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런 공포 확산에… 금융당국 ‘선제적 리스크 관리’ 주문

서필웅 2023. 3. 1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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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대출 연체율 상승… 불안 잠복
‘방화벽’ 높여 선제적 리스크 관리
경기 대응 완충 자본 등 적립 추진
충당금 정비도 상반기 완료·시행
손실 흡수능력 갖도록 체질 보강
은행권 “시장 안심 차원 조치” 분석

세계 9대 투자은행(IB)으로 꼽히는 크레디트스위스가 한때 파산 위기로 몰리면서 글로벌 국제유가 급락과 안전자산 선호 등 글로벌 금융시장의 공포 상황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현상들이 속속 나타나는 중이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5일(현지시간)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3.72달러 떨어진 67.6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전일 대비 배럴당 5.2%나 하락한 것으로 배럴당 70달러 선을 내주며 2021년 12월3일 이후 최저가로 밀렸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의 5월물 브렌트유도 5% 가까이 급락해 배럴당 73달러대로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가능성이 재점화하면서 경기침체로 원유 수요가 둔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유가를 끌어내렸다.
사진=AP연합뉴스
안전자산인 금값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금은 온스당 1.1%(20.40달러) 오른 1931.30달러에 장을 마감해 지난달 1일 이후 6주 만에 최고가를 찍었다.

미국 CNN 방송은 이날 유럽 금융시장 위기를 보도하며 “크레디트스위스와 실리콘밸리은행(SVB)은 엄밀히 말하면 별개의 사건이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금융시장에서 군중심리는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전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이미 지난달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인 72억9300만스위스프랑(약 1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연간 순손실을 발표하며 ‘제2의 리먼브러더스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을 받아왔다. 공교롭게도 사우디국립은행의 추가 재정 지원 불가 방침이 SVB 사태 이후 터져 나오며 미국과 유럽의 별개의 사건이 ‘공포’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연결됐다.

피터 부크바 블리클리금융그룹 최고투자책임자는 “크레디트스위스의 위기는 지난 수년간 느리게 진행되던 자동차 사고와 같았다”면서 “하지만 오늘 뉴스는 당연히 SVB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공포 확산 속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어져 온 시스템 전체의 붕괴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커지는 중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이날 투자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이번 위기는 금융위기 이후 공격적인 재정 및 통화 정책으로 인해 풀린 쉬운 돈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라면서 “위기는 지금도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AP뉴시스
미국 월가에서 ‘닥터둠’으로 불리는 대표적 비관론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크레디트스위스가 한순간에 무너지기에는 너무 큰 기업이지만 위기 상황에서 구제받기에도 몸집이 너무 크다”면서 “이번 사태는 유럽 금융 시스템뿐만 아니라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금리를 통한 지나친 개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세계 최대 채권 운용사 핌코의 전 최고경영자(CEO)이자 알리안츠 수석경제고문인 엘 에리언은 이날 미국 CNBC 방송에 출연해 “연준이 통화 정책을 수시로 변경하면서 이미 변동성이 극에 달한 시장에 금리 변동성까지 추가했다”면서 “연준이 최근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고 비난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실무작업반 제3차 회의'에서 은행권 손실흡수능력 제고를 위한 건전성 제도 정비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제공
◆커지는 시장 불확실성… 은행권에 “자기자본 추가 확충” 주문

금융 당국이 국내 은행권에 ‘방화벽’을 더 높이 쌓으라고 주문하고 나섰다. 당초 은행권 경영 및 관행 제도 개선 차원에서 위기 대응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었는데,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크레디트스위스(CS) 위기설 등 글로벌 금융위기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더욱 강력한 자본건전성 확충 대책 마련이 필요해졌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16일 ‘제3차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개선 실무작업반’ 회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은행권이 향후 불확실성에 대비해 충분한 손실흡수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위한 건전성 제도 정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 당국이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주문한 것은 최근의 금융 불안정성 확대도 문제지만 국내 은행 자본 적정성에도 불안한 구석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융위는 “2022년부터 금리·환율의 가파른 상승으로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다”며 “지난해 9월 말 기준 보통주자본비율은 12.26%로 전년 말 대비 하락하고 있고 유럽연합(EU·14.74%), 영국(15.65%), 미국(12.37%) 등 주요국과 비교해도 자본 적정성이 상대적으로 미흡하다”고 밝혔다. 이날 금감원이 발표한 올해 1월 말 기준 국내 은행 원화 대출 연체율은 0.31%로 전월 말 대비 0.06%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가계대출의 연체율은 0.55%로 전월 말 대비 0.09%포인트 올랐다.

금융 당국은 우선 2016년 제도 도입만 하고 실제 활용은 하지 않은 경기대응완충자본(CCyB)의 활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경기대응완충자본은 신용팽창 시기에 추가 자본을 적립하도록 하고 신용 축소·경색 때엔 적립 자본을 해소하는 제도다.

금융 당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급증한 여신의 부실화 가능성에 대비해 올해 2∼3분기 중 현재 0%인 경기대응완충자본에 추가 적립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은행별 ‘스트레스 테스트’(손실흡수능력 점검) 결과에 따라 추가 자본 적립 의무를 부과하는 스트레스 완충 자본 제도를 신규로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금융 당국은 특별대손준비금 적립요구권 도입 등 기존에 발표한 충당금 제도 정비 방안 절차를 상반기 중 완료하고 시행하기로 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금융위원회 제공
회의를 주재한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최근 SVB 사태 등으로 금융시장의 변동성·불확실성 우려가 커진 만큼 금융권 건전성 제고가 중요한 시점”이라며 “은행권 손실흡수능력 제고를 위해 자본건전성 확충과 대손충당금 적립 관련 제도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SVB 사태로 금융 당국이 은행권 과점 체제 개선을 위해 추진한 스몰 라이선스, 특화전문은행 도입 논의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에는 “계획대로 6월 말까지 개선 방안을 마련해나갈 것”이라며 변함없는 추진 의지를 밝혔다.

은행권에서는 금융 당국의 조치가 시장 안심 차원이며 국내에는 SVB 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 연체율이 조금씩 오르는 점 등이 뇌관이 될 수 있지만, 은행들이 위기에 대비해 충당금을 많이 적립해놨고 최근에 이익도 많이 났으니 자기자본을 올리는 등의 노력을 더할 것”이라며 “금융 당국에서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만큼, SVB 같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회의에서는 ‘돈 잔치’ 비판을 받는 은행권의 성과보수 체계와 희망퇴직금 관련 개선 방향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다. 금융위에 따르면, 국내 5대 주요 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2조6908억원, 이자이익은 36조9388억원이었다. 5대 주요 은행은 성과급에 1조9595억원을, 퇴직금에 1조5152억원을 각각 지출했다. 특히 1인당 퇴직금은 5억4000만원에 달한다. 김 부위원장은 “최근 은행권 대규모 수익은 임직원 노력보다 코로나19 및 저금리 지속 등으로 대출 규모가 급증한 상황에서 금리 상승이라는 외부적 요인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과 성과급이 사실상 고정급화돼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꼬집었다. 이어 “성과보수 체계를 투명하게 공시하는 등 은행권이 스스로 개선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필웅·이도형·이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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