하며 ‘제2의 리먼브러더스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을 받아왔다. 공교롭게도 사우디국립은행의 추가 재정 지원 불가 방침이 SVB 사태 이후 터져 나오며 미국과 유럽의 별개의 사건이 ‘공포’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연결됐다.
피터 부크바 블리클리금융그룹 최고투자책임자는 “크레디트스위스의 위기는 지난 수년간 느리게 진행되던 자동차 사고와 같았다”면서 “하지만 오늘 뉴스는 당연히 SVB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 당국이 국내 은행권에 ‘방화벽’을 더 높이 쌓으라고 주문하고 나섰다. 당초 은행권 경영 및 관행 제도 개선 차원에서 위기 대응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었는데,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크레디트스위스(CS) 위기설 등 글로벌 금융위기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더욱 강력한 자본건전성 확충 대책 마련이 필요해졌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16일 ‘제3차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개선 실무작업반’ 회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은행권이 향후 불확실성에 대비해 충분한 손실흡수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위한 건전성 제도 정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 당국이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주문한 것은 최근의 금융 불안정성 확대도 문제지만 국내 은행 자본 적정성에도 불안한 구석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융위는 “2022년부터 금리·환율의 가파른 상승으로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다”며 “지난해 9월 말 기준 보통주자본비율은 12.26%로 전년 말 대비 하락하고 있고 유럽연합(EU·14.74%), 영국(15.65%), 미국(12.37%) 등 주요국과 비교해도 자본 적정성이 상대적으로 미흡하다”고 밝혔다. 이날 금감원이 발표한 올해 1월 말 기준 국내 은행 원화 대출 연체율은 0.31%로 전월 말 대비 0.06%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가계대출의 연체율은 0.55%로 전월 말 대비 0.09%포인트 올랐다.
금융 당국은 우선 2016년 제도 도입만 하고 실제 활용은 하지 않은 경기대응완충자본(CCyB)의 활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경기대응완충자본은 신용팽창 시기에 추가 자본을 적립하도록 하고 신용 축소·경색 때엔 적립 자본을 해소하는 제도다.
은행권에서는 금융 당국의 조치가 시장 안심 차원이며 국내에는 SVB 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 연체율이 조금씩 오르는 점 등이 뇌관이 될 수 있지만, 은행들이 위기에 대비해 충당금을 많이 적립해놨고 최근에 이익도 많이 났으니 자기자본을 올리는 등의 노력을 더할 것”이라며 “금융 당국에서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만큼, SVB 같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회의에서는 ‘돈 잔치’ 비판을 받는 은행권의 성과보수 체계와 희망퇴직금 관련 개선 방향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다. 금융위에 따르면, 국내 5대 주요 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2조6908억원, 이자이익은 36조9388억원이었다. 5대 주요 은행은 성과급에 1조9595억원을, 퇴직금에 1조5152억원을 각각 지출했다. 특히 1인당 퇴직금은 5억4000만원에 달한다. 김 부위원장은 “최근 은행권 대규모 수익은 임직원 노력보다 코로나19 및 저금리 지속 등으로 대출 규모가 급증한 상황에서 금리 상승이라는 외부적 요인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과 성과급이 사실상 고정급화돼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꼬집었다. 이어 “성과보수 체계를 투명하게 공시하는 등 은행권이 스스로 개선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필웅·이도형·이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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